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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l Dec 06. 2020

#드라마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가는 여름이 아쉽다며 드라마 '열여덟의 순간'리뷰를 올린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월이 왔다.

가을 특유의 알록달록한 색감과 풍경 그리고 냄새를 맘껏 즐겨보지도 못했는데,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해 겨울 냄새가 솔솔 들어온다. 가을과 겨울을 좋아하는 나는 그 냄새가 반갑긴 하다.

하지만 안 그래도 점점 짧아지는 제대로 가을을 느껴보지도 못 한채 보내려니 마음에 걸린다.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졌을 때 짧게라도 가을의 풍경을 보러 사람이 없는 곳에 갔던 날이 있었는데, 그 날을 위안삼아 애써 가을을 웃으며 보내본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 이 계절과 참 잘 어울리는 드라마를 발견했었다. 원래 음악을 좋아하는 데다 그중 하나인 '클래식'장르 드라마라길래 첫 화를 챙겨 봤었다. 

그 드라마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였다.


출처 - sbs 홈페이지


우선 눈이 즐거웠다. 가을의 색과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다 담은 것 같은 영상미 때문이었다. 여기에 로맨틱까지 더해지니 보고 있기만 해도 설렜다. 잔잔한 스토리와 조근조근하고 차분한 주인공과 잘 어울렸다. 드라마 '열여덟의 순간' 리뷰에서는 극 중의 인물들이 여름과 참 닮아있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극 중의 인물들이 가을과 닮아 있었다. 쌀쌀하고, 쓸쓸한 가을의 날씨처럼 극 중의 인물들의 상황도 그러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해와 맑은 가을 하늘, 알록달록한 단풍 풍경, 차분한 분위기, 포근한 니트는 극 중의 인물들의 마음과 감성하고 닮아있었다. 덧붙여서 클래식 음악으로 귀까지 행복하게 해 준 드라마였다.


출처 - sbs 홈페이지


마음에 드는 드라마에 대해 리뷰를 쓸 때마다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은 대사와 캐릭터다.

이 드라마에서도 역시나 대사와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먼저 대사에 대한 의견을 적어보면, 현실적이고 감성적이었으며, 캐릭터를 잘 표현했다. 특히 남녀 주인공의 차분하고, 따뜻하고, 여리지만 강한 면이 있는 부분이 대사에 잘 드러나있었다. 배우도 조근조근한 말투로 한 글자 한 글자씩 조심스러우면서도 힘 있게 연기해줘서 이상하게도 내가 다 고마웠다. 그리고 허투루 쓰이는 대사가 없었다. (연출도.) 모두 연결고리가 있었고, 의미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공감도 되고, 배우기도 했던 대사들이 참 많았다. 지금도 기억에 남았던 대사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먹먹해지기도 하며 포근해진다.


다음으로 캐릭터에 대한 내 의견을 적기 전에 사람들의 평을 보면 호불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온에어 당시 드라마 톡에서는 주인공이 답답하다, 그래서 지루하다는 평들도 꽤 많았다. 반면에 주변에서 볼 법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해가 간다, 공감된다, 배려심이 깊다, 착하다 등 긍정적인 평들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에 대해 내 의견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였다. 특히 준영이에 대한 평이 호불호가 심하게 갈렸었는데 어느 쪽이든 모두 동의하는 바이다. 솔직히 내가 송아였다면 준영이의 성품은 둘째치고 오래 연애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준영이는 성장했다. 그 성장이 좀 늦기도 했고, 실수를 하고 송아에게 상처를 주면서 성장한 거라 감정몰입이 되는 (나 포함) 시청자에게 준영이 마냥 좋게만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자기반성을 잘하고, 스스로 고치고 성장하는 사람들은 많다. 반대로 실수나 잘못을 했지만, 또 반복이 되지 않도록 고치면서 성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준영도 마찬가지 아닐까. 중요한 것은 성장했다는 것이다. 준영은 확실히 앞으로 나아갔고, 변했다.


송아 또한 호불호가 있었다. 준영보다는 덜하긴 했지만 답답하다 등등 부정적인 평이 있었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아직도 이런 여주인공이 나오냐라는 식의 의견도 있었다. 그렇다. 옛날 드라마처럼 눈물 뚝뚝 흘리고, 할 말 못 하고, 한 없이 착한 여주인공은 이제 먹히지 않는다. 그만큼 시대가 바뀌었고, 여성이 제 목소리를 낼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드라마는 환상을 이뤄주기도 하지만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 드라마에는 여 주인공이 대부분 진취적이고, 할 말은 하고 살고, 강하고, 밝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송아는 옛날 드라마 속 비련의 여주인공과는 다르다. 외유내강형이라고 할까. 약하고, 착하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것 같지만 제 목소리를 내야 할 때는 낼 줄도 알고 은근히 깡도 있고 용감하다. 단지 다른 여자 주인공의 비해 차분하고, 조용하며 조금 덜 밝을 뿐이다. 오히려 이런 다른 색의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도 신선하다고 생각한다.


송아뿐만 아니라 준영도 다른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과는 다른 색의 인물이었다. 따라서 송아와 준영은 나한테 신선한 캐릭터로 다가왔다. 현실에서 이런 사람들이 묻히는 경우가 많은 편인데, 드라마를 통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시도가 되었다고 본다. 


