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아버지가 위독하시대."
가슴이 철렁했다. 조퇴신청을 하고 컴퓨터를 껐다. 가장 짧은 시간에 아산충무병원 가는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학교에서 서울역까지 택시를 탔고 서울역에서 천안아산역 도착하는 기차를 탔다. 언니가 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중환자실에 도착했다.
아, 가슴이 떨리고 슬프고 어떻게 아버지를 볼 지 걱정됐다. 성호를 긋고 중환자실 맨 끝 쪽에 누워계신 아버지께 갔다. 결박된 채로 누워서 있는 아버지를 봤다. 입을 벌리고 숨을 거칠게 내 쉬고 있었다. 혈압을 높이는 승압제 탓에 아버지는 무척 고통스러워하셨다.
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낳아주셔서 감사해요. 훌륭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딸이라서 행복했어요. 고생 많으셨어요. 그리고 미안해요. 아버지를 위해 평생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가 듣고 싶은 말은 어떤 말이었을까? 육신의 고통으로 우리들의 말소리가 소음으로나 들리지 않았을까, 자꾸 대답하라고 말 시켜서 더 힘들지 않을셨을까..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는 아버지를 두고, 우리 형제들은 장례를 의논했다. 납골당, 장례식장 등을 말했다. 간호사는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일이 생기면 연락준다고 했다. 아버지는 고통과 두려움으로 지푸라기 한 올이라도 잡고 싶지 않을까? 누군가 따뜻한 손으로 손을 맞잡아주길 원하고 있지 않을까? 아버지를 따뜻히 안아드리고 싶은데 할 수 없었다.
이 밤, 그리고 오늘 밤, 내일 새벽과 아침. 아버지는 얼마나 더 고통스러워해야 할까? 난 이 시간을 그리고 밤을 어떻게 보내야 아버지에게 위로가 될까? 고통은 온전히 아버지 만의 것일까? 죽음은 인간 영역 밖의 문제이다. 신부님께서 병자성사를 주고 가셨다. 죽음 앞둔 사람과 유족에겐 사제의 말 한마디는 하느님의 말과 같다. 인간은 죽기 때문에 종교가 존재한다. 믿는 이에겐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다. 아버지의 선종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