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그리고 삶에 대한 따뜻한 성찰

영화 #7. 굿'바이

by 천생훈장

다키타 요지로 감독, 모토키 마사히로, 히로스에 료코, 야마자키 츠토무, 우에무라 유리코 출연, 2008년, 일본

역설적이게도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선명하게 깨닫게 되는 순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죽음을 경험할 때이다.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나면 ‘살아있을 때 왜 좀 더 잘해주지 못했을까,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했는지를 왜 좀 더 많이 말해주지 못했을까’라는 후회가 가슴을 치게 마련이고, 혹여라도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이라면 삶을 왜 그토록 허투루 보냈는지, 왜 가슴이 원하는 일들을 따라 살지 못하고 생각해 보면 별것도 아닌 일들에 그토록 매여 살았는지를 뼈저리게 돌아보곤 한다.


영화의 주인공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는 고향 야마가타 사람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지만 그리 탁월한 실력을 갖추지는 못한 첼로 연주자이다. 간신히 자리를 얻은 교향악단이 졸지에 해체되고 그 바람에 비싸게 산 첼로마저 어찌할 수 없어진 형편을 뒤로한 채, 다이고는 2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카페를 운영했던 고향으로 돌아와 아내와 함께 어머니가 남겨 둔 집에 자리를 잡는다. 그 집은 옛날 어머니가 살던 모습과, 주인공이 어릴 때 바람이 나서 집을 떠나 버린 아버지가 모아 둔 레코드가 여전히 소중하게 남아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보던 다이고는 우연히 여행의 도우미를 구한다는 전단지를 보게 되고, 무슨 일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염과 납관을 하는 이쿠에이(야마자키 츠토무)의 회사에 얼떨결에 취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절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납관 일을 배워 나가면서 자신의 일이 갖는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 가게 된다.

그렇지만 다이고가 하는 일을 알게 된 고향 친구 야마시타(스기모토 뎃타)는 그를 경멸하고, 아내 미카(히로스에 료코)조차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고 집을 떠나게 된다. 주위의 오해와 멸시 속에서도 운명처럼 맡게 된 납관 일을 포기하지 않는 다이고는 마침내 아내와 주위의 인정을 얻게 되고, 납관을 통해서 어릴 적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아버지와도 극적인 화해를 이루게 된다.


영원히 죽지 않으면 좋을 것 같지만, 그리고 흔히 영생(永生)이라고 할 때 사람들은 지금부터 쭉 영원히 사는 걸 상상하지만, 사실 그런 삶은 축복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깝다. 만일 우리가 지금 상태 이대로 영원히 죽지 않는다면, 과연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 하는 일들을 굳이 지금 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천년 후에, 만년 후에 혹은 백만년 후에 해도 그만이니까 말이다. 그런 삶은 얼마나 지루하고 끔찍할까. 너무 자주 잊어버리고 살기는 하지만 이 삶은 오직 한 번 주어진 것이고, 정해진 끝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이 삶과 이 순간이 소중하고 놀라우며 감사한 일이 아닐까.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2008년 작인 굿’바이(일본어 원제는 오쿠리비토 おくりびと로 납관사라는 직업명을 그대로 쓴 거라고 한다)는 이렇듯 소중한 삶의 의미를, 원하지 않았지만 납관사라는 직업을 갖게 되고 그 직업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는 주인공 다이고와 주변 인물들을 통해서 따뜻하게 보여준다.


일상적으로 타인의 죽음과 고통을 대해야 하는 것이 의사를 포함한 의료인들의 직업적 숙명이지만 정작 우리는 죽음과 고통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죽음과 고통을 직면하고 대처하기 위한 정서적인 경험과 자원도 부족하지 않느냐고 수업 중에 의과대학 학생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만일 여러분들이 의사 되기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삶에서 죽음을 직접 경험해야 할 일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는 이야기도 함께 하고.

하지만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고통과 죽음이야말로 우리의 삶이 유한하고 그러니만큼 더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일러 주는 가장 큰 경험이기도 하다는 이야기, 그러니 일부러 고통을 자처할 필요는 없지만 삶에서 겪어야 하는 슬픔과 이별, 고통을 깊이 겪어낼 때 우리는 좋은 치유자, 좋은 위로자가 될 수 있고, 구체적인 내용이야 다 다르기는 하지만 고통과 슬픔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 얼마만큼 깊이 내려가서 자신의 고통을 직면하느냐가 사실은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가끔씩 하는 것 같다.

