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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l Dec 15. 2020

#드라마같은하루 / 코로나19와 나.

'코로나19' 소재로 적는 드라마같은 하루 1편.

내 브런치에서 매거진을 제외하고는 항상 말머리가 붙는다. 

#드라마, #영화, #드라마같은하루. 

드라마와 영화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내 생각을 쓴 것이고 

드라마같은하루는 일상 속에서 일어난 에피소드에 대해 쓰거나 일상에서 나름 오랫동안 생각한 것 중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들을 쓴 것이다.


드라마같은하루라고 해서 대단한 일들이나 생각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드라마같은하루'라는 말머리를 다는 이유는 나한테는 사소한 것도, 평범한 것도 드라마같고 그만큼 어떤 식으로든 기록하고 싶어서다.


별 거 없는 이야기도 드라마로 제작한 것은 드라마로 남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말머리와 참 잘 어울리는 진짜 드라마같은하루를 쓰려고 한다.

요즘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볼 법한 하루들을 살아내고 있다. 이것은 나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다. 나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는 지금 같은 소재를 중심으로 다양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 소재는 바로 '코로나19'이다.


코로나 19에 의해 사람들의 하루는 바뀌었다. 미세하게 바뀐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동안의 하루와 완전히 다른 하루들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까지 바뀌었다. 이렇게 코로나19는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고 교훈을 줬다.


나의 하루도 습관도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일어나면 어떤 사건사고가 또 일어나있을까 하는 생각에 노심초사하며 뉴스를 보던 것은

오늘은 또 얼마나 확진자 수가 늘어났을까 하는 생각에 뉴스를 본다.

뉴스기사를 많이 클릭하던 내 손가락은 확진자 수와 이동동선 정보로 향한다.

제일 많이 보는 뉴스기사는 코로나19와 관련된 것이다.


지인들의 연락으로 울리던 휴대폰은 재난문자로 울리며, 화면에는 재난문자가 가득하다.


외출할 때 가방이나 지갑, 휴대폰만 챙기던 습관은 손소독제와 마스크를 챙기는 습관으로 바뀌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방바닥에 철푸덕 앉거나 누워버렸는데, 지금은 마스크를 버리고, 꼭 핸드워시와 물에 손을 깨끗이 씻는다. 얼굴에는 항상 마스크가 존재하고, 바깥의 시커먼 공기마저도 그리워졌다.


잠깐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도 건물 안에 있는 편의점에 갈 때도 마스크는 필수품이 되었고, 

잠깐 나갔다오더라도 손을 씻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내 지출의 반은 마스크와 손소독제가 차지해버렸다. 


택배기사분, 마트배달기사분, 음식점 배달기사분들의 얼굴은 안 본지 오래다.

특히 기사 분들이 오실 때 중문을 닫아놓거나 괜히 남자신발을 어질러 놓거나 그러지 않는다. 대신 요청사항이 잘 적용이 되어있는지 항상 확인한다. '문 앞에 두고 벨 누르고 가주세요.'

택배나 배달을 받고 하는 일도 생겼다. 상자나 봉투를 만지고 난 후 핸드워시와 물에 손을 깨끗이 씻는 것이다.


방문수리를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상황이 생기면, 짜증이 난다. 창문이란 창문은 다 활짝 열어놓고, 마스크를 낀다. 나를 위해서 상대방을 위해서.

그리고 사람이 다녀간 후에는 집안 청결에 더욱 신경을 쓴다.


항상 내 몸 상태에 관심을 갖고, 조금이라도 열감이 느껴지면 체온을 잰다. 감기도 잘 걸리고 잔병치레가 많은 편이라서 몸이 아프지 않으려고 항상 신경을 쓴다. 내 몸을 아끼기 시작한 건 좀 됐지만 요즘처럼 이렇게 신경쓰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어떤 곳에 가더라도 큐알코드를 찍거나 명부를 작성하고, 비치된 손 소독제를 하고 들어간다. 물건을 만질 때마다 아무 생각이 없었던 나는 물건 만진 손을 찝찝해하고, 되도록 이것저것을 만지지 않으려고 한다.


출입문 손잡이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도 찝찝함은 계속된다.


예쁜 아이들을 보면 아이의 부모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걸거나 칭찬을 하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가까이 가지도 않는다. 아이들이 종종종 거리며 다가와도 피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배려가 되었다.


