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브랜드 3 Nomen Nescio 노메네스키오
한국에 오기 전에, 다시 이 옷가게를 들리지 않은 것이 다소 후회가 되기도 한다. 헬싱키의 디자인 디스트릭트를 돌아다니다가 처음 이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에 마주쳤을 때의 인상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모든 옷들이 검은색이었다. 내가 살 수 있는 옷이 얼마 없겠거니 싶으면서도 궁금해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게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러한 검정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반삭을 한 하얀 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쓴 할머니가 안으로 들어와 멈춰 서있는 나를 맞아주었고, 나는 약간 당황하며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스윽 둘러보겠다고 말을 하고 옷들을 살펴보다가 다른 색의 옷은 없는지 물었다. 단호하게 "No, "라고 대답하고는 오직 검은색의 옷과 비니, 부츠가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고서는 브랜드의 가치관을 내게 설명해주었다.
'Nomen nescio'는 라틴어로 '나는 이름을 모른다'라고 한다. 'Nomen'이 '이름', 'nescio'는 '나는 모른다'라는 뜻으로 원래는 익명, 무명의 사람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래서 브랜드의 명칭이 암시하는 바처럼 옷에는 성별, 나이, 사회적 위치를 나타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제외하고 검은색 디자인의 옷을 만든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 여성 옷이 따로 있지 않고 xxs 사이즈부터 xxl 사이즈까지 판매하고 있다.
듣다 보니, 브랜드의 정체성도 뚜렷하고 옷에도 잘 반영이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옷 몇 벌을 입어보니 재질도 린넨이나 울(wool) 등이 포인트 있게 사용이 되고 확실히 다른 옷들과 차별화되었음을 느꼈다. 점원 할머니는 덧붙여 말하길 디자인은 핀란드에서 하고, 직물은 이탈리아에서 공수해와 핀란드 바로 아래 있는 국가인 에스토니아에서 만든다고 하였다. 메리노울로 된 후드티를 입었을 때 내게 딱 맞고 어울려서 사려고 하였으나, 역시 학생이 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후드티 하나에 30만 원을 호가하니 지갑을 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여러 벌의 옷을 사고 싶었으나, 후일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약속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이 브랜드에서 겨울 코트 파카를 하나 샀다. 이전 포스팅에서 디자인 페어를 방문하라고 했는데, 이 옷 역시 디자인 페어를 방문했을 때 약 30% 할인된 가격으로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를 수 있었다. 그리고 종종 간절기에 창고 세일을 해서 아래 사진에 보이는 캄프 매장을 방문했을 때, 옷 하나를 대략 70%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외국에서는 세일 기간이 너무나 자주 있어서 정가를 주고 사면 손해라는 말도 들었는데, 세일 기간이 될 때면 어느 정도 공감하게 되는 말이었다.
옷을 입어보니, 내가 가진 옷들과 어울릴 수 있는 착장이 얼마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이 옷이 내뿜는 분위기만으로도 내게는 특별한 하루를 만들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