너는 네 말처럼 그렇게 살고 있느냐고 물으면 할 말은 별로 없지만, 의사로서 또 의사가 될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서 좀 더 깊이 삶을 껴안으려고 제 나름대로 애쓰며 산다고는 할 수 있겠다. 어쩌면 삶의 고통과 불확실성을 깊이 껴안는 것이야말로 불확실할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삶을 제대로 살아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물론 아직 그런 상황이 아니니 100% 장담할 수야 없지만, 죽음을 목전에 두게 된다면 ‘왜 좀 더 감동하면서 살지 않았는지, 왜 좀 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면서 살지 못했는지, 남들 눈은 좀 덜 의식하고 마음이 하고 싶은 일을 더 하면서 살지 못했는지’가 후회될 뿐, ‘왜 좀 더 돈을 모으지 못했는지, 왜 그 주식을 사지 않았는지, 왜 좀 더 좋은 자동차를 타지 않았는지’를 후회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만약 당신에게 살 날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들에게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지를 말해주겠다고 한다고 대답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대부분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이 질문과 대답에는 반전이 있다. 이 질문 다음에 이어지는 질문은 “그렇다면 당신은 왜 지금 그걸 하지 않습니까?”이다. 생각해 보면 말하지 못하는 혹은 말하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지는 않아서, 이 글 쓰느라 바빠서, 그런 말 하기는 너무 쑥스러워서, 상대가 먼저 말하면 나도 그렇다고 해주려고 등등등 - 삶에서 무얼 중요하게 여기면서 살고 있는지, 그것이 정말 그토록 중요한지, 그러느라 정작 진실로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을 놓치면서 살고 있는 건 아닌지를 번뜩 되돌아보게 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영화에는 다양한 장례식 장면들이 나온다. 구체적인 상황과 사람은 모두 다르지만 먼저 죽은 이를 보내는 산 사람들이 전하고 싶어 하는 말은 결국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이고, 장례식마다 여러 모양으로 변주된 그 인사가 전해지는 장면들은 한결같이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참으로 뻔해 보이는 말이지만, 사실 우리가 이 삶에서 배우고 가야 할 가장 근원적인 교훈은 그 말들에 모두 담겨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직접 겪는 이별에 비할 수는 없겠으나, 영화를 통해서라도 죽음과 삶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다면 좋은 경험이 될 터이다.


영화 굿’바이는 납관이라는 지극히 일본적인 장례 행위를 통해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억지스럽지 않게 짚어보도록 해준다.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납관과 장례일을 하층민들이 맡아해 와서 이 직업에 대한 편견이 크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영화에서는 그런 일반인들의 인식을 보여 주는 에피소드들이 제법 등장한다. 그렇지만 영화에서 표현되는 일본 특유의 엄격한 형식미를 갖춘 납관 의식은 매우 정적이면서도 엄숙해 보인다.


죽음과 납관이라는 주제를 다루어서 무겁고 심각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는 유쾌하고 밝은 것도 이 영화의 미덕이다. 쵸카이산(鳥海山)을 배경으로 정갈하게 담아낸 야마가타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과, 익히 알려진 음악감독인 히사이시 조의 느낌을 더해주는 음악도 마음을 기울여서 함께 보고 들으면 영화를 보는 시간이 더욱 풍성하겠다.

2009년 제32회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포함하여 13개 부문을 수상하였고, 2008년 몬트리올 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았다. 그 외에도 많은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하였고, 부산 국제 영화제 ‘아시아의 창’ 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그만큼 여러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좋은 영화라는 뜻이겠다.


사족

이 영화를 만든 타키타 요지로 감독이 2003년도에 만든 영화인 ‘바람의 검, 신선조’(같은 시대를 다루고 있지만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원작인 ‘바람의 검심’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영화이다)는 막부 시대 말기의 사무라이를 주제로 한 매우 신파적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마음을 움직인다. 아사다 지로의 소설 ‘임생의사전’을 영화화했는데, 자신의 가족과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짊어지고 열심히 살다 간 시골 사무라이의 이야기에 중년 남성인 내가 과하게 감정이입을 해서 그럴 수도 있다. 너무 아재 취향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 나는 아재인 걸 어쩌겠는가.

두 영화 모두 DVD가 출시되어 있고, 요즘은 OTT 스트리밍 서비스 사이트나 VOD 플랫폼에서도 볼 수 있으므로 짬날 때 묶어서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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