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사람이나 새나 죽으면 불쌍하다“
아이들 시로 음악을 만든 백창우의 노래가 하루종일 머릿속에서 불려지고 있다.
요양병원에 계시는 아버지 소식을 들었다. 사람이 사람이 아니다. 이는 거의다 부서졌고 입 속이 상처투성이며 음식은 못드신다. 걷지 못하셔서 기저귀를 차고 계신다. 기운이 없어서 자식들이 전화를 걸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뼈에 살가죽만 겨우 걸쳐져 있다.
아버지는 대전 언니 집 근처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다. 엄마는 우리집 근처 암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다. 엄마의 암 투병으로 부모님은 함께 살 처지가 안되어서 ‘생이별’을 하셨다. 올봄에 큰병을 앓으셨지만 무사히 극복해낸 아버지였는데 엄마와 떨어진 뒤 3개월 동안 요양원-언니집-요양병원 등으로 거처를 옮기셨고 건강이 심하게 쇠약해 지셨다. 그 와중에 오매불망 엄마를 보고싶어 하셨다. 고향을 간절히 그리워 하셨고 내색은 안하시지만 자신의 죽음은 ‘고향’에서 맞이하고 싶어하시는 것 같다.
우리 형제들은 모두가 맞벌이다. 단 하나도 아버지를 고향에서 모실 수 없다. 아버지의 소원이 이루어지려면, 암을 극복한 엄마와 함께 귀향하는 방법 밖에 없다. 부디 그렇게 되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어떤 예측도 할 수 없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일은 ‘어떻게 죽느냐’이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말을 많이도 들었다. 그러나 죽음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가온다. 갑자기 쓰러져서, 사고로 급하게 죽기도 하며, 병에 걸려 고통 받다 죽기도 한다. 만수무강하신 노인들도 속은 말이 아니다, 백년 가까이 사용한 몸뚱이니 여기저기 탈이 나서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나의 기도 중 크게 차지한 부분은 부모님의 건강과 장수였다. 나의 기도는 이루어졌다. 그런데 장수하신 부모님의 말년에 이러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도 못했다. 인간의 끝이 이리도 비참하고 고통스럽단 말인가. 슬프고 안타깝다. 두렵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