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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아 로 Feb 01. 2021

일 년 미리 쓰는 미래 일력 -그래서 오늘 하루는.

2022년 1월 23일 일요일

그래서 오늘 하루는 어땠어?


일 년 미리 쓰는 미래 일력

2022년 1월 23일 일요일


아주 어렸을 때는 일기를 쓰는 것이 싫었다.

매일 노는데 매일 뭐하고 놀았는지 쓰고 ‘참 재밌었다.’하고 마치는 게 지겨웠다.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일기를 미뤄서 개학 하루 전날 새벽 2시 넘어서까지 일기를 쓰며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림일기였는데 그렇게 좋아하던 그림 그리기가 처음 싫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숙제하는 9살 아이를 혼자 두고 잔 우리 엄마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싶다.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방학 동안 일기랑 숙제를 미뤄본 적이 없다.


나 스스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는 고등학교를 다닐 즈음이었다.

친구랑 교환일기도 하고 혼자 시답지도 않은 소설도 쓰고 참 재밌게도 보냈다. 그 시절엔 공부 말고는 모든 게 재밌다.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글을 쓰며 찾아가던 때였다.

일기는 나의 하루의 기록이면서 나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보정 없는 사진이기도 했다.

보정이 없으니 치기 어린 사춘기의 유치 찬란함이 그대로 드러나 지금 보면 깔깔깔 웃게 된다.

영원히 숨겨두고 나만 보고 싶고, 죽는 순간을 내가 알게 된다면 죽기 직전에 반드시 없애고 싶은, 그러나 죽기 직전까지는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그런 것.

그래도 그런 일기 덕분에 남들보다 늦게 찾아온 나의 사춘기는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매일 쓰던 시기도 있었고, 일주일에 한 번 쓰면 자주 썼다고 여기던 시기도 있었다.

차곡차곡 쌓아둔 내 일기를 지금은 들춰볼 시간이 없다. 여기저기 흩어져있기도 하고.

나중에는  들춰볼까? 안 그럴 것 같다.

그런데 왜 쓰는 걸까?

아직 갱년기는 멀었는데.



쉬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나의 하루를 물어봐주는 존재에게 

그때의 나를 설명할 필요 없이 

침묵하며 감정을 쏟아낼 수 있으니까.


특히 그림일기는 그러기에 더 좋다.

그림에는 나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오는 감정의 순간이 더 직관적으로 기록된다.

나는 그 무엇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마흔이 될 때까지 그림일기를 쓰고 있다. 허허



그래서 오늘 하루 어땠어? 다정하게 물어보는 나의 일기에게

어떡하지?!

오늘은 욕을 할 것 같다.

나의 일기 쓰는 뒷모습이 불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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