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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레인 Dec 01. 2023

나는 끌어당김보다 끌어안음이 좋다.

삶에, 예스.

각자의 마음속 깊이 쌓은 고정관념.

저러면 안 돼, 이런 건 싫어. 판단과 분별

조금만 건드려져도 화를 낳는 저항감


그렇단 걸 아니까,

조금 더 시간을 주자.


'사랑하지 못하는 나도 사랑해'

'용서하기 힘든 나도 사랑해'


그렇게 한나절쯤 지나고 나서야

결국은 마주 보고 웃을 수 있었지.




미워하는 동안 내 맘은

저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참다가도 불쑥 상대방을 저주한다.

나도 몰랐던 악마 같은 내 모습이 낯설고도 두렵다.


미움이 사라진 내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꾹 닫았던 입과 답답한 가슴이 열리고

비로소 세상이 다시 아름다워진다.


관계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다.


그래, 사랑하며 살기에도 짧은 세상

이해하고 아끼며 살아야지.

(그러고도 또 미워하고 또 사랑하고 또...ㅎㅎㅎ)


시간이 필요했다.

용서할 시간. 사랑할 시간.

부정적 감정을 느껴줄 시간.




사랑하고 싶지 않아

세상도 사람들도 다 너무 미워! 싫어!


그 마음을 허용한다.


회사도 가족도 그냥 다 두고

조용한 곳에 혼자 가 살고픈 마음도

허용한다.


살아갈 자신이 없어

극단으로 치닫는 그 마음까지도

받아들인다.


아픔을 수용한다.

아파도 괜찮다.


부정적 감정이 휘몰아치거나

미워하는 감정이 들고, 화가 날 때


            관찰하고(관찰자 시선)          

            괜찮다 하고(고정관념 발견)          

            용서하고, 사랑하고(고정관념 지우기)          


3단계 방법까지 매뉴얼로 만들어 놓았지만, 막상 자신에게 상황이 닥치면 이것을 적용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은영은 매번 절절하게 느끼곤 했다.


괜찮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래, 고통은 정화의 기회야.

다음번엔 가볍게 넘길 자신이 있어!

나 좀, 이제는 부정적 감정쯤은 컨트롤할 수 있는 듯?


라고 하지만,


여전히 역시.. 살다 보면 또, 상대가 밉고 상황이 밉고 그 마음을 잠재우기까지 고통을 겪는다.


다행히 이 과정은 점점 옅어진다.


먼저 상대와 상황은 그대로인데 마음의 저항이 줄어 부정적 감정에서 자유로워지고


그러고 나면 어느새 상대와 상황도 변한 모습을 보게 된다.


나로 돌아가 그 감정을 더 살펴보라고

현실은 내게 잔인하게 펼쳐졌던 것이다.



고통을 마주하기가 도저히 용기가 안 날 수도 있다.

싫고 꺼려진다면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해.

긍정적이어야 해.

사랑해야 해.


이완이든 수용이든 심지어 그것이 사랑이라도 억지로는 좋지 않다.


먼저 나를 돌보고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자연스럽게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지고

긍정적인 마음이 되며

다른 사람도 사랑하게 될 테니까.


사랑하기 싫다면

아직 그러지 않아도 된다


대신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


사랑하지 못하는 나도 사랑해

미워하는 나도 사랑해


그렇게 감싸고 흘려보낸다.


흘러간 자리에

본래의 사랑이 들어선다


그러고 나면 내가 그런 것처럼

나의 상대편에도 역시

나를 역할 모델로 삼아 고통받고 있는

한 존재가 있다.



인생은 동그랗게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이다.


싫어하고 거부할수록

삶은 잊지 말라고,

풀어낼 기회로 삼으라고


미운 사람과 괴로운 상황을

더 많이 만들어 보여준다.


저항을 멈추고

가만히 보고서

느껴주면


그래, 너 거기 있구나.

나는 이런 상황을 몹시도 밀어냈었지.

나를 괴롭힌 가해자가 바로 나였어.

보지 않으려던 내 모습을 당신이 보여주고 있구나.


인정받은 감정과 상황들은

드디어 풀려나 나의 편이 된다.


모났던 내 모습은

다듬어져 동그랗게 되고

삶은 점차 편안해진다.



"전생에 뭔 죄를 지었나?
왜 이렇게 힘든 거야?"


무슨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다른 믿음으로 다시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하여...


고대로부터 전해 온 지혜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변화를 위해서는 이전의 내가 죽어야 한다고.


이전의 내가 죽기 위해

시련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이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감사하게 되었다.

생각대로 되지 않고 엉망처럼 느껴지면 오히려 더,

'감사합니다' 해버린다.


나는 나의 의지가 옳은지,

내 계획이 좋은 건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삶은

늘 가장 적합한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데려다주었다.



끌어당김보다 끌어안음이 좋다.

끌어당김은 불안정한 나의 의지이지만

끌어안음은 안전한 삶의 의지다.


삶에게 내맡긴 채

작은 나는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그분이 수술을 하실 때

나는 옆에서 성실히 거들기로 했다.


메스! 하면 메스를 드리고

가위! 하면 가위를 드리고

봉합해! 하면 최선을 다해 봉합해야지.


다가오는 모든 것에 예스.

모든 상황에 예스.


삶에, 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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