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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사이 Feb 10. 2020

7년 전의 나에게 문자 딱 한 통을 보낼 수 있다면?

지금 아는 것을 그 때도 알았다면.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를 보고.

누구나 한 번쯤은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 것이다. 후회되는 일이 있기 때문 일수도 있고, 그 때가 그립기 때문 일수도 있다. 돌아갈 수는 없어도 만약 몇 년 전의 나에게, 문자 딱 한 통을 보낼 수 있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미래의 자신이 보낸다는 걸 상상하지도 못할, 지금보다 어린 그 때의 나에게.


만약 과거의 나에게 문자 딱 한 통을 보낼 수 있다면 나는 7년 전의 나에게 문자를 보내고 싶다.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연달아 건강에도 문제가 터지며 분노나 슬픔, 공허함 등의 감정이 휘몰아쳤던 그 때의 나에게.

      

To. 2013년의 나에게
안녕, 7년 전의 나야.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네가 쉽게 상상되지도 않을 7년 뒤의 미래에 살고 있어. 그 때 쯤의 너는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고, 몸도 마음도 모두 위태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을 거야. 특히 사람들과의 문제가 심했지. 그 때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생각해보니까 그 때의 나는 독이 묻은 화살을 쏘는 사람 앞에 과녁이 되어 서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같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는 이유로, 또 그 사람들을 보지 않을 수가 없다는 이유로 그 사람이 독을 쏘든, 독을 뿌리든 다 맞고 있었다는 생각. 그 때의 나는 그 자리 자체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었어. 두 다리가 무서워서 덜덜 떨리고 있는데도 발이 묶인 것처럼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더라.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 자리를 피하라는 거야. 네 생각, 네 의견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이 함부로 너에게 쏘는 독화살을 너 역시 맞고 있을 이유가 없잖아. 그 자리에서 피하는 일은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숨는 것도 아니야. 맞고 있을 이유도, 가치도 없기 때문에 네가 그 자리를 떠나는 거야.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해도 괜찮아. 너를 사랑해줄 사람, 그리고 평생 너와 함께할 사람은 너뿐이야. 너는 사랑받아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인거야. 아무 이유 없이. 그리고 입 밖으로 말하기 부끄럽더라도 매일, 스스로에게 사랑한다고 해줘. 부끄럽고 민망하고 내가 뭐하는 건지 이상해보일수도 있는데 그러면서도 웃음이 나더라. 그 때의 네가 끝까지 너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7년 후의 내가 있는 거야. 정말 고마워.



몇 년 전의 나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영국 드라마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My mad fat diary)>의 한 장면을 보고 떠올랐다. 주인공 레이(샤론 루니 분)는 자존감이 몹시 낮다. 자신은 뚱뚱하고, 못생겼으며, 모든 일을 망쳐버린다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학대한다. 상담을 하면서도 계속 스스로를 정말 끔찍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레이에게 한 선생님이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했는지 묻자 9살, 10살쯤부터라고 답한다. 그러자 선생님은 10살 때의, 스스로가 뚱뚱하고 못생기고 창피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10살의 너에게 "너는 뚱뚱해", "너는 못생겼어", "너는 창피하고 쓸모없고 가망이 없어"라고 말해보라고 한다. 레이는 자신의 눈앞에 앉아있는 것 같은 10살의 자신을 보며 그럴 수 없다며 운다.


뚱뚱하다, 못 생겼다, 쓸모없다, 창피하다 등의 말 뒤에는 숨겨진 단어가 있다. 뚱뚱하다는 말은 "뚱뚱해서 싫다"는 말이고, 못 생겼다는 말은 "못 생겨서 싫다"는 말이며, 쓸모 없다는 말 역시 "쓸모 없어서 싫다"는 말이다. 비난의 뒤에는 "싫다"는 말이 숨겨져 있다.  싫다는 말은 함께 하고 싶지 않고, 피하고 싶다는 의미다. 그래서 뚱뚱하다, 못 생겼다, 쓸모없다는 말은 말 그 자체로도 상처가 되지만 그 뒤의 숨겨진 의미가 더욱 피부로 와닿기에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봐 무섭고 두려워진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우리는 잊고 있을수도 있다. 누군가가 나를 비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다. 나는, 아니 우리는 누군가에게 사랑받아서 가치있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받지 못해도 충분히 가치있고, 괜찮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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