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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아 로 Jan 19. 2021

일 년 미리 쓰는 미래 일력 -억울할 시간도 없다

2022년 1월 14일 금요일

시간이 필요합니다


일 년 미리 쓰는 미래 일력

2022년 1월 14일 금요일


자유로운 사유와 안정된 창작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일정한 수입, 자기만의 방과 함께

시간인 것 같다.


창작을 하려면 그 작업에 몰입해서 깊은 고민 속에 잠겨 있어야 한다.

그 고민에 잠기기 위해 입수를 준비하는 시간.

창작을 위해 필요하지만 왠지 쓸데없다고 느껴지는 시간.

그래서 항상 그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애써왔다.

내가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입수를 준비하는 시간보다 입수해서 깊은 곳을 헤엄치는 시간이 더 길었으면 해서.



예전에는 성실함으로 만들어 놓은 마음과 뇌의 창작 근육이 있었다.

같은 시간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그것을 매일 해서 탄탄하게 가꾼 근육으로

내가 원하면 어느 정도는 자유자재로 창작에 들어가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입수를 준비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졌다.


나는 창작 근육이 결과물을 내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어서 아이를 낳기 일주일 전까지도 그림책 작업을 하고 있었다.

10달 내도록 입덧이 있었고, 만삭 때는 아기가 배를 눌러 입덧 절정기보다 구토를 더 자주 했지만,

그림책 더미 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출석하고, 작은 책방에서 내어주는 전시를 위해 그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무리해서 한 이유는 짧은 입수 시간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아기가 잘 때 틈틈이 그림을 그리려면 창작의 고민 속에 바로 빠져들어야 단 한 선이라도 더 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3년 동안 내가 깨달은 사실은 나의 그런 노력이 안쓰럽고 멍청하다는 것이다.

아기는 생각보다 빨리 잠들지 않고, 자주 자지 않으며, 자는 동안에 해내야 할 숙제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는다.

또 아기는 아무리 커도 혼자 놀지 않고, 같이 놀 또래가 있으면 계속 싸워서 끊임없이 도움이 필요하다.

무조건 내가 자는 시간을 줄여서 작업을 해야 하는데 잠이 와도 너무 온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 무리해서 잠을 줄이고 작업을 하면 그다음 날은 아기가 다치든, 내가 화를 내든, 어떻게 해서든 하루가 엉망이 된다.


안타깝게도 육아는 그 무엇과도 병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아기가 30개월이 지나고부터는 아기의 낮잠 시간에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늘 도구만 챙기다 그 금쪽같은 시간이 끝난다.

작품에 대해 늘 고민하다 작업에 들어가면 뭐라도 나오겠지만,

아기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다가 갑자기 작품에 들어가려 하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다.


망친 그림을 책상 위에 올려놓거나

작업할 때만 일정하게 듣던 음악을 틀거나

고민하던 부분의 글귀를 보이는 곳에 붙여놓거나 하는 노력을 해봤지만

작업의 스위치가 빨리 켜지지 않는다.

작품에 입수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졌다.


나의 창작 근육은 이미 줄어들 대로 줄어서 그 근육부터 다시 단련시켜야 하는데

나는 시간이 없다.

없어도 너무 없다.

몰입에 들어가는 시간도, 깊이 고민에 빠져 있는 긴 창작의 시간도 없다.


요즘은 정말이지 돈도 방도 아니라 시간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상황이 억울하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인데 나만 짧은 것을 받은 것처럼.


아 억울하다.

하지만 억울할 시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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