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빕니다

산다는 것은

by 또다시

낮은 소리로 도란도란 말하는 모녀. 커튼 너머 침상에 새로운 환자가 들어왔다. ‘엄마, 암, 고령, 많이 살았다, 통증, 죽으면’ 등의 말이 새어 나왔다. 감정에 흐트러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했다. 어떤 사연을 안고서 이곳 암요양병원에 왔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커튼으로 구분된 자신의 영역에서 숨을 죽이며 건넛 환자의 안정을 기원했다.



“엄마, 아직 세브란스야?”


“아니, 방금 집에 도착했다.”


지난 세 달동안 엄마의 집은 암요양병원이었다. 여기서 먹고 자고 아팠다. 두려워도 했으며 안심하기도 했다. 엄마는 항암주사 치료를 3일씩 3주 간격으로 4차례 받았다. 항암주사 2차 때부터는 방사선치료를 병행했다. 방사선치료는 공휴일을 뺀 평일에 매일 받으러 다녔다. 총 30번 방사선 치료를 하기로 했으나 심한 식도 통증 부작용으로 23회까지 하고 중단했다. 1차 항암 주사 후엔 피를 토했다. 3차와 4차 항암 주사 후엔 백혈구 등 피 수치가 급격히 하락해 응급 상황이 발생했고 항생제와 수혈로 고비를 넘겼다. 오늘은 4차 항암이 끝난 지 일주일이 된 날이다. 여전히 엄마 몸 속엔 항암 주사약이 암과 정상 세포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공격하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적어도 2주 간은 엄마의 건강을 세심히 살펴야 한다.



그런데 안정이 중요한 이 때에 엄마는 그동안 ‘집’이라 불린, 안심할 수 있었던 이 곳-암요양 병원을 내일 아침에 떠난다. 오빠네 집과 가까운 아산의 한 요양병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 곳에 영영 있을 수는 없었다. 한 주에 100만원 가량 되는 비용이 엄마와 우리 형제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어젯 밤에 불안감을 넌지시 표했다. 극심한 식도 통증으로 괴로워하며


“난 다른 데 가면 음식 거부하고 이대로 죽을란다.”


지난 6개월 동안 엄마 간병으로 체력과 정신이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내가 먼저 쓰러질 것 같아.”


돈 핑계도 있었지만 나는 엄마를 나에게서 좀 떨어뜨려 놓기를 바랐을 지도 모른다. 그제와 어제 나는 심한 두통과 피로로 힘들었다. 이를 엄마에게 짜증과 독설로 표를 냈다. 엄마는 아무 댓구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 오늘 엄마는 어제와 다르게 평화로웠다. 나도 몸도 가볍고 정신도 맑았다. 우린 이삿짐을 쌌다. 수건 두 장, 실내화, 세면 도구, 속 옷, 의사 소견서, 처방전 그리고 큰 두 상자나 되는 약을 챙겼다. 빨래도 했다. 엄마가 말했다.


“옷을 깨끗하게 빨아 입고 가서 좋구나.“


내가 말했다.


”엄마, 엄마가 어디에 있든 난 매일 안부 전화할 거야. 간호사에게도 수시로 전화해서 엄마 건강을 점검하고 코치할게요. 새 집에서 건강 회복하고 우리 일산에서 또 만나요!”



여러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다녀봤다. 그곳에 누워있는 노인들에 비하면 우리 엄마는 젊었다. 케어 받고 있는 노인들 대부분이 90-100세 노인들이었다. 초고령화 사회가 되었음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코에 줄을 달고 영양을 섭취하는 노인, 숨만 쉬고 있는 노인, 움직이지 못하고 눈만 껌뻑이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내 눈엔 고통스러워 보였는데 그분들은 어떠한 지 모르겠다. 모두가 소중한 생명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고통 없이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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