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영화 "닥터(The Doctor), 1991
지금은 의사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인 직업이 되었지만,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동서양 모두에서 의학적인 치료법의 실질적인 효과는 크지 않았고 의사라는 직업도 사람들에게 그리 인정받지는 못하는, 그래서 사회적인 지위도 별로 높지는 않은 직업이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이후로 의학은 생물학을 근간으로 한 자연과학적 토대 위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주류 학문이 되었고, 의사들의 사회적인 지위도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지금처럼 되었다. 아마 의사의 사회적인 지위가 지금처럼 높았던 적은 인류 역사상 처음일 것이다.
이렇듯 의학이 우리 몸에 대해서 갖는 권위가 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의학은 질병뿐만 아니라 건강에 관해서도 유효한 학문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지만, 의학은 인간 질병의 진단과 치료를 주된 관심사로 하는 학문으로 의학의 일차적인 관심 대상은 건강이 아니라 인간의 몸에 자리 잡은 ‘질병(Disease)’, 더 정확하게는 '생의학적인 질병 단위(biomedical disease entity)'이다.
의학적 시선이 ‘생의학적인 질병 단위’에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긴 시간 동안 의료계 내에서 집중적인 훈련을 받는 의사들은 자신도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생물학적 실체로서의 질병을 인식체계의 중심에 두게 되고, 그 필연적인 결과로 환자, 다시 말하면 사람을 질병의 배경으로 인식하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의사가 실제로 진료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인간의 질병(Human’s disease)’이 아니라 ‘병에 걸린 사람(Diseased human)’이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한 사람의 온전한 인간으로 만나주는 다른 사람을 기대하게 된다. 그 상황이 병에 걸려서 나약해져 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의학 자체가 가진 특성이 이러하므로 의사가 환자를 전인적으로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영화 ‘닥터’의 주인공 잭 맥키는 의사로서는 탁월한 실력과 명성을 지녔지만, 그래서 그 명성에 걸맞게 명석하고 바쁘지만 아내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여러 문제들을 안고 있는 흉부외과 의사이다. 그러니까 외적으로는 성공했지만, 내면에는 깊은 공허함을 안고 있고 그것을 자신의 명성으로 가리고 사는 의사라는 말이다. 치료는 잘 하지만 타인의 고통과 두려움에는 놀라우리만치 무감하고 다른 이들의 감정에 냉소적인 공격성으로 반응하기 일쑤인 잭은, 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과 다른 이를 외롭게 만들면서 높은 담장에 둘러싸여 사는 인물이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도 그런 의사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겉으로 보기에만 별 탈없이 살아가던 잭에게 어느 날 갑작스럽게 후두암이 찾아오고, 졸지에 잘 나가는 의사에서 중증 환자가 되어버린 잭은 의사일 때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환자로서의 삶을 통해 고통과 두려움, 외로움과 절망감을 경험하게 되고, 이런 감정들 그리고 인생의 고난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 나가게 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흔히 표현하는, 환자가 되어보고서야 비로소 환자의 어려움을 깨닫게 되는 의사에 대한 이야기는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진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의학교육, 혹은 의학도를 위한 영화 추천순위에서 이 영화는 늘 1,2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비록 영화의 주제와 전개 방식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주인공 매키가 암을 진단받고 나서 경험하는 두려움과 절망, 그리고 무심하고 냉정한 남편 때문에 그의 아내인 앤이 겪는 외로움과 단절감이 영화에서는 섬세하고 공감 가는 방식으로 표현되고, 이야기의 균형을 잡아주는 캐릭터라 할 수 있는 뇌종양 환자 준 또한 고통을 안고 살지만 의연하고 아름다운 캐릭터로 묘사된다. 모두가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를 또한 모두가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게 표현한 것이 영화가 지닌 중요한 미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수술 장면이나 후두암을 진단받는 장면처럼 의학적인 상황에 대한 묘사도 디테일이 살아 있어서 지금 보아도 별로 어색하지 않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이 모여서 좋은 의사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바람직한 의사-환자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너무 무겁지는 않은 방식으로 돌아보게 한다.
언젠가 다른 글에서 모든 좋은 이야기는 성장과 회복에 대한 서사를 공감적으로 담고 있다고 한 적이 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인데, 직업적으로는 성공했으나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서 이기적이고 권태로운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 잭은 후두암을 통해서 타인과 공감하고 자신의 약함을 드러낼 줄 아는 인간으로 성장한다.
