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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드는 아이, 지적하는 교사.  그 악순환의 고리.

정신통제의 역설적효과와 피그말리온효과의 관계를 중심으로(긍정심리학관점)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댄 베그너(Dan Wegner,1994)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생각의 빈도는 잠시 동안 감소할 수 있지만 이내 이전보다 더 증가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 생각은 사고 과정에서 훨씬 더 중심적이 되어서 반응을 유발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사고 억제는 단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71쪽 발췌.


이는 정신통제의 역설적 효과를 말한다.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의 행위를 억제하는 것은 어렵다. 행위를 억제한다고 부정적 반응이 소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는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의 행위보다 집중하는 학생의 행동에 주의를 더 기울여야 하지만 이 또한 매우 어렵다. 그 까닭으로 2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아이들 앞이지만 타인을 대상으로 논의를 펼쳐야 하는 교단은 교사에게 스트레스 상황이다. 타인의 앞에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사실 굉장한 무게로 다가온다. 수십 개의 시선이 오로지 한 개인에게 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긴장과 각성이 시작되고, 심장박동은 빨라지며, 호흡은 가빠진다. 특히 공개수업을 처음하는 교사를 보면 이러한 장면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렇다고 경력이 많은 교사들이 편안하게 느끼는 건 아니다. 이는 쉬는 시간에 카페인이나 설탕이 들어간 커피 혹은 과자를 찾아 연구실로 가는 교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왜 연구실에서 음료나 간식을 섭취할까? 그 까닭은 바로 distress 호르몬인 코르티솔 때문이다. 코르티솔 호르몬이 근육을 긴장 시키고 감각 기관을 각성상태를 만들며 이로 인해 혈액의 흐름이 빨라지고 이는 심장 박동 수를 늘리며 에너지의 소모량이 늘어난다. 급격히 소모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서 위에서는 '허기'를 느끼게 하고, 이는 결국 교사를 연구실로 향하게 한다. 한편 교사의 각성된 감각기관은 타인, 즉 학생의 반응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그래서 교사의 뒤통수에 '눈'이 하나 더 달렸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이때 학생의 행위에 대한 교사의 즉각적인 반응은 편도체와 관련된 정서회로를 작동시킨다.

편도체와 관련된 정서회로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는데 시상-편도체 회로와 피질 편도체 회로가 있다. 긴장과 각성 상태의 교사는 시상-편도체 회로가 작동하기 쉽다. 이 회로는 대략적인 정보만을 해석하고 즉각 반응하기 때문에 아이의 행동을 오해하기 쉽다. 예를 들어, 학생이 수업 시간에 뒤를 돌아봐서 교사가 야단을 쳤다. 교사의 시상-편도체 회로가 작동한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살펴보니 뒤에 있는 친구가 물어봐서 이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이러한 오해는 사과로 풀려야 하지만, 보통은 전후 사정을 듣지 않고 상황이 종료되기 십상이다. 수업시간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무력감이다. 아무리 몸에 좋은 약도 환자가 먹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 뛰어난 투수가 칼날 제구력으로 공을 아무리 잘 던져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포수가 앉아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리 좋은 수업도 학생이 참여하지 않으면 교사의 존재 가치가 줄어든다. 열심히 수업을 준비한 교사의 노고따위는 보지 않은 채 일말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을 때 교사는 깊은 무력감을 느낀다. 맹자는 맹자의 진심(心)편에서 인생의 3가지 즐거움 중에 하나를 이렇게 말했다.


득천하영재이교육지(得天下英才以敎育之)가 삼락(三樂)이니.


영재(英才)


1만 시간의 법칙을 이야기한 안데르스 에릭슨(Anders Ericsson)의 이론에 따르면 타고난 재능따위는 없다고 한다. 효과적이고, 적절한 피드백을 주는 교사를 만나고,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배우려는 태도를 가진 학생이 1만 시간을 노력하면 누구나 원하는 재능을 꽃피울 거라는 그의 주장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맹자가 이야기한 영재는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배우려는 태도를 가진 학생이 아니었을까 싶다.

따라서 수업을 방해하며 교사로부터 배우려고 하지 않는 태도를 지닌 학생을 만나는 일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구나 성숙한 개인이자, 전문가로서의 교사가 무기력하고, 무개념한 학생을 만났을 때 자신이 가진 역량에 회의를 느낀다. 그래서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비난하기 쉽다. 교사가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의 비난에 몰두하게 되는 까닭은 어쩌면 교사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방어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행위를 통제할 수록 아이들은 그 행위에 더 몰두한다. 학생 스스로도 자신의 부적응 행동을 의식하지 못한채. 더불어 교사도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신경을 덜 쓰려 하지만 오히려 더 신경이 쓰이고, 결국 수업 자체에 대한 동기는 물론 인간은 더 이상 나아지지 않는다는 잘못된 신념을 세우고, 이 신념에 알맞은 정보를 찾아서 확인하는 일에 몰두한다. 이는 학생에 대한 교사의 부정적 확증편향(선입관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수용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현상으로써, 정보의 객관성과는 상관 없음)이 작동하는 것이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즉, 학생의 변화와 성장에 대한 기대 대신, 더 이상 변화하지 않고 성장하지 않는 아이라고 판단하고 아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 이는 인간을 불신하는 것과 다름없다. 학생을 불신하는 교사를 만난 학생 역시 교사를 불신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역설적 효과로부터 교사와 학생 모두 벗어날 수 있을까?