편의점에 가면 '감사합니다'나 '안녕히계세요' 라며 인사를 하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하지 않는다. 고개만 꾸벅일 뿐. (그래도 이건 가끔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올 때가 있긴 하다.)


지인과의 대화 시작은 늘 코로나19이며,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는 지인에게는 인사말과 안부가 코로나19가 되었다.

지인이나 가족들을 향한 나의 걱정 중 1순위는 코로나19가 되었다.


혼자 밖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젠 그러지 않는다. 집순이가 되었다.

마치 바깥에 나가면 지뢰라도 심어놓은 것처럼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신경이 곤두선다. (안그래도 답답해서 집에 있어도 신경이 곤두 서 있는데도 말이다.)


기관지가 안 좋고, 비염이 있어서 헛기침을 자주 하는데 밖에 나가면 기침을 참으려고 애를 쓴다. 그래도 기침이 나오면 항상 주변 눈치를 본다. 심지어 기침했다가 눈초리를 받기도 했고 나 때문에 잠깐 벗어놓은 마스크를 후다닥 다시 쓰는 사람도 봤다. 가까운 지인은 재채기 했다가 외국인에게 한소리를 듣기도 했다. 

나 또한 누군가가 기침을 하거나 재채기를 하면 시선이 가고, 불안해진다. 


이제는 약속을 잡을 때 나의 스케줄이나 경제적상태 때문에 망설이는 게 아닌 나의 몸상태나 내가 다녀간 곳들, 내가 사는 동네의 상황, 또는 상대방이 아이가 있는 가정인지, 노인분이 계시는지 신경 쓰면서 망설이게 된다. 그래도 약속은 되도록 안 잡으려고 한다.


이사한 지 일년도 안 되었는데, 벌써 내 집이 질리는 심리도 생겼다. 


반지하에 산 이후로 오랫동안 앓아온 피부질환은 약을 계속 먹고 있는데도 마스크 때문에 심해지고 있다. 그래도 몸에는 마스크를 안 껴서 몸은 호전된 상태를 유지중이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참 웃프다.


그리고 무언가를 열심히 극복하고 있는 중이다. 


밤 늦게까지 열려있고, 사람들로 가득 찼던 음식점 또는 카페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대신 배달 오토바이가 더 많아졌다. (심지어 내가 사는 건물의 카페는 여섯시에 문을 닫는다.)


타인 뿐 아니라 나 자신을 의심하고, 경계하게 된다.


코로나19가 먹고 사는 문제에도 영향을 준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는 여기에 적은 것 말고도 참 많다. 내가 하고 있는 행동도 더 많다.

이 것은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럴 것이다. 심지어 나보다 더 많은 변화를 느끼고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많은 것을 지키고, 행동하는 사람들 또한 많을 것이다.


가끔은 외출할 때, 집에 다녀와서, 바깥에 있는 동안에, 외부인이 집에 오기 전, 간 후 해야 하는 일들이 정말 노동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나만 너무 예민한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나보다 더 조심하는 사람들, 그리고 조심하는 것에 책임감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 생각을 접는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게 아니라 나와 상대방을 위해서, 우리 모두를 위해서 해야하는 것이다. 

나만 너무 예민한 게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당연한 것을 잘 지켜야 우리모두가 산다. 


'나 하나쯤은, 이번 한 번만은 괜찮겠지' 라는 생각은 이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 되었다.

안일하게 생각하고, 조심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억울하기도 하고, '나만 이래서 뭐해' 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노심초사하며 조심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중심을 잡는다.


이제는 '나 하나라도, 이번 한번만이라도 더 조심하자' 라는 생각이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중요한 가치관이 되었다.


나도 풀어질 때도 있고, 나도 모르게 조심하지 않고 지낼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말자', 또는 '이랬는데도 아무 일 없었는데, 뭐. 조심할 필요 없었네. 앞으로도 조심할 필요 없겠네' 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왜 그랬지,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며 나를 질책하고, '지금부터라도 다시 조심하자'라며 초심을 찾으려고 한다. 


조심해도, 조심하지 않아도 내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내가 나 자신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코로나19에 걸리고 안 걸리고를 떠나서 조심하는 것은 상대방을 위해, 나를 위해 해야하는 중요한 일이며, 기본 매너이다.


오늘도 나는 기본 매너를 지키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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