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고해

산다는 것은

by 또다시

인생은 고해(苦海)다.
요즘 내 삶이 그렇다.
어디를 봐도 편한 데가 없다. 가족을 봐도, 부모를 봐도, 내가 몸담고 있는 교직도, 내 동료들이 처한 현실도, 이 땅도, 이 나라의 미래도 그렇다.
결국,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석가모니는 말했다. 인간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그 모든 생로병사가 고통이라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그러나 나는 수행자도, 성인도 아니다.
그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나의 기도는 작다.
누구의 목숨을 살리거나, 세상을 구원하는 기도가 아니다.
내 삶이 오늘 조금만 덜 힘들었으면, 내 가족이 무사히 하루를 넘기기를 바라는 기도다.
기도에도 수준이 있다면, 나는 아마 가장 밑바닥에서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이웃의 안녕과 세계 평화를 빌고 싶지만, 정작 내 입에서는 “제발 내 문제부터 풀어주소서”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나는 아마 지극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일지도 모른다.
신을 믿는다. 그러나 그 신이 나를 사랑하시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성은 “신은 내 기도를 듣고 계신다”고 말하지만, 감성은 늘 묻는다.
“나는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인가?”


어릴 적 내 부모님은 나에게 믿음의 기둥이 되어주지 못했던 것 같다.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신에 대한 믿음은 부모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고.
나는 늘 신을 갈망하지만, 나의 신께서는 좀처럼 대답하지 않으신다.
기도는 계속되지만, 응답은 없다.
나는 신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믿고 싶지만, 그 믿음 뒤에 항상 의심이 따라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도한다.
믿음이 확신이 아니더라도, 기도는 내 유일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친구여, 솔직히 말해보라.
네 인생에 고통의 시간이 길었는가, 환희의 시간이 길었는가.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고통이 훨씬 더 길었다고.


고통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그립다.
술잔을 주고받으며, 흐릿한 정신으로 쏟아지는 언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감정의 언어를 터뜨릴 수 있는 사람.
어쩌면 말이 말을 불러내고, 말이 내 마음의 구조를 정리해줄지도 모르기에.
나는 그렇게라도 이 고통을 견뎌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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