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에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께서 살아 계실 때, 우리 집에 들르러 오시면 오시자마자 부엌칼이며 과도며 집에 있는 칼들을 모두 거두어서는 뒷베란다에 나가 앉으셔서 갈아 주셨습니다. 서걱서걱 경쾌하게 칼이 갈리는 소리를 들으면 아직도 아버지께서 기력이 있으시구나 싶어서 안도감이 들곤 했지요.
방학을 맞아 집에 온 딸이 요리를 하려고 이것저것 대파며 방울 토마토며를 자르다가 혼잣말처럼 이야기합니다. “할아버지가 안 계시니 칼이 잘 안 썰리는구나. 자르기 힘이 드는군”
돌아가신 뒤에 제 나름대로 두어 번 칼을 갈아 두었는데 벌써 날이 무뎌졌나 봅니다. 숫돌을 들고 와서 싱크대 위에 두고는 칼을 갈아 봅니다. 처음에 갈 때는 칼을 가는 방향도 힘 조절도 영 어설펐으나 지금은 조금 요령이 생겼습니다. 아버지는 숫돌을 고정하는 거치대를 이용하여 베란다에서 하셨지만 저는 그냥 숫돌째 놓고 부엌에서 합니다. 숫돌과 거치대도 아버지가 생전에 사 두신 거지요.
딸의 이야기를 듣고 숫돌을 사용해 칼을 가노라니 이 사소해 보이는 일에도 배어 있는 아버지의 마음이 떠올라 뭉클해집니다. 이제는 온전히 제 몫이 되었는데, 지금은 우리 집 칼의 날을 세우지만, 아들과 딸아이가 더 나이 들어 배필을 만나고 자녀를 본 뒤에까지 제가 자녀들의 칼을 갈아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언젠가 저의 손자 손녀도 칼을 갈아주는 모습으로 저를 기억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일상의 소소한 일을 통해 전해지는 가족 간의 마음을 새삼 떠올려 보는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