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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스티커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아이들

왜 칭찬 스티커로 아이들은 성장하지 않을까?

많은 교실에서 교사들이 칭찬 스티커를 사용한다. 학교에서만 칭찬 스티커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도 많은 부모들이 칭찬 스티커를 활용한다. 아이들의 노력 혹은 성취에 칭찬 스티커를 붙여주고, 일정 개수 이상의 스티커를 붙이면 선물을 사준다. 예를 들면 시험 성적이 좋으면 스티커 10장, 방 청소를 하면 스티커 5장, 설거지를 하면 3장과 같은 형식으로 표를 짜서 냉장고에 붙여 놓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는 열심히 노력(?)하고, 노력의 결과로 스스로 성취(?)를 이룬다.      


자 그렇다면, 칭찬 스티커가 아이를 훌륭하게 성장시키고 있을까?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얼마 전, 2학년 교실에 보결수업(담임교사의 부재로 인한 다른 교사의 대리 수업)을 들어간 적이 있었다. 교실에 들어가자 아이들이 잠시 주의를 집중하는 듯하더니 다시 각자의 할 일을 하며 돌아다녔다. 나는 아이들을 자리에 앉히기 위해 간단한 주의집중 활동을 했고, 아이들은 일사불란하게 지시에 따랐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아이들 전체가 이렇게 말했다.

      

“자석 붙여 주세요.”

     

그렇다. 아이들이 수업할 준비를 한 이유는 ‘자석’ 때문이다. 

만약 이 자석, 바꿔 말해서 칭찬 스티커가 없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아이들이 스스로 노력하려는 이유가 저 칭찬 스티커라면 그것이 사라지고 난 후에는 어떻게 될까? 



문득 어떤 어른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칭찬 스티커를 통해 자란 어른들이 많아서 인지 요즘은 누군가가 선의를 베풀면 그 의도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보상을 바라고 저렇게 착한 척(?)을 하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인간의 선의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혹시 칭찬 스티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으로 길러내는 일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인간을 성장시키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도, 공자도, 석존도, 예수도 전부 ‘청년’을 성장시키는 데 자신이 가진 온 힘을 쏟아야만 했다. 

따라서 나는 교사나 부모가 아이를 칭찬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칭찬 스티커가 아이가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으로 성장시킬 거라는 기대는 인간을 너무나 가볍게 여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청춘은 단련의 시기라고 한다. 

단련은 외부에서 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단련을 받을 때 진정한 성장이 일어난다. 

‘1만 시간의 재발견’을 쓴 안데르스 에릭슨(Anders Ericsson)은 ‘의식적인 연습’을 통한 1만 시간의 노력이 전문가가 되는 길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의식적인 연습’은 부모나 교사가 부여하는 칭찬 스티커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이가 스스로 ‘의식’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는 능동적인 태도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삶에 대한 능동적인 태도를 갖게 될까? 이에 대한 힌트를 주는 학자가 바로 스탠퍼드 대학의 사회심리학자인 캐롤 드웩(Carol Dweck)이다. 그녀는 칭찬은 결과가 아닌 과정을, 능력이 아닌 노력에 대한 칭찬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녀는 왜 결과와 능력이 아닌 과정과 노력에 대한 칭찬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을까? 


과정은 노력을 지속하는 순간의 합이다. 그 과정의 지속성이 원인이 되어 결과가 드러난다. ‘음덕이 있으면 양보가 있다-어서 1178쪽’가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스스로 노력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이를 캐롤 드웩은 성장 사고방식(growth mindset)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는 ‘이 본법(本法)을 수지(受持)함은 신(信)의 일자(一字)이며 원품(元品)의 무명(無明)을 대치(對治)하는 이검(利劍)신(信)의 일자(一字)이니라-어서 781쪽’의 뜻과 유사하다. 아이가 스스로 더 나아질 것을 믿는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아이를 성장시킨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스스로를 믿게 할까? 자신에 대한 믿음을 지속하는 일. 즉, 끈기를 이어가게 하는 것은 스티커와 같은 외적 보상이 아니라, ‘너는 노력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아이의 자아 정체성에 대한 내적 보상이다. 


그래서일까? 아이 스스로의 노력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우는 변인을 이야기하는 학자가 최근 책을 한 권 출간하였다.     

 안젤라 덕워스(Angela Duckworth)라는 펜실베니아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GRIT'이라는 책에서 '재능×노력=기술'이고, '기술×노력=성취'라고 이야기하여 주목을 받았다. 이 두 개의 공식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것은 바로 ‘노력’이라는 변인이다. 스스로를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 안젤라 덕워스의 삶은 바로 그녀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 준다.      


  칭찬 스티커를 사용하는 곳은 가정, 학교뿐 만이 아니다. 많은 학원에서도 이 시스템을 활용한다. 

 칭찬 스티커를 활용하는 곳이 너무 만연해 있는 데다 잘못된 사용이 아이들의 내적 동기를 왜곡시켜 놓았다.


왜 칭찬 스티커가 아이들의 내적 동기를 왜곡시켜 놓을까? 

스티커나 외적 보상이 없는 곳에서 아이들의 노력을 기대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아이들이 학원에 다닌다.  학원이라는 공간은 정해진 시간 동안 주어진 과정을 이수해야 하는 곳이다. 

빠른 시간에 과정을 끝까지 이수하도록 이끌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칭찬 스티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와 가정은 다르다. 아이들의 성장을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하고, 안내하며 기다려 줄 수 있는 곳이다. 미성숙한 아이들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믿고 그 믿음을 끊임없이 확인하면서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곳이 바로 가정이고 학교여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아이들의 내적 동기를, 부모나 교사가 없어도 스스로 노력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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