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재

산다는 것은

by 또다시

‘땅재’에 성묘를 다녀왔다. 정식 이름이 무엇인지 모르는 산처럼 생긴 그곳을 사람들은 그저 땅재라 칭했다. 아버님의 증조할머니 묘가 있는 곳이다. 내가 젊은 며느리였을 적부터 오늘의 꽤나 나이 먹은 며느리가 될 때까지 설이나 추석 때면 자주 찾아서 벌초하고 성묘를 했다. 아버님은 조상신을 믿는다고 했다. 특히 잊혀진 조상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주면 ‘자식’들에게 복이 간다고 믿고 계신다. 장손인 아버님의 형님은 일찍이 홀로 되셔 조상들을 기릴 여유가 없었고 아버님의 동생들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자기 가족들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늘도 아침 식사를 마치고 시부모님과 우리 가족, 시동생 가족은 땅재에 갔다. 차가 오를 수 있는 최대한 높은 곳까지 가서 주차를 하고 산에 올랐다. 자주 가는 곳이지만 갈 때마다 묘를 찾기 힘들었다. 갈수록 묘는 나무와 풀에 파묻혀 점점 평평해져 땅과 비슷해지고 있었다. 오늘도 어렵게 묘를 찾아서 벌초를 하고 성묘를 했다. 아버님은


“할머니, **이와 ••이 가족이 할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이들에게 복을 주세요.”라고 말씀하셨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님은


“이번 성묘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하셨다. 아버님은 허리의 병 때문에 산에 오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내년엔 오지 못할 것이라 하셨다.


우리가 할머니의 묘를 찾아뵙지 않으면 얼마 안가서 묘는 주변의 흙과 구분이 잘 되지 않고 결국은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가톨릭의 종교 예식 중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엔 신부님이 이마에 재를 발라주며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말씀해 주신다. 모든 인간은 흙으로 돌아갈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죽음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여겨졌던 부모님은 머지 않아 돌아가실 것이다. 그 다음엔 죽음은 내 차례가 될 것이다. 메멘토 모리! 요즘 난 ’죽음‘을 매일 생각한다.


암에 걸린 우리 엄마, 노환으로 누워만 계시는 아버지가 삶에 미련을 두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신의 섭리에 자신의 목숨을 맡기시면 좋겠다. 현재 우리 부모님의 태도는 자식들을 매우 힘겹게 하신다. 엄마의 병으로 아버지는 요양원으로 모셔졌고 아버지는 지난 6개월 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시며 식음을 전폐하시다시피 하셨다. 결국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되었고 기운이 없어 목소리를 잃었다. 죽거나 살고 싶은 의지도 없이 하루하루 연명하고 계신다. 암에 걸린 엄마는 죽음의 순간에 심한 고통이 닥칠까 매일 겁에 질려 살고 계신다. 이러한 부모님을 바라보는 나와 형제들은 매일이 ‘고통’의 깊은 바다 속에 있는 것처럼 막막하며 빛이 보이지 않는다.


나에게 죽음이 예고되어 있다면 삶에 미련을 두고 싶지 않다. 두려움 없이 ‘잘 살았다’고 감사드리며 쿨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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