손이 많이 가는 자식이 더 훌륭해지는 법입니다. -도다 죠세이.

앞서 정신통제의 역설적 효과에 대해 이야기 했다. 아이들의 행위를 통제하려 할수록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통제하려는 행위에 더욱 몰두하는 역설. 참여하지 않는 아이를 통제하려는 행위에 몰두함으로 인해 다른 아이에게 피드백의 기회를 주지 못하는 교사.

어떻게 해야 이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도다 죠세이는 손이 많이 가는 자식이 더 훌륭해진다고 하였다. 과연 그럴까? '손이 많은 가는 자식'이라는 말의 핵심은 포기하지 않는 부모의 태도에 있다. 이를 학교상황으로 바꿔서 생각해 보면, 학생을 포기하지 않는 교사가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학생을 포기하지 않는 교사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



교사가 교단에 서는 순간 생기는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은 2가지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 distress와 eustress다. distress는 심리적 고통을 수반하는 스트레스라면 eustress는 희열을 수반하는 스트레스다. '우리는 왜 위험한 것에 끌리는가'라는 책에서 네덜란드의 심리학자들이 실시한 한 가지 실험을 소개하고 있다. 그들은 천식환자들이 부정적인 감정상태에서 스스로의 상태를 더욱 심각하게 자각해서 호흡곤란, 폐기능 저하 등의 증상이 더 심각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시 환자들에게 반대의 상황을 제시했다. 환자들이 좋아하는 롤러코스터를 타도록 유도한 것이다. 그러자 천식 증상 중 일부가 감소하였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동안 코르티솔 대신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앞서 편도체와 관련된 정서회로는 2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시상-편도체 회로와 피질-편도체 회로. 이 중에서 피질-편도체 회로가 작동하려면 교단에 서는 교사의 스트레스가 eustress로 기능해야 한다.  교사가 교단에 설 때 엔돌핀을 생성하는 eustress로 받아들여  피질-편도체회로가  기능하게 만들면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스트레스 상황에서 eustress로 기능하게 만들까? 여기에는 3가지 조건이 필요한 것 같다. 첫째, 발달에 대한 깊은 이해다. 아이들의 신체적, 정서적, 심리적, 도덕적 발달의 수준이 어디쯤인지 깊이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너의 실수나 미성숙한 행동쯤은 이미 가늠하고 있었다'며 교사 마음 속에 꿈틀거리는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 둘째, 수업에 대한 이해다. 지금 준비한 수업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으면, 아이들의 어떤 부정적 반응에도 피질-편도체 회로가 작동하는 것 같다. 이상의 2가지는 교사가 교단에 섰을 때 스스로의 유능감을 경험하기 위한 조건에 해당한다. 또한 학생의 부적응 행동을 교사 자신의 역량을 키울수 있는 기회로 인식할 수 있으므로 eustress상황으로 받아들여 진다. 끝으로, 교사를 지지해주는 학생이다. 아이들이 먼저 다가와 포옹을 해주거나, 혹은 교사와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안마를 해줄 때가 있다. 이러한 작은 지지적 행동은 우리의 체내에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을 분비시켜 긴장과 각성을 이완시켜준다. 수업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태도, 눈빛 역시 옥시토신을 분비시킨다. 이러한 반응은 교사의 피질-편도체회로를 통한 정서회로가 작동하게 한다.


결론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며, 교과 지식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배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배우려는 학생, 교사의 배움과 성장을 기대하며 믿어주는 학생이 있다면 더 손쉽게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그 출발은 교사가 아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학생을 믿는 교사의 비언어적태도는 백 마디의 말보다 빠르게 아이들에게 전해지고, 그 마음이 담긴 태도에 아이들은 감정을 전이시키며, 이러한 교사의 신뢰를 아이는 스스로에게 내사시켜간다. 이 것이 교사의 기대가 학생의 자기충족적 예언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그러므로 교사가 학생을 믿는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믿음이고, 인간에 대한 깊은 믿음이란 사람은 자신에 대한 믿음에 반드시 부응하여 변화하고 성장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나는 부족함이 많은 교사다. 여전히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교과지식을 아이들이 이해하고 자기 삶에 적용하기 쉽도록 가르치는데 애를 먹기 때문이다. 갈 길이 멀고, 배울 것이 여전히 많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바보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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