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쿠키 153
화
일단 감정이 올라오면 이성으로 통제가 어려운 것 같아요.
한 줄을 써 놓고 나는 언제 화를 내지? 생각해보니 화를 내고 분을 품었던 기억이 아득하게 느껴져요. 분명 화를 낼 일이 없지는 않을 텐데 감정이 상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져요
어제도 소리가 점퍼를 바꿔 입고 왔어요. 올 겨울 들어 두 번째예요. 돌봄 선생님께 전화가 와서 2학년 아이가 자기 옷이 없다고 해서 보니까 소리는 귀가했는데 소리 점퍼가 있고 2학년 아이 점퍼가 없는 것을 보니 소리가 입고 간 것 같다고 해요. 2학년 아이는 추운데 소리 옷 입고 갔다 내일 바꾸라고 했더니 자기 옷이 아니라고 티만 입은 채로 그냥 갔다고 해요. 두 번이나 같은 아이 옷을 입고 온 거예요. 아이 어머니께 전화를 했더니 소리에게 주의를 줘서 다음에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했다고 소리가 다시는 옷을 바꿔 입고 가는 일 없었으면 좋겠다고 해요.
여덟 살인데 자기 옷도 구별 싶고 무엇이 그리 급해서 자기 옷인지 확인도 안 하고 입고 왔을까? 겨울이라 까만색이 주를 이루어서 구별하기가 어려운가? 요즈음 아이들은 자기 물건을 잃어버려도 찾지 않고 이름이 쓰여 있지 않으면 누군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나중에는 버리게 된다는 선생님 말씀에 옷이나 학용품에 이름을 써주기 때문에 점퍼에도 이름이 쓰여 있는데 확인도 하지 않고 두 번씩이나 다른 아이 옷을 입고 오다니 그것도 자기보다 덩치가 훨씬 큰 형의 옷을 입고 올 정도로 감각이 무디나 걱정되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되었어요.
유색 점퍼를 사주는 방법은 어떨까? 생각하며 쇼핑몰에서 검색해보니 십몇만원에서 이십몇만 원까지 가격이 좀 비싸서 포기, 지금 있는 옷이 작년에 산 옷인데 두껍고 불편하다고 입지 않으려고 해서 몇 번 입지 않아 새 옷 같아 그냥 입히기로 해요.
태권도장에서 돌아온 소리에게 어떻게 형 옷을 입고 왔느냐고 물으니 자기가 걸어 놓은 자리에서 입고 왔다고 해요. 그러니까 소리는 옷의 모양을 본 것이 아니라 자기가 걸어 놓은 자리를 기억하고 그 자리에 있는 옷을 그냥 입고 온 것이었어요. 자리는 언제라도 바뀔 수 있는 것이고 네 옷인지 이름을 확인하고 입어야 한다고 얘기해주며 소리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어떻게 할까 고민했어요.
아이의 실수가 반복될 때는 아이를 야단쳐서 실수 하지 않도록 하기보다 실수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방법을 주로 사용해요. 소리의 경우에 조금 낡은 베이지색 점퍼가 있는데 올해는 낡았지만 베이지색 점퍼를 입혀서 한눈에 자기 옷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조금 더 성장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이를 양육하며 수도 없이 감정을 올려 화를 내고 야단을 쳤는데 경험치가 쌓여서인지 아니면
나이를 먹어서 여유가 생긴 건지 화내지 않고 긍정 양육할 수 있어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