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과 데이브는 삽을 쥐고 열심히 땅을 파기 시작합니다. 땅 속에는 보석들이 있습니다.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파 들어갈수록 보석의 크기는 점점 더 커집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샘과 데이브는 보석을 코앞에 두고 자꾸만 방향을 바꿉니다.
책을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파.” 라며 자기 일인 것 마냥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고요, “저렇게 끈기가 없으니, 성공을 못하지.” 라며 샘과 데이브의 ‘노~~오력’을 탓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계획을 세워서 방향을 정하고 그쪽으로 밀어붙여야죠.” 라며 효율적이고 계획성 있는 삽질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삽질만 하다 끝나는 저 같아요.” 하며 동질감 느끼는 사람도 있지요.
저도 처음엔 샘과 데이브가 보석을 발견하길 바랬어요. 그렇게 열심히 땅을 팠는데, 기왕이면 멋진 보석 하나쯤 발견해서 갖고 가면 좋으니까요. 내심 내가 하는 일이 샘과 데이브의 삽질처럼 허무하게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어마어마하게 멋졌어.”라고 말하는 장면에 집중하려 애썼습니다. 아니,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여전히 보석을 찾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그래, 보석을 발견하지 못해도 의미가 있지. 어쨌든 열심히 했잖아.” 하며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런데 또 한참 뒤에 이 책을 다시 읽었을 때는 다른 장면에 마음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바로 제일 마지막 글이었어요.
“샘과 데이브가 초콜릿 우유와 과자를 먹으러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보석을 발견하지 못한 아쉬움이나 실망은 전혀 없이, 샘과 데이브의 일상은 편안합니다. 어쩌면 보석을 발견한 날에도 두 사람은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말을 하며 똑같이 하루를 마무리하지 않았을까요? 그제야 샘과 데이브에게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이란 보석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 / 맥 버넷 글 / 존 클라센 그림 / 시공주니어 / 2020. 4.1
무엇인가를 해내기 위해서 많은 시도를 하고 노력을 하지만 매번 성공하지는 못합니다. 좌절도 느끼고 실패도 경험하지만, 그 과정을 온전히 즐긴 사람에게는 성공이나 실패와 상관없는 깊은 만족감이 있습니다. 결과에 대해 너무 조급해할수록 좌절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실패가 사무치게 됩니다. 샘과 데이브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어마어마하게 멋졌다고 합니다. 뭐가 그렇게 멋졌을까? 전에는 계속 의문이었는데 오늘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하며 즐긴 샘과 데이브에게서는 성공과 실패의 여부로 깨어지지 않는 일상의 단단함이 느껴집니다. 삶의 깊은 내공이 보입니다.
어제는 글을 썼고, 그림을 그렸고, 그림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좋아하는 것들만 가득했던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봅니다. 꼭 뭔가를 이루어야만 하는 건가? 근사한 결과물, 성공이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일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뜬구름 잡는 삽질 같기도 하지만, 행복하게 하는 삽질이라면 나쁘지 않구나 싶습니다. 비록 커다란 보석을 손에 넣지 못한다 해도 말이죠.
아, 그런데요, 보석을 찾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시도하고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를 충실히 즐기며 얻은 즐거움 말고 다른 의미는 없을까요? 자, 이제 다시 책의 처음으로 가서, 앞면지와 첫 장, 속표지를 살펴보세요. 그리고 제일 뒷장과 판권지, 뒷면지를 살펴보세요. 찾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