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 카모메 식당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코바야시 사토미, 카타기리 하이리, 모타이 마사코 출연, 102분, 2006년
모두들 알고 있듯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누군가와 함께 밥 한끼를 먹을 때 우리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나누는 것이고, 다른 이를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는 일은 그 이에 대한 내 마음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혼밥이 유행인 시대이지만, 같이 밥을 먹는 일처럼 따뜻하고 인간적인 행위가 달리 얼마나 될까. ‘언제 같이 밥 한번 먹자’라는 인사는 또 얼마나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가.
‘카모메 식당(갈매기 식당)’은 일본의 소울 푸드라고 할 수 있는 주먹밥(오니기리)을 만들어서 핀란드 사람들에게 먹이고 싶어하는 주인공 사치에(코바야시 사토미 扮)가 경영하는, 영화 제목과 같은 이름을 가진 작은 식당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조용하고 정갈하게 보여 준다.
사치에가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인지 영화에는 자세히 묘사되지 않지만, 일본을 떠나 먼 타국 핀란드에서 식당을 차리기까지는 여러 곡절이 있었을 터이다. 식당을 연 사치에는 열심히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지만, 커피를 마시러 들르는 어린 학생, 그것도 첫 손님이라 무료로 커피를 마시러 오는 친구 외에는 영 손님이 들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이윽고 영화에는 여러 사람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리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 것은 아닌데, 이들은 모두 자기 나름의 상처와 결핍을 안고 조용조용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런저런 이유와 방식으로 갈매기 식당에 모이게 되는 그들은 함께 음식을 만들거나, 만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조금씩 자신을 치유하고 서로를 알아나가게 된다.
식당 주인인 사치에는 다른 이들이 지닌 착한 심성을 알아볼 줄 아는 착한 사람이고, 스스로도 많이 외로워 보이지만 낮에는 커피를 내리고 주먹밥을 만들면서, 저녁에는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합기도를 하면서 낯선 땅 핀란드에서 씩씩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도무지 손님들이 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 살던 곳을 떠나 그 낯선 땅에 거의 무작정 여행을 온 미도리(가타기리 하이리 扮)를 서점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고 갈 곳이 없는 미도리를 대뜸 자기와 함께 지내자고 초청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알고 집으로 오라고 하느냐는 미도리의 질문에 사치에는 만화 영화 가차맨(독수리 오형제?)의 주제가 가사를 외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좋은 사람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약간 뜬금없어 보이는 가차맨의 가사가 왜 등장하는지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겠다.
얼떨결에 지낼 곳을 마련한 미도리는 식당 일을 도와서 자신의 밥값이라도 하기로 하는데, 미도리를 뒤이어서 이런저런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이 자그마한 식당에 모여들게 된다.
사치에의 경우처럼 감독은 등장 인물들의 지나간 사연을 세세히 소개하지 않는다(그 중 한 사람은 예외이긴 한데, 누군인지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다만 영화 중간 중간에 슬쩍슬쩍 보여주는 짧은 에피소드를 통해서 그들이 모두 나름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임을 넌지시 알려 줄 뿐이다.
그리고는 식당을 중심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음식과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자신의 상처로부터 조금씩, 천천히 회복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소소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지나가지만, 특별히 스펙타클한 사건도, 극적인 반전도 없다. 그러니 당연히 넘치는 감정도 없다.
그저 커피를 조용조용 내리고, 오니기리를 정갈하게 만들고, 연어구이를 곱게 구워내는 요리 과정과 그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깔끔하고 맛나 보이는 음식들이 주된 볼거리인 셈이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왠지 마음이 따뜻하고 조용해진다. 어쩌면 그 심심함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싶다. 꼭 거창하게 감동적이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 손 내밀어서 조그마한 도움들을 주고받을 수 있고, 힘들 때 커피 한 잔, 따뜻한 밥 한끼를 나누는 순간들이 어쩌면 인생의 어느 모퉁이에서는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결정적인 격려가 되기도 하는 법 아닐까.
지금은 돌아가신 박완서 작가가, 남편과 사별한 지 겨우 몇 달 후에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마취과 전공의를 하고 있던, 그야말로 앞날이 창창한 젊은 아들을 졸지에 잃고 너무나 상심한 채로 어느 수녀원에 머물 때, 혼자 있는 방 앞에 밥때가 되면 수녀님들이 정갈한 밥상을 조용히 차려 두고 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하느님과 세상에 대한 분노로 어찌할 수 없어서 밥이고 뭐고 거들떠 보지도 않고 그 밥상을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 두면, 언제인지도 모르게 그 밥상이 치워지고 다시 다음 밥때에 또 정갈한 밥상이 방문 앞에 놓여졌단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박완서 작가는 어느 글에선가 그 밥상이 그렇게 고맙고 위로가 되었다고 썼던 걸로 기억한다.
참척(慘慽)의 슬픔을 당한 엄마를 위해 재촉하지도 위로하지도 않고 그저 때가 되면 문 앞에 놓아둔 밥상에 깃든 마음을 생각하면 참으로 울컥해진다. 우리도 그런 밥상의 마음을 떠올리면서 누군가에게 밥 한끼를 대접하고, 누군가의 밥 한끼를 대접받을 수 있을까.
섬세한 화면과 이야기가 돋보이는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1972년생 여성인 오기가미 나오코이다. 2006년에 만들었으니 영화를 찍을 때 삼십대 중반이었고 이 영화가 그녀의 두 번째 장편영화라는데, 세상과 삶을 향한 시선이 깊고 따뜻하다. 그 다음 해에 만든 영화인 ‘안경’은 출연자와 분위기가 카모메 식당과 너무나 비슷해서 마치 시리즈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인데, 같이 보면 묘하게 땡기는 구석이 있다. 특히 두 영화 모두에 출연한 결정적 조연인 모타이 마사코(이 영화로 30회 일본 아카데미 우수 여우조연상을 받았단다)의 연기는 정말 압권이다. 많은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이후로도 감독은 상처받은 사람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대안적인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들을 꾸준히 영화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의 오만가지 감정을 바닥까지 뒤집어서 마치 화면에서 튀어나올 듯이 보여주는 것이 한국 영화의 특징이라면, 그 감정을 꼭꼭 누르고 다듬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화면 뒤로 물러나서 무심하게 보여주는 게 일본 영화의 한 특징인 것 같다. 두 나라 사람들의 기질적 차이 혹은 정서적인 차이가 영화에서도 드러나는 셈이지만, 카모메 식당은 특히 일본 사람 특유의 그 절제미와 담백함을 잘 보여준다.
오기가미 감독의 영화는 누가 봐도 따뜻해지는 영화들이지만, 카모메 식당은 특히 여성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함께 먹는 밥과 수다가 지닌 푸근함과 위로는 아무래도 여성들이 더 잘 알지 싶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어쩌면 그게 더 절실하게 필요한 건 남성들인지도 모르겠다. 안 그런 척하고 뻐기면서 사느라 도무지 수다를 떨려고도, 제대로 밥 한 그릇을 마음 열고 먹으려고도 하지를 않아서 탈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