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 4.
어릴 때 살던 집은 뒤쪽 담벼락이 작은 골목과 면해 있었다. 삼사층짜리 건물들의 뒤쪽과 골목을 사이에 두고 있는 집은 건물보다 많이 낮아서 올려다보면 건물의 창이 보였는데, 아마 그 창 안쪽에서는 집의 마당과 거기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훤히 보였을 것이다.
대로변의 건물 뒤에 숨어 있는 골목은 으슥한 데다 사람들의 통행이 많지 않아서 저녁 무렵이나 밤이면 슬쩍 용변을 보고 가는 사람들의 흔적이 종종 생기곤 했다. 때로는 소변 자국만이 아니라 공책만 하게 찢은 신문지 몇 조각이 덮인 무더기도 있곤 해서, ‘아무리 골목이지만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인데 저걸 어떻게 만들었나’ 하고 약간의 경탄감이 생기기도 했었다. 한참 후에 작은 가로등이 달리고 나서 많이 줄기는 했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마을까지는 아니어도 제법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 골목이어서 화장품 장수, 야채 장수 아줌마며 과일 장수, 엿장수 아저씨들이 지나다니면서 필요한 것들을 팔았고, 오래 다닌 이들은 단골을 만들어서 외상 거래도 곧잘 이루어지곤 했었다.
그 이들 중에 강냉이 장수 아줌마가 계셨다. 자그마한 몸집에 까맣게 그은 얼굴을 하고는 손수레를 끌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폐지나 돈이 될 만한 잡동사니를 받고 튀긴 강냉이를 한 바가지씩 퍼 주시던 분이었다. 앞니가 커서 주름이 많은 얼굴로 웃으실 때면 순한 토끼 같은 인상이 되었는데, 아주 오랫동안 그 골목을 드나들었으므로 골목의 모두와 허물이 없었고 우리 집에서도 더운 날 물 한 잔씩을 얻어 마시면서 다리 쉼을 하고 가시곤 했었다.
하지만 세월이 가면서 화장품 아줌마도, 엿장수 아저씨도 시나브로 줄어서 더는 골목에서 이들을 보기 어렵게 되었고, 내가 대학을 졸업한 후에 가족이 이사를 가게 되어서 그 모든 이들이 까맣게 잊히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였나, 이제는 그 조차도 아주 오래전 일이 되었지만 결혼을 하고 얼마 후 친척댁의 결혼식을 다녀오다가 강냉이 아줌마를 다시 보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 옛날 모습 그대로인 작은 몸과 까만 얼굴에 몸빼 바지를 입고 시장 앞 좌판에서 작은 참외들을 쌓아 놓고는 팔고 계셨다.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한복을 차려입으신 어머니도 그분도 서로를 금방 알아보셨고, 잠시 동안 반갑다는 인사가 오고 갔고, 그리고는 다시 잠깐의 어색함이 지나갔고 우리는 그냥 오던 길을 오려고 하는데, 그분이 줄 거라고는 이것밖에 없다면서 고단해 보이는 얼굴에 힘없는 웃음을 지으며 작은 참외 몇 개를 내미셨다.
강냉이 자루와 작은 참외 무더기 사이를 지나왔을 세월의 고단함에 대해서 잠시 마음이 숙연해졌던 것 같지만 우리 일행 중 누군가가 참외를 사 드렸는지, 그분이 내미신 참외에 대한 답례로 들고 있던 무엇이라도 건네 드렸는지는 기억에 없다.
이만큼 나이가 들고 보니 살아온 세월의 고단함이 얼굴과 몸에서 묻어나는 이들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애쓰면서 살지만 제 한 몸 밖에는 기댈 언덕도 없어서 평생이 고달팠을 이들의 뒷모습을 보는 일은 쓸쓸하다. 코로나 감염병이 온 세상을 덮고 있는데, 같은 재난이어도 가난하고 고달픈 이들의 자리가 훨씬 더 힘들 수밖에 없는 가슴 아프고 냉혹한 현실 앞에서 강냉이 한 바가지와 참외 몇 알이 새삼 겹쳐서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