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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꿈 Oct 30. 2020

냄새가 사라진 세상에서

코를 킁킁

저녁을 먹고, 둘째의 준비물을 사러 나갔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그런지 잠깐 쓰는 마스크도 유난히 답답하고 힘들게 느껴졌어요. 어두운 거리,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조심스레 마스크를 살짝 내리는 순간 온갖 냄새들이 순식간에 몸 안으로 밀려 들어왔습니다. 낮 동안 잘 말려진 공기가 주는 냄새,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들이 뿜어내는 희미한 고무 냄새, 석유냄새, 나무가 살랑거리며 내는 싱그러운 냄새가 모두 황홀하게 느껴졌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아이에게 공원을 들러 가자고 했어요. 가는 길에 살짝 마스크를 내려 냄새를 맡고 얼른 다시 올립니다. 모기향 냄새, 어디선가 늦은 저녁을 먹는 듯한 음식 냄새가 납니다. 공원에서는 살짝 기분 나쁜 지린내와 음식 썩은 냄새도 났습니다. 예전이었다면 분명 인상을 찌푸리며 지났을 테지만, 오늘은 이 냄새조차 오랜만이라 반갑게 느껴집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흑백으로 정지되어 있던 세상에 색이 물들면서 모든 것들이 생생하고 선명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겨우 냄새 하나 덧입혔다고.

    

마스크 때문에 냄새가 차단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냄새가 차단되었을 뿐인데 세상에 대한 감각도 차단된 느낌입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늘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때로는 불쾌한 냄새가 나기도 했고, 때로는 그리운 누군가의 냄새가 나기도 했습니다. 이 향수는 뭘까? 물어보고 싶을 만큼 탐나는 냄새도 있었습니다. 그런 냄새들은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고 생각에 빠지게 하고 어떤 기억을 갖고 와서 감각을 깨웠습니다.    

  

문득 이대로 코로나가 끝나지 않아 영영 마스크를 벗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됩니다. 말과 글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그 많은 냄새들,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하는 그 많은 냄새들을 우리는 영영 잃어버리게 되는 걸까요? 소리와 냄새와 색들이 가득 어우러져 생생하게 살아 있던 나의 예전 세계가 그립습니다.      

[코를 킁킁 ], 루스 크라우스 글/마크 사이먼트 그림 | 비룡소 | 1997. 1. 30


하얀 눈이 가득한 세상, 동물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동물들이 잠에서 깨어나 어딘가를 향해 달리기 시작합니다. 코를 킁킁거리면서요. 아니 도대체 무슨 냄새가 나길래 긴 겨울잠을 깨울 정도일까요? 마침내 냄새가 나는 곳에서 동물들은 기뻐 춤을 추고 웃습니다.     


이 책의 원 제목은 ‘The Happy Day’입니다. 긴 겨울잠을 깨고 마침내 냄새 하나를 맡게 된 날을 ‘The Happy Day’라고 하며 축하하고 기뻐합니다. 마스크로 냄새가 사라진 세상에서 코를 킁킁 거리며 마음껏 냄새를 맡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날은 정말  'Happy Day'가 맞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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