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꿈 Nov 06. 2020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아요

아름다운 실수

동네 교습소에서 영어를 배우던 큰 아이가 학원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환경이 바뀌면 유독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아이라 한번 등록한 학원은 거의 옮기지 않고 쭈욱 다니는 편인데, 이번에는 아이가 먼저  학원을 바꿔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엄마인 저는 옳다구나 싶었죠.


상담을 하고 등록을 하니, 수업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숙제가 있습니다. 배우지 않은 것을 해야 하니 아이는 짜증이 나고 답답합니다.

“숙제가 너무 어려워, 내일 수업 가기 전까지 다 못할 거 같아.”

“단어 시험 통과 못해서 재시험 치면 어떡해?”

“단어가 안 외워져. 나 그냥 안 다닐래.”

괜찮다고, 안 배웠으니 모르는 건 당연한 거라고, 선생님도 이해하신다고, 재시험 치면 된다고, 그거 큰 일 아니라고. 울고 짜증 내는 아이를 달래고 격려하다 결국 큰소리가 오고 가는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정작 다음날 수업을 갔다 온 아이는 신이 나서 말합니다.

“여기 학원이 훨씬 더 좋아! 나 단어시험도 다 맞았어!”

퇴근한 남편에게 큰 아이의 일을 말하며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도대체 쟤는 누굴 닮아 저러는 거야?”     


최근에 새롭게 맞게 된 집단상담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원래 하기로 했던 선생님께 사정이 생겨 프로그램 2주 전에 급하게 대신 맡게 되었지요. 담당자와 미팅을 하고 며칠 잠을 줄여가며 계획서를 만들어 보냈습니다. 근데 시작 며칠을 앞두고 계획서를 수정해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힘이 빠지면서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기관에서 요구하는 부분을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시작 날짜가 조금 미뤄져서 조금 더 준비를 할 시간이 생겼지만 그만큼 걱정하는 시간도 길어졌지요. 밥을 할 때도, 청소를 할 때도 시작을 어떻게 할까? 어떻게 집단 상담을 끌어나가야 할까? 불안하고 안절부절못했습니다. 그런 저를 보며 남편이 한마디 합니다.

“알지? 큰 애는 딱 당신이다!”      


저는 ‘잘’ 하려는 욕심이 많습니다. 일을 해도 ‘잘’ 해야 하고, 취미로 그림을 배워도 ‘잘’ 그리고 싶어 합니다. 심지어 엄마 역할도  ‘잘’ 하고 싶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걸까요?


어릴 때 예민하고 까탈스럽고 잘 울어 엄마가 다루기 힘든 아이였답니다. 4살까지 외할머니 손에 자라 엄마와의 애착형성도 어려웠습니다. 분가를 하면서 주양육자는 엄마가 되었지만,  엄마의 사랑을 동생과 경쟁해야 했지요. 전 늘 엄마가 저보다 동생을 더 사랑한다고 느끼며 자랐어요.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계속 잡아두는 방법으로 잘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엄마가 자랑 아닌 자랑인 듯 옆집 아주머니에게 제가 공부를 잘한다고 칭찬하는 걸 들었거든요. 그 뒤 저는 뭐든 잘해야 하는 한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던 거 같아요. ‘내가 잘하지 않으면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그러니 제게 실수는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작은 실수도 저에게는 모은 사랑과 관심이 사라지게 되는 두려움이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실수] / 코리나 루켄 지음 / 김세실 옮김/ 나는별 / 2018.2.7


하얀 종이에 얼굴을 그립니다. 앗, 실수! 한쪽 눈을 이상하게 그렸어요. 다른 쪽 눈을 다시 그려봅니다. 이번에는 다른 쪽 눈이 더 커져버렸네요. 실수했어요. 아름다운 실수에서는 이렇게 그림을 그릴 때마다 실수를 합니다. 팔꿈치 모양이 이상하고요, 발과 땅 사이가 너무 떨어져 있고, 개구리인지 고양이인지 젖소인지 알 수 없는 것을 그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발한 생각으로 실수를 다르게 바꾸어 가다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그림을 완성하게 됩니다. 이 그림은 원래 그리려고 했던 그림은 분명 아닐 겁니다. 실수를 지우고 다시 그렸다면, 종이를 버리고 새 종이를 꺼냈다면 그리려고 했던 그림을 완성했을지는 몰라도, 아마 이처럼 멋진 그림을 만나지는 못했을 겁니다.      


사실 종이에 잘못 그린 선이야 지울 수 있지만, 살면서 우리가 하는 실수들은 없는 것으로, 하지 않은 것으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실수를 인정하고 수정하며 바꾸어 나갈 수는 있지요. 아름다운 실수의 앞 면지에 똑 똑 떨어진 두 방울의 잉크 자국을 보며 생각합니다.

“그래, 검은 잉크가 떨어진 종이를 떨어지기 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더 예쁘고, 멋지게 변화시킬 수는 있지, 실수는 그런 거야.”

무엇인가를 시작하기 전에 너무 겁먹지 않으려 합니다. 잘 해내야 한다고 긴장하지 않으려 합니다. 완벽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타일러봅니다.  실수하면 다르게 해 보고 , 또 실수하면 또 다르게 해 보죠, 뭐. 그렇게 가다 보면 분명 처음엔 생각지도 못한 멋진 것이 나타날 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뭣이 중헌디? 삽질의 미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