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지지의 철회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3월.
학교는 바쁘다.
새 학년이 된 아이들은 교사를 탐색하느라 바쁘고, 교사는 업무를 탐색하느라 바쁘다.
아이들은 교사를 바라보고, 교사는 컴퓨터를 바라본다.
엇갈린 시선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바쁜 교사는 아이들이 이해해주길 기대하고,
두려운 아이들은 교사가 알아주길 기대하지만
업무라는 강을 사이에 두고 그들은 끝내 마주하지 못한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3월.
교사는 다짐한다.
새로 맡은 아이들을 존중하고, 배려하겠다고.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중 하나가 천하의 영재를 만나서 가르치는 일이라 했는데, 교사로서 군자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할까를 꿈꾼다.
그러나 맞닥뜨리는 현실은 예상과 다른 반응들 뿐.
야심 차게 준비한 수업에 대한 뜨뜻미지근한 반응.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하지도 않는 아이들.
수업 준비로 보낸 시간의 대가는 교사로서 무기력뿐이고,
업무 처리로 보낸 순간의 보답은 관리자의 성과급 'S'문자.
결국 아이들에게 보낸 정서적 지지는 철회되고
'너희가 그럴 줄 알았다'는 사후확신 편향(hindsight)은 확고해져만 간다.
3월.
아이들은 결의한다.
새 학년에 올라가면 공부도, 운동도 열심히 하겠다고.
첫날부터 인사도 받지 않은 채 컴퓨터를 향하는 선생님의 시선을 보며
우리를 향한 선생님의 무관심에 실망한다.
수업이 시작되자 다가오는 시선에 긴장하는 아이들.
떨리고 긴장된 마음에 선생님의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데
들려오는 선생님의 한 숨소리.
실망하셨구나. '역시 공부는 안되는구나'라며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lfiling- prophecy)은 깊어져만 간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오랜 시간을 두고 서로를 지켜보며 평가하고 있을까?
단 한 번으로, 혹은 단 한 달만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교사가 학생에 대한 정서적 지지의 철회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혹은 학생의 교사에 대한 정서적 지지 철회의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3월.
아이들을 잡아야만 1년이 편하다는 선배 선생님은 과연 아이들을 진심으로 지지하고 있었을까?
3월.
진짜 잡아야 하는 건 아이들이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정서적 지지가 아닐까?
마지막까지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이 되는 일.
그것이 이 3월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메사츄세츠 대학의 Lisa Feldman(2010)에 따르면 MRI(자기공명 영상장치)를 통해 다양한 연령대의 성인 뇌를 살펴본 결과, 사회적 관계가 크고 잘 짜인 사람이 편도체가 크고 그 구조도 복잡하다는 것이다. 이는 캠프리지 대학의 Ian Goodyear(2012)가 감정이입이나 공감이 어려운 비행청소년의 편도체가 건강한 청소년의 편도체에 비해 확연히 작았다는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
-편도체는 상호작용을 통해 구조나 크기가 변화되며, 정서와 관련된 자극이 편도체 변화의 주요 요인이라는 것이다. 즉, 정서적 상호작용의 양과 질이 매우 중요하며, 이는 3월에 친교 활동이 중요한 이유의 근거이자, 교사와 학생이 눈을 맞추고 서로를 향한 정서적 지지를 확인할 수 있는 여유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더불어 기억, 학습, 동기에 영향을 주는 해마의 성장과 발달을 촉진시키는 것이 정서적 지지라고 한다. 그런데 교사가 정서적 지지를 철회하는 순간, 다시 말해서 '너희가 그럴 줄 알았다'는 사후확신 편향(hindsight)이 아이들의 기억력과 이해력은 나빠지고, 동기는 낮아진다는 뜻이다. 우리는 과연 어떤 태도로 아이들을 대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