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 함께 한 수련회를 기억하며
베트남 출신의 선사(禪師)이자 불교 지도자로, 그리고 마음챙김 명상 지도자로 널리 알려진 틱낫한 스님께서 1월 22일 열반하셨다. 세수 95세, 법랍 79세. 마음의 스승으로 많이 존경하던 분이다.
글로야 진작부터 뵈었으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틱낫한 스님을 직접 뵌 것은 2003년 3월 28일부터 3월 30일까지 천안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서 있었던 수련회에서였다. 스님이 쓰신 ‘화’라는 책이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 연장선으로 한국 방문이 추진되었는데, 한국 방문 일정 중의 하나로 ‘틱낫한 스님과 함께 하는 3일간의 수행’이라는 수련 프로그램이 기획되었다. 원래는 100명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신청자가 많아서 200명으로 인원이 늘면서 경기도였던 장소가 천안으로 바뀌었고, 늦게 신청해서 대기자 명단에 들어가는 바람에 안될 거라고 포기하고 있었던 우리 부부에게는 참으로 뜻하지 않은 행운이 된 셈이었다.
벌써 20년이나 지났지만 수련 장소에 도착한 첫날, 참석자들 모두를 편히 눕게 한 채 틱낫한 스님이 창설하신 참여불교 (Engaged Buddhism) 승가에 속한 여러 스님들이 노래를 불러주는 ‘온전한 휴식’ 프로그램부터 스님의 법문, 함께 걷는 걷기 명상, 짧지만 마음을 울리는 플럼빌리지(Plum village, 프랑스 보르도 지역에 틱낫한 스님이 최초로 세우신 사찰이자 공동체)의 노래를 배우던 시간이며 마지막 날 함께 찍은 단체사진까지 모든 프로그램이 평화롭고 좋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자그마한 체구에 항상 걷기 명상 모드로 천천히 걸으시던 스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헤아려 보니 그 때 이미 75세 정도로 적지 않은 연세셨다. 법문을 위해 강당 중앙에 앉으신 스님이 옅은 미소를 띈 채 회중을 천천히 둘러보고 나서는 베트남 억양이 묻어 있는 영어로 “Dear Friends”라고 이야기를 시작할 때, 그 넓은 공간과 참석자들 전체를 감싸 안는 평화로운 기운이 얼마나 강력한지 참으로 놀랍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스님이 법문에서 말씀하시는 내용은 그분의 책에 다 나오는 내용이다. 그러니 책만 읽으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스승님을 직접 뵐 때 그 분의 가르침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승의 행동과 미소, 걸음걸이에서 전해지는 가르침이야말로 말이나 글로는 전할 수 없는 진짜 가르침이 아닐까.
자신의 삶과 존재가 가르침 자체가 되신 분들을 뵙는 일이 참으로 드문데, 스님과의 만남은 그런 드문 행운 중의 하나였다고 하겠다. 그래서 틱낫한 스님과의 만남이 있었던 3일의 짧은 수련회는, 개인적으로 경험한 이런저런 수련회와 만남들 가운데에서 가장 아름답게 기억되는 만남 중 하나이다.
2014년 뇌출혈 발병으로 긴 혼수상태를 겪으셨고, 깨어난 이후로도 말씀을 하실 수는 없으셨지만 간간이 전해 듣는 스님의 소식만으로도 큰 가르침이 되었다.
정작 가신 이는 아무 흔적이 없는데, 남은 이들은 이런저런 상념과 슬픔을 달래기 어렵다. 이 땅에서 많은 기쁨과 깨달음을 전해 주시고 이제 형상을 벗어버리셨으니 그 또한 큰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추모와 장례 절차가 진행 중이고, 이번 주 토요일에 화장(Cremation) , 그러니까 다비식이 거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또 한 분 마음의 스승을 보내드리면서, 새삼 이 땅에서의 날들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음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