내가 나에게
60년 동안 항상 그 자리에서 묵묵히 네 몫을 다해준 네가 고마워.
사람들은 기다란 손가락을 보며 피아노를 잘 치겠다고 피아노를 배우라고 하고 아기 피부 같은 부드러운 살결은 고생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 같다고 했어. 너는 알고 있잖아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야.
나는 너를 잘 돌보지 않았어. 초등학교 4학년 때는 하기 싫은데 소가 먹을 풀을 베어 오라는 아버지 말씀에 입을 댓 자나 내밀고 자루를 질질 끌며 산으로 가서 낫을 휘두르다 풀이 아닌 너의 손가락을 베고 말았어 너는 아프다고 피를 줄줄 흘렸지. 집에 가도 병원에 데리고 갈 일도 없고 약도 없으니 언젠가 엄마가 알려준 풀을 뜯어 상처 위에 놓고 꾹 눌렀어. 한참을 누르고 있으니 피가 멈추는 거야. 나무껍질을 벗겨 둘둘 말아 묶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풀을 한 자루 베어 집으로 왔지.
엄마는 깜짝 놀라셨어. 엄마 손은 약손, 상처를 깨끗이 닦고 된장을 살짝 바른 후 아기 기저귀로 사용했던 천을 쭉 찢어 꽁꽁 싸매 주었어. 상처는 덧나지 않고 잘 아물었는데 흉터는 커다란 동그라미로 남았어. 낫이 깊이 찔린 것이 아니라 풀을 베듯 엄지손가락 앞쪽이 풀을 베듯 베어져서 그런가 봐. 48년이 지난 지금은 작은 동그라미로 남아 있어.
그뿐이 아니야. 사람들은 보드라운 피부라고 부러워했지만 나에게는 약한 피부로 느껴져서 고통스러울 때가 많았어. 이유도 알 수 없는 좁쌀만 한 것들이 양손 가득 돋아나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초등학생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어. 가려운 것을 참기 힘들어 까칠까칠한 수세미 같은 것으로 박박 문질렀어. 피가 나도록 말이야. 그래도 가려움은 멈추지 않았지. 엄마의 처방은 그 손을 소금물에 담그라는 거야. 긁어서 피가 나는 손을 소금물에 담그면 어떻게 되겠니? 펄쩍펄쩍 뛸 만큼 따가웠지. 그래도 가려운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학교에서 돌아오면 박박 긁고 그 손을 소금물에 담그며 제발 좁쌀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했어.
병원에 가보지 않았으니 원인은 당연히 모르지. 한 겨울,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손은 가렵고 가려운 손을 긁으면 퉁퉁 부어올라 주먹을 쥘 수 없게 되고. 맨손으로 설거지를 하면 빨갛게 변하며 따갑고 아팠던 일을 너는 기억하니? 네가 그렇게 아프고 힘들어할 때 나는 너를 잘 돌보지 못했어.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네가 참고 견디어준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어. 뚝딱 밥상을 차려내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피아노가 아닌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두드리며 글을 쓰고 있잖아. 맨손으로 설거지를 해도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니 너도 내공이 생겼나 봐, 나는 너의 견딤을 디딤돌로 이만큼 성장했어. 힘든 여정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잘 견디어준 네가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