주인공 외에 조연 캐릭터들도 빛을 발했는데, 각각의 색이 뚜렷했고 밉상은 있었지만 지독히 악한 캐릭터는 없었다. 이해되는 각자의 처지가 있어서 얄밉다가도 측은해지고, 안타까웠다. 자극적인 캐릭터가 넘쳐나는 때에 주연은 물론이고 조연 캐릭터들은 나에게 있어서 안식처가 되었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착한 드라마라는 평을 받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현실성이 있었다. 학교 생활하면서 또는 사회생활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직업군이 서로 다르거나 집단과 집단의 색이 서로 다를 경우에는 '지금까지 내가 본 사람들은 새발의 피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더 그렇다. 이 드라마 속 인물들은 그것의 축소판이었다. 그래서 '아 저건 누구 같네'라며 닮은꼴 찾기 하면서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출처 - sbs 홈페이지


앞서 캐릭터가 현실성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만큼 스토리도 현실성이 있었다. 예술계 대학 내에서의 시기와 질투, 경쟁심, 교수들의 비리, 교수들의 숨겨진 인성, 교수들 간의 정치, 학생들을 보는 시선, 예술계의 미래 전망,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은 차고 넘친 것 등 다른 음악 드라마에 비해 판타지보다는 현실을 더 그려냈다. (학생들 간의 갈등도 많은데 이 부분은 더 나오지 않아서 아쉽긴 하다.) 특히 악기 전공한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보며 많이 공감하면서도 그래도 좀 순화됐네라며 재밌게 봤다고들 한다. 아무래도 작가가 음악 전공에 바이올린을 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그 경험이 이 드라마에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또한 송아가 바이올린을 그만두는 스토리도 인상적이었다. 드라마라면 극적으로 바이올린을 잘해서 결국에는 꿈을 이루는 엔딩으로 했을 수도 있는데 이 드라마는 그러지 않았다. 자신의 실력을 인정했고, 더 행복할 수 있고, 본인에게 더 알맞은 새로운 자리를 찾았다. 멋있게 한 번에 그만두는 것도 아니고 서서히 잊히는, 그러다가 완전히 떠나보내는 과정도 현실적이었고 드라마성으로는 신선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송아가 극적으로 잘 돼서 바이올린과 계속 함께하길 바랐기에 송아가 바이올린을 떠나보낼 때 미치도록 아쉽고, 아팠다.


무엇보다 현실성이 있고 공감되었던 것은 캐릭터들이 겪는 갈등, 상황, 고민 등이 음악계열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것들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인물들의 스토리가 나한테는 크게 공감이 됐고, 와 닿았다.


뿐만 아니라 연주장면도 크게 와 닿았다. 한국의 클래식 드라마는 대부분 연주 장면이 매끄럽지 못하거나 어색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극의 흐름과 캐릭터의 감정을 잘 따라가고 있는데 연주 장면에서 와장창 깨지곤 했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연주 장면은 그렇지 않았다. 정말 배우가 연주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매끄러웠고, 어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끝까지 극에 집중할 수 있었다. (라흐마니노프 연주 장면은 진짜 잊지 못할 정도로 멋있었다.)


출처 - sbs 홈페이지


성장기를 잘 그려냈다. 사랑을 통해서, 또는 각자의 벌어지는 상황을 겪으면서 남녀 주인공은 성장한다. 그 과정을 보는 게 흥미로웠고, 사랑이야기에는 두근거리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열여덟의 순간'처럼 이 드라마도 성장과 사랑 스토리가 적절히 섞였고, 조화를 이루었다. 


마지막으로 최고 장점이자 이 드라마만의 매력은 잔잔함과 여백이 많다는 것이었다.

대사가 넘쳐나고, 자극적이고, 큰 소리가 많은 드라마들 속에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특유의 매력을 꿋꿋하게 극이 끝날 때까지 유지했고, 어필했다. 시청률을 쫒다 보면 처음에는 작품성도 있고, 신선함도 있고, 과하지 않은 드라마도 어느 순간 자극적이게 변하고, 그러다 보면 점점 산으로 가는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끝까지 중심을 지켰다. 그래서 더 보석처럼 빛났다.  다른 드라마를 보다가 이 드라마를 보면 편안해졌다. 감성이 말랑해지고, 두근댔다. 잔잔하고 조용함, 극의 매력을 잘 살려줬던 롱테이크, 현란하지 않아도 예쁜 영상미, 지독한 악역이 없던 것 모두 좋았다. 


출처 - sbs 홈페이지



좋은 드라마이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우연이 매우 많았다. 드라마에서 우연이라는 장치는 유용하다. 그러나 뭐든 과하면 좋지 않듯, 이 드라마에서의 우연이라는 장치도 그랬다. 너무 많이 그 장치를 쓰다 보니 극에 방해가 된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 밖에 허술한 부분이 많이 보이긴 했지만 장점에 피해 갈 정도는 아니었으니 괜찮았다. 무엇보다 신인작가이니 그 정도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단편이 아닌 장편으로 피디와 작가가 처음이라고 알고 있는데, 입봉작에 비해 훌륭했다고 본다. 





+ 이 드라마의 중요 포인트!


한 오디오 채널에서 이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게 있는데, 거기서 피디가 이런 내용의 말을 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준영이는 자신이 브람스 같다고 생각해서 아니라고 대답한다. 브람스의 곡도 치지 않는다. 여기서 준영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준영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서 브람스의 곡을 친다. 이 것은 준영이 자신을 사랑할 줄 알게 되고, 성장했다는 것이 드러나며 드라마 제목과도 연관이 있다. (기억나는 대로 적은 거기 때문에 100%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


이 말에 매우 동의한다.



(드라마 속 캐릭터별 의견을 조금 더 자세하게 기록하고 싶은데 시간과 더 간절한 나의 의지가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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