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5. 펭귄 블룸
글렌딘 어빈 감독, 나오미 왓츠 주연, 2020년 개봉.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가족의 때 이른 죽음, 암과 같은 난치병의 발생, 전력을 다해 온 사업의 파산이나 몸 바쳐 일한 직장에서의 실직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이 닥칠 때, 우리는 미래를 향한 육중한 문이 눈앞에서 꽝 소리를 내며 닫혀 버린 채 인생이 끝났다는, 모든 가능성은 사라져 버렸다는 강렬하고도 지속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그 느낌은 공포, 분노, 좌절, 슬픔, 극심한 우울 같은 것이고, 강도와 분위기를 달리하면서 오랫동안 되풀이되는 이런 느낌은 다시 우리를 더 깊은 나락으로 몰아 떨어뜨린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면 어쨌거나 삶은 계속된다.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죽음보다 더 큰 형벌일 수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그 형벌을 통과해서 새로운 문을 열게 되기도 한다.
물론 그 직면과 극복의 과정이 그럭저럭 해 볼만하다거나 당연히 통과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누구라도 가능하다면 그렇게 엄청난 고난은 겪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고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렇기는 하더라도 인생을 우리가 전적으로 통제할 수 없음은 엄연한 사실이고, 그렇다면 원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삶의 폭풍을 어떻게 마주할 지에 대해서는 좀 더 숙고하고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영화의 주인공인 샘 블룸에게는 가족 휴가지였던 태국에서의 추락 사고가 그러했다. 흉추 7번 아래의 손상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남김으로써 활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쳤던 여성을 가슴 아래 부위가 영구적으로 마비된 장애 환자로 만들어 버린 사고가 말이다.
영화는 이토록 끔찍한 고통을 당해서 나락에 떨어진 주인공 샘이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우울과 절망의 수렁을 지나서 새롭게 삶의 희망과 기쁨을 찾아가는 과정을 교과서처럼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고난의 극복과 내면의 성장에 관한 전형적인 서사이다.
이쯤에서 '뭐야 너무 뻔하잖아'라는 생각이 드는가? 그렇지 않다. 모든 좋은 이야기는 성장과 정화, 변화와 극복의 서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범작과 명작, 그리고 망작을 가르는 요소는 이러한 본질적인 서사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얼마나 진정성을 담아서, 얼마나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여주는가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교과서적이지만 결코 상투적이지는 않다.
죽음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말기 질환을 가진 사람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다섯 단계로 도식화하여 제시하였다. 부정-분노-타협-체념(우울)-수용이 그 단계이거니와, 이 과정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뿐만 아니라 샘이 겪은 것과 같은 심각한 영구적 장애를 받아들이는 과정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의과대학을 다닐 때는 이 과정을 기계적으로 암기하면서 이런 과정이 그저 직선적으로 진행되는 줄 알았다. 이제 인생을 조금 겪고 보니 반드시 그렇지는 않음을, 이 과정들은 서로 엮이기도 하고 후퇴하기도 하며 동시에 일어나기도 함을 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결코 수용의 단계에까지 이르지는 못하는 경우가 있음도 알게 되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영화에 다 표현되지는 못했지만 주인공 샘 블룸도 마찬가지일 터라, 어쩔 수 없게 되어버린 몸과 마음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의 방식과 목표, 기쁨을 찾아가는 과정은 그녀에게도 수많은 좌절과 체념, 분노를 몇 번이고 넘어가야 하는 험난하고 아득한 여정일 수밖에 없었음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샘은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 곁에는 사고 전이나 사고 후에나 한결같이 그녀를 사랑하고 지지해 주는 헌신적인 남편과 자녀, 가족들이 있고 일상을 꾸려 나가기 위해 좋은 환경적, 사회적인 자원의 도움도 받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사고 후에는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그녀 스스로가 높은 자존감과 내면의 힘을 지닌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녀의 고통을 온전히 가늠하거나 평가할 수는 없다. 그녀뿐만 아니라 누구의 어떤 고통도 타인에 의해 비교되거나 계량될 수 없다. 모든 고통은 개별적이므로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객관적인 고통의 유효기간이나, 정량 가능한 강도 따위는 없다는 말이다. 슬프게도 이것은 다른 사람을 돌보거나 위로할 때 우리가 너무 쉽게 잊어버리거나 외면하는 진실이고 영화에서 샘은 (비록 의도는 선하다 할지라도) 타인을 통해 겪게 되는 그런 쓰라린 마음을 언뜻언뜻 보여준다.
그러니 고통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운이 좋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매우 경솔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뭐라고 타인의 고난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그녀에게 이 말을 쓸 수 있는 유일한 까닭은 오직 그녀 스스로가 그러하다고, 자신의 삶이 행운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고통을 관통하여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받아들인 이가 마음을 기울여 이야기하는 삶의 행운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나 깊고 놀라운 고백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영화로나마 그런 고백을 듣고 보는 우리도 마음 한쪽이 조금은 자라는 게 아닐까.
영화는 남편인 캐머론 블룸이 저술가인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와 함께 쓴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글로 읽어서 더 좋은 부분도 있고 화면으로 보는 것이 더 감동적인 부분도 있는데, 맏아들인 노아가 겪는 감정과 어머니와의 갈등, 그리고 화해를 보여주는 일화는 책에 나오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매우 중요하고 아름답게 표현되고 있으니 유의해서 보시기를 권한다.
책의 마지막에는 샘 블룸이 척수 손상 환자와 그들을 돌보는 이들을 위해서 쓴 글이 에필로그로 실려 있다. 엄청난 고통을 온몸으로 겪고 옹글게 통과해 본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강인하고도 따뜻한 내면의 풍경과 함께, 척수 장애인을 위한 실용적이면서 간절한 조언들이 마음을 울리는 글이니 꼭 읽어 보시기를 바란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는 사진작가인 남편이 찍은 가족들의 사진을 보여준다. 책에도 사진들이 실려 있는데, 사랑하는 이가 마음을 담아 찍은 사진이 주는 감동이 있으니 그 또한 눈여겨보면 좋겠다.
그런데 영화의 제목은 왜 '펭귄 블룸'일까?
분명히 새가 나오기는 하고 한 마리의 새로 상징되는, 어찌 보면 사소해 보이는 사건과 상황이 어떤 사람에게는 얼마나 절실한 희망의 끈이 되는지를 잘 보여 주지만 더 이상의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테니 아쉬운 대로 여기까지만 알려드린다. 궁금하신 분들은 꼭 영화를 찾아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