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를 베푸소서

산다는 것은

by 또다시

목구멍에서 엄지손가락만한 살덩어리가 치밀어 올랐다. 머리 안팎에선 작은 망치로 연신 이곳저곳을 두드려 패는 듯한 통증으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귀에선 라디오 채널을 맞출 때 사이사이 들리는 고음의 삐 소리가 연신 들렸다. 한겨울 아침 6시는 일출과는 거리가 멀었다. 두어 달 동안 스무 번은 넘게 다녔던 강변북로가 처음처럼 낯설었다.


‘저 이들은 몇 시에 집을 나섰을까?’ 채혈실은 이미 환자와 보호자로 꽉 차 있었다. 목을 빼고 번호표를 바라보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암환자들의 피는 주사기를 타고 쪽쪽 빨려 운명의 갈림길에 들어섰다. 피를 빨린 환자들은 엑스레이실, 씨티실, 심전도실 등으로 흩어졌다. 삶과 죽음을 이미 초월해 버린 듯한 환자들의 무표정한 얼굴은 순영의 머리를 더 두들겨 팼고 통증은 심해졌다. “걸을 수가 없다.” “이대로 죽을 것 같다” “손이 덜덜 떨려서 못 살겠다” 더이상 희망이 없다는 엄마는 말에서 순영은 엄마의 더 살고 싶다는 바람을, 죽음이 두렵다는 마음을 읽었다.



자신의 변덕스러운 마음에 순영은 인간의 약함과 교활함을 동시에 발견했다. 부모님을 자신의 집으로 모실 때만 해도 그들에게 조건없는 헌신을 맹세 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 아빠를 자신이 끝까지 책임질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 일은 마음먹기와 다르게 흘러갔다. 순영은 지치기 시작했고 첫마음은 사라졌다. 엄마는 살 욕망이 강해졌고 아버지는 삶의 의욕을 잃었다. 순영에게 엄마는 힘겨워졌고 아버지에게는 순영자신의 관심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웠다. 점점 약해져가는 순영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각하며 순영도 ‘자신을 찾고 싶다’는 강한 바람을 갖기 시작했다. 자신의 삶도 중요하다며 이기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주입시켰다. 부모님의 건강과 죽음은 부모님 각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며 자식은 책임이 없다고 마음 속으로 여러번 말했다.



인간은 자신의 온 삶의 책임자이다. 특히 죽음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어느 누구도 병들고 나이든 자신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다. 누구도 자신을 대신해서 죽어줄 수는 없다. 죽어가는 몸뚱이와 영혼을 돌볼 수 있는 이는 자신 뿐이다. 인간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의연한 죽음은 어떤 것일까. 인간에게 가장 큰 일은 ‘죽는 일‘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너의 죽음을 생각하라’는 자신은 영원히 살 것처럼 자만심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말이다. 언제가 될 지 모르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순영 자신은 어떤 마음일지,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지 상상했다.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면 인간은 겸손해진다.



순영은 죽음을 앞둔 이들(사실은 살아있는 모든 이)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유한한 인간을 무한의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은 ’신(God)’이다. 신께서 부모님께 자비를 베풀어 주시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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