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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생훈장 Jun 15. 2023

딸의 등원식

실습 시작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어느 새 훌쩍 시간이 흘러서 치과대학 본과 3학년씩이나 된 딸의 등원식 행사가 있다고 학교로부터 우편물이 왔습니다. 등원식이라니 병원에 들어감을 기념하는 식이라는 뜻쯤일텐데, 치과 의사로서 가운을 처음 입는 걸 기념하는 행사이겠지요. 

저도 학교일을 하면서 비슷한 행사를 주최해 보았고, 의미있는 행사임을 알고 있는 터라 꼭 참석해야겠다 싶었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행사가 열려서 오랫만에 오후 반차를 내고 아내와 함께 다녀왔네요. 

제가 의과대학을 다닐 때 청진기와 가운을 받고 설레어 하던 기억은 있습니다만 실습을 시작하는 공식 행사가 따로 있지는 않았는데, 요즘은 대부분의 학교들이 의복례, 등원식, White coat ceremony, 히포크라테스 선서식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교직원과 학부모를 모시고 제법 규모 있게 행사를 치르는 것 같습니다. 


진주에서 익산까지는 두 시간이 조금 넘어 걸리므로, 넉넉하게 여유를 두고 두시 반쯤 출발하였습니다. 그 날 점심 때 미장원 예약을 했던 아내가 머리 손질을 마치고 급하게 서둘러야 해서 뭘 이렇게 서두르냐고 불만이 꽤 있었습니다만, 먼 길 갈 때는 서둘러야 한다는 저의 생각에 맞추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도착하고 보니 한 시간 쯤이나 남아서 그 다음 지청구는 물론 제가 고스란히 들어야 했지요. 


전국 여러 곳에서 오셨을 부모님, 조부모님들과 함께 로비에서 준비한 다과도 들고 치의학관도 둘러보고 하면서 여유롭게 기다렸습니다. 맛난 떡이며 음료수를 넉넉하게 준비해 두셔서 좋았는데, 전공의로 보이는 젊은 선생님들 몇 분이 오셔서 간식을 야무지게 챙겨가는 모습도 보기 즐거웠습니다. 


치의학과장님의 사회로 행사가 진행되었고, 총장님도 오셔서 축사를 해주셨습니다. 보기 좋아서 저희 학교도 다음 히포크라테스 선서식 때는 총장님을 모실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저런 내빈 분들의 축사가 이어지고 나서 학부모님들이 가장 기다리는 가운 착복식이 있었습니다. 사실은 이미 실습이 시작되어서 이 날 처음 입는 건 아니었다네요. 그래도 가운을 입혀주고 단추도 채워주고 하면서 짧지만 뿌듯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가운을 모두 착용하고 난 다음에는 치과의사 윤리선서도 하더군요. 


우리 학교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식은 의복례와 학생 선서, 그리고 학장과 내빈 축사 정도로 끝이 났는데, 딸의 학교는 학생들이 실습조별로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는 것이 이채로웠습니다. 바쁜 중에도 각자의 개성과 끼를 잘 발휘해서 재미있고 아기자기한 내용들을 만들었더군요. 온라인으로 투표를 해서 1등한 조에게는 상금도 준답니다. 행사 주최는 학교가 하지만 주관은 학생들이 해서인지 보직자 교수님들을 소개하는 시간이 따로 없고 학생대표들을 소개하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행사장에 들어갈 때 행운권 번호를 나누어 주길래 내심 가벼운 기대를 했었는데, 행운권 추첨 선물을 갤럭시 왓치 하나로 딱 한 분께만 드리더군요. 잠깐 당황. 

머리는 하얗게 셌으나 얼굴은 아주 젊어 보이시는 교수님 한 분이 전문가 포스로 열심히 행사 사진과 가족 사진을 찍어 주셨고 그 중 몇장을 나중에 딸이 보내 주었는데, 넘나 마음에 드는 사진이 있어서 카톡과 페북의 프로필 사진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행사를 잘 마치고, 딸과 함께 저녁식사도 즐겁게 한 후에 또 밤길을 짚어서 진주로 돌아왔습니다. 입학이나 졸업, 진급처럼 삶의 한 매듭마다 이렇게 함께 기념하고 축하하는 것이 또한 삶 그 자체의 풍성함이기도 함을 다시 기억하게 해준 시간이어서 감사했네요.


조별로 나와서 부모님들과 의복례를 행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딸과 함께 의복례를 했습니다. 치과대학 교수님 한 분이 행사 사진을 찍어서 올려주셨답니다. 
가운을 입혀주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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