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스승의 날과 Resilience

그늘에서 노고 하는 분들과 사회적  지지, Meaningful life

5월 15일.


스승의 날이다. 

우리 학교는 불법 찬조금이나 촌지를 받지 않습니다.

그렇다. 나는 받은 적이 없다. 하지만 불법 찬조금이나 촌지가 아닌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이 하나 있다. 지금부터 나는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십팔사략에 보면 진나라 홍농 땅 출신인 양진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배움을 좋아하고, 여러 가지 일들에 통달하였으며 세상을 널리 살필 줄 아는 이였다. 사람들은 그를 '관서 땅의 공자'라고 칭했고, 등즐이라는 인물의 추천과 등용으로 여러 번 승진하여 형주땅의 자사가 되었다. 

그래서 형주로 부임하러 가는 도중에 창읍이라는 고을을 지났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그날 밤. 양진 자신이 추천해서 창읍의 수령이 된 왕밀이 황금 열 근을 품고 와 '밤이 저물어 아무도 보는 자가 없습니다.'라며 양진에게 주려고 하였다. 그때 양진은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아는데 어찌 아는 자가 없다고 말하는가!


그는 나중에 이런 말도 남겼다. 

후세의 사람들에게 청백리의 자손이라고 일컬어지게 하여 이것을 물려준다면 또한 두터운 일이 아니겠는가! 

양진은 자신의 청렴한 삶을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 수많은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를 양진의 사지(四知)라고 부른다. 


나는 해마다 아이들에게 양진의 사지(四知)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렇게 훌륭한 지도자로 자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들려주는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20여 년 전. 

내 인생의 스승은 대학부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신 적이 있었다.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러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생입니다.', '교수님입니다.', '총장님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학생, 교수, 총장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람은 학교를 지켜주시는 분들입니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학교를 지켜주시고, 빛내주시는 이 분들이 계시지 않다면 여러분은 마음껏 공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늘에서 노고 하시는 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은 나의 제자가 아닙니다. 
그 고마움에 보답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진심으로 행복해지길 기원합니다.


이 말에 나의 마음은 크게 움직였다. '그늘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노고'를 자랑으로 여기고, 그 노고를 알아주고 비춰주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나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학교에 발령을 받고 나서 금방 5월이 되었다. 나는 아직 스승이라 불리기에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은데 아이들이 써준 편지를 받으려니 마음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진짜 아이들의 스승은 아이들을 위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고 하시는 많은 분들이라고 생각했다. 


국어 교과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면담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그분들의 노고를 보고 느끼기를 바랐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직접 찾아가 면담을 하도록 했다. 아이들은 면담 내용을 정리하고 발표하였다. 그때마다 공통적인 이야기가 있었다. 선생님들 말고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학교에서 일하고 계시는지 몰랐다는 거였다. 


이에 아이들은 그분들의 노고가 있어서 자신들의 편안하고 안전한 학교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다음으로 스승의 날 한 분 한 분에게 아이들이 직접 쓴 손편지를 전달해 드렸다. 많은 분들이 아이들의 편지를 반겨주셨고, 몇몇 분들은 답장과 선물을 보내 주신 분도 계셨다. 스승의 날 뿐만이 아니었다. 연말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모금을 하고, 내가 직접 돈을 보태서 스무 명이 넘는 분들에게 마음이 담긴 선물과 카드를 드렸다. 


그렇게 3년쯤 지나고 나서였다. 전 교직원 회식자리에서 학교 급식을 조리해주시는 분들이 나를 찾았다. 그리고 나에게 매우 고마워하셨다. 급식 조리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고맙다는 편지를 받으셨다는 것이다. 그분 들 중 한 분은 눈물을 보이실 정도였다. 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말씀드렸지만, 마음속으로는 뿌듯하고 감사한 기분이었다. 


나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느냐는 금방 알 수 있다. 생명은 빛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심리학에서도 감정은 전이된다고 한다. 아이들을 통해 내가 스승께 배운 꿈이자 나의 꿈.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노고를 가슴속에 자랑으로 여기고, 이런 분들의 노고를 알아주고 빛을 비춰주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나의 꿈이 전해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그 한 사람의 노고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갈까. 그것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Masten & Reed가 말한 아동 청소년의 Resilience 보호 요인 중 사회적 요인을 키워주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노고를 알아주는 사회를 만드는 일, 그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꿈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일이 아이들의 탄력성을 키우는 일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스승의 날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은 아이들이 바로 이 마음을 알아주고, 실천하는 것이다. 

아이들과 내가 함께... 평생을...

이것보다 훌륭한 스승의 날 선물이 어디에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