1991년 영화이니 벌써 30년도 더 지난 영화이고, 오래된 세월만큼 영화에서는 지금 보면 낯선(?) 풍경들이 많이 나온다. 이제는 병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엑스레이 필름 뷰박스, 당시에는 최첨단 기계였던 카폰, 그리고 구식 컴퓨터 위에 올려져 있는 브라운관 모니터까지도 익숙하면서도 낯선데, 흔히 차트라고 불렀던 종이 의무기록부와 환자에게 기입하라고 건네주는 종이 서식들은 정겹기까지 하다. 아마 젊은 세대들은 이것들이 뭔지 아예 모를 테지만 그래도 괜찮다. 각자의 시대는 각자의 이야기와 도구들이 있고, 모든 세대는 자신의 흔적을 남기면서 서서히 저물어 가는 법이니까.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브라운관이 LCD 모니터로 바뀌고, 카폰이 2G와 3G를 거쳐 스마트폰으로 바뀌고, 종이 차트가 전자의무기록부로 바뀌는 일이 아니라, 어떤 도구를 사용하느냐와는 상관없이 인간으로서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과 두려움, 불확실성은 모든 시대를 가로질러 인간 존재에 새겨져 있는 고유성이라는 사실이 아닐까. 더 첨단의 기기를 만들고, 더 효율적인 진단과 치료를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질병에 걸린 인간’을 만나야 하는 의사로서 다른 이의 고통과 두려움에 나 역시 고통과 두려움을 경험한, 혹은 경험하고 있는 인간으로서 마주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는 일이 그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는 말이다.
학생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면서 어떤 장면과 어떤 감정에 공감하고 감정이입하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영화를 보고는 있지만 바쁘고 바쁜 본과 1학년 생활에 치여서 ‘감정 따위 개나 줘버리라지’라는 망연한 표정인 학생들도 있고, 피곤에 겨워서 반쯤은 기절 상태인 학생들도 많지만, 아내 앤이 남편 잭에게 자신의 외로움을 조용히 이야기할 때나 잭이 혼수상태에 빠져버린 준의 손을 잡고 자신의 나약함을 토로할 때, 사막 가운데서 춤추면서 눈물을 흘리는 준의 얼굴을 바라볼 때 가만가만해지는 학생들의 표정을 보는 일은 언제나 마음 한쪽을 따뜻하게 한다.
이제 막 의학도로서 본격적인 공부에 들어선, 그래서 하루에도 몇 시간씩 해부 실습을 하느라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의과대학 본과 1학년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함께 보는 두 시간 남짓을 통해서 이 영화가 가진 섬세하고 다양한 의미들을 모두 알아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의사가 되고 난 후 언젠가 문득, 하지만 너무 늦지는 않게 이 영화가 기억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그래서 지금은 다 알지 못했던 고통과 외로움을 그때는 알아볼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의사와 환자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 전혀 닿을 것 같지 않은 존재들이 사실은 아주 깊이 이어져 있음을, 내가 겪어낸 슬픔과 고통을 통해 아픈 몸을 내게 맡기는 이들의 슬픔과 고통도 보듬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한 번 더 영화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깨달아도 좋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언제나 감동하는 장면은, 준과 잭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네바다의 위네무카로 아메리카 원주민 댄스 공연을 보러 가다가 사막 한가운데에 멈추어서 춤추는 장면이다. 이제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없음을 잘 알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지금 여기가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지를 고백하면서, 그리고 어떤 것도 나를 그저 스쳐 지나가게 하지는 않겠다고 말하면서 준이 춤추고 우는 장면은, 해가 지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사막의 노을 풍경이 보여주는 상징성과 더해져서 영적이면서 비감한 느낌을 뭉클하게 전해 준다. 물론 영화의 메시지를 가장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마지막에 잭이 자신의 전공의들을 72시간 동안 환자로서 입원 경험을 하게 하는 장면이기는 하지만.
지금 감각으로 보면 이야기의 전개도 느리고 구성도 단순하지만, 좋은 서사가 갖는 힘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개봉한 지 오래되기도 했고 아주 유명하다고 할 수도 없어서 생각보다 영화를 구하기 어렵다는 게 함정이기는 한데, 인터넷 시대이니 잘 찾아보면 디브이디든 파일이든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더 쉬운 방법이 있을 수도 있고. 부디 영화를 찾는 데 성공해서,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좋은(oldies but goodies) 영화의 감동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