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는 즐겁고 행복했지만, 내일 그리고 모레는 불안하고 걱정스러웠습니다.
이상했습니다. 하루하루가 즐겁다면, 당연히 내일도 모레도 설레고 기다려져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은 스타트업 소식이 아닌, 인도에서의 제 일기를 써보려 합니다. 길고 재미없는 글일 수 있습니다.
“잃을게 없다는 건 선택할 수 없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4시 30분, 인도 시간으로 새벽 1시, 어젯밤 J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입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도 종일 이 말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가 않았습니다. 글을 써보면 생각이 정리될 것 같아서 무작정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20대 후반 이제 막 30대의 친구들의 술자리에 직장/연애/결혼/가족 등 다양한 주제가 안주가 되지만, ‘잃을게 없다는 건 무엇일까’로 얘기를 나눈 친구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J가 던졌던 그 말은 제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바로 제가 평소에 고민했던 그것과 정확히 같았기 때문입니다.
‘잃을게 없다는 것, 즉 가진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온전히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일까요? 아니면 주변의 상황이 그 결정을 도와주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인생의 전환점이 될만한 결정을 스스로 내린 적이 있었나요? 혹시 그러한 결정이 내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은 아닐까요?
한국에서 인도로 떠나기로 결심한 작년 가을, 제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왜 인도로 가려는 거야?, 그럼 결혼은? 직장생활은? 저축은?” 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구 한 명에게도 왜 인도로 가게 됐는지 제대로 대답을 한적은 없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삶은 매우 안정적이었습니다. 글로벌 회사에서 일하며 일터에는 존경하는 선배들이 있었고 급여 수준도 높았습니다. 30살 직장인,, 한창 경력을 쌓고, 밀린 학자금 대출금을 갚고, 결혼을 준비할 시기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꼭 하고 싶었던 일들이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결혼, 저축, 커리어등 앞으로 준비해야 할게 산더미였습니다. 그러던 순간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마음속에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커져만 갔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쥐고 있던 것이 없었는데, 아무리 실패해도 원점으로 돌아갈 뿐인데, 나는 더 이상 잃을게 없는데 무엇을 망설이는 것일까?’
만원을 들고 화투를 쳤습니다. 어제 꿈에 나온게 돼지였는지, 청단에홍단에 만원이 10만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윽고 상대방의 노련함에 흔들고 광박 피박에 결국 10만원이 5천원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 5천원이 남았는데도 불안합니다. 이미 만원에서 5천원을 잃었고, 남은 5천원을(가진것) 더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본전이 0원 이었습니다. 돈을 빌려서 화투를 친거죠, 대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금이 2천5백만원 이었습니다. (장학금은 군대 제대하고 딱 1년 동안만 받았습니다 ㅋㅋ) 처음부터 가진게 없었기 때문에 잃는 것에 대한 걱정도 두려움도 적었습니다. 아니 아무리 잃어도 인생에 0 보다 더한 마이너스가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내가 처음부터 쥐고 있던 것이 없었기 때문에 손을 다시 펼치고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결국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준비하기 위해 회사를 퇴사하고, 인도로 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저는 이러한 결정이 제가 쥐고 있던 것을 스스로 내려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온전한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제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상황이 선택을 하게끔 도와준 것이었습니다.
저는 일을 통해서 행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답이 정해진 미래에는 행복 대신 걱정과 불안이 있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학자금 대출을 갚기 시작했습니다. 일을 하기 위해서 업무용으로 차가 필요해 자동차도 한 대 샀습니다 (회사에서 일부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즐기지 못한 나를 위해 1년에 몇 차례 여행도 가고(그래봤자 헝그리한 배낭여행), 맛있는 것도 사먹었습니다(그래봤자 치즈돈가스). 5천만원에 가까운 급여를 받았습니다만, 학자금대출+자동차할부금+생활비등을 제외하면 손에 쥐어지는 것은 얼마 없었습니다. 빚을 거의다 갚을 쯤에는 결혼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돈을 모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난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5년 후, 10년 후의 내 모습은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물론 꼭 남들과 다르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새로운 기대가 없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 이었습니다.
오늘 하루는 즐겁고 행복했지만, 내일,,, 모레는 불안하고 걱정스러웠습니다.
이상했습니다. 하루하루가 즐겁다면, 당연히 내일,,, 모레도 설레고 기다려져야 하지 않을까요?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막 지르고 싶습니다. 그러나 미래가 불투명한 현실에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가진 것을 좀처럼 내려놓기가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잃을게 없다는건 제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새삼 본인 스스로 가진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을 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도 짐작이 갑니다. 매우 힘든 상황의 연속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에게 내일은 불안감이 아닌 기대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앨론 머스크는 라는 기업가를 좋아합니다. 그의 일화로 유명한 얘기가 있습니다. 그가 창업을 준비할 때 하루에 1달러로 지낼 수 있는지 스스로를 실험한 적이 있습니다. 배가 고프지만 어떻게든 하루에 1달러로 살 수 있음을 확인한 그는 곧바로 창업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잃을 것이 없는’ 각오로 뛰어든 것입니다. 그에게 창업의 실패란 인생의 실패가 아니었고 또 다른 시작이었을 것입니다. 하루에 1 달러로 살 수 있다는 경험은 그에게 더 큰 자산이 되었을 것입니다. 돈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적어도 돈은 최우선의 가치는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진 것을 스스로 내려놓는 것과, 내려놓을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에는 분명히 간절함의 차이가 있습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위해 그만큼의 준비가 되었는지 반성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