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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레인 Dec 04. 2023

동그란 원, 지름 반대쪽의 사람

다름의 하나 됨, 관계의 아름다움에 관하여

그 이의 현실적이면서 안정적인 모습이 에 들었다.

이상주의자였고 어딘지 모르게 불안했던 은영이었다.


결혼 후,

서로의 다른 점이 이해 못 할 모습으로 두드러졌다.


둘은 생각보다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마치 은영이 동그란 원 이쪽 끝에 있다면 남편은 딱 반대쪽 지름의 길이만큼 거리에 서있는 것 같았다.


...

그러고 보면 은영의 꿈은 늘 평범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자신에게선 과도한 집착

남편에게선 과도한 비난


이에 응답하듯 꿈은 항상,


집착에 밀려, 잡힐 듯 말 듯 도망치고

비난의 말만큼, 변변치 않은 보상만을 주었다.



아무래도 난 결혼에 맞지 않는 사람인가 봐.



한참을 비워내야 했다.

집착을 비우고 담담해졌을 때

꿈은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다.


아니 도망칠 것도 아닐 것도 없이


그냥 은영은

매일 꿈을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은영에게 여전히 꿈은 소중하지만

이제 성과를 증명하려 이를 갈고 싶진 않다.


다만 그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던

자신의 꿈을 더 아껴주겠노라고.


욕망의 집착에서 자유로워진 은영에게 남은 숙제는 가정적인 남편과 (돈 안 되는) 일을 좋아하는 아내의 조화였다.


피해의식 없는 아내로,

아내의 일을 존중하는 남편으로

그렇게 서로 변해가는 것!


그리고 은영은 문제를 푸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자신의 내면을 바꾸는 것임을 지독한 경험으로 배워갔다.


결혼은 영적인 동일성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결혼한 사람은 자기의 정체를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결혼은 단순한 영애가 아니지요. 결혼은 시련입니다. 이 시련은 '관계'라는 신 앞에 바쳐지는 '자아'라는 제물이 겪는 것이지요. 바로 이 '관계'안에서 둘은 하나가 됩니다.

- 조셉 캠벨, 빌 모이어스 대담/ 신화의 힘 中


결혼 덕분에 자아를 제물로 바칠 기회를 얻었다.


결혼에 맞지 않은 그녀는

제물로 바쳐져야 할 자아였다.


둘이 아니라 하나.

본래 하나.




남편의 잦은 출장, 일정치 않은 귀가, 많은 휴가로 집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은영은 그때마다 자신의 시간이 침범당하는 기분을 느꼈다.


저항하고 거부하고, 아닌척하고 괴로워하고,

내 시간을 달라고, 나도 일하고 싶다고

제물로 바쳐질 자아가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돌아보면

함께 보낸 시간은 플러스알파의 선물이었다.


대화 속에 배우는 지혜,  

정반대의 세계에서 만나는 신선한 의견,

티격태격하다가도 하나로 통합될 때의 기쁨.


너무 다른 사람이라 어렵다고 생각했다.


괴롭고 불편해도

차마 놓기 싫은 '원망'


맞춰주고 눈치 보느라 피해자가 되었다고, 이전의 당당하던 나는 어디 가고, 결혼 후엔 원하는 , 하고 싶은 하나 제대로 말 못 하고, 사람 만나는 것, 어디 가는 하나 맘대로 못하게 되었다고.


나는 억울하다고,

사람 탓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모두 나였다.

거부하던 모든 모습이 바로 나였다.


남편은 은영의 그림자,

부정하던 자신의 모습을 비춰준 거울이었다.


인간은 자기 자신, 자기의 생각, 느낌을 경험하면서 그것이 다른 것들로부터 분리된 것이라 여기는데 이는 인간 의식의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 아인슈타인


연말을 맞아 이래저래 한 달은 거의 집에 있을 같다는 남편.


죽지 않은 자아가 징징거린다.


내 평소 스케줄이 다 무너질 텐데? 그래도 나 혼자 산책도 하고 싶고, 내 일도 하고 싶고, 책도 맘껏 읽고 싶은데 말이야.


그러나 이전의 은영이 아닌 지금,

이내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

미안, 나는 이제 내가 누군지 알아.

나의 본질은 그게 아니란 걸 알아.


나는 널 안아줄 수 있어. 두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는 걸.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걸. 죽어야 할 자기의 욕심과 내 것이라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내려놓을 때, 삶은 더 큰 보답을 줄 것임을... 그 안에서 나는 안전하게 쉴 수 있음을 알고 있는 걸.


그러니 나는 이제 그렇게 하려 해. 이건 결심이 아냐. 큰 나로서의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에, 큰 나로서 생각하는 거야. 그러니 너는 복종하길. 가만히 있으렴. 너는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 더 많은 걸 배울 거야. 더 풍성해질 거야. 더 깊어질 거고. 넌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러니 혼자 다 하고 싶다는 너의 작은 마음을 내려놓으렴. 시간이 더 주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그 작은 생각을 놓아버리렴.


사랑을 생각해. 사랑은 함께 하라고 할 거야. 억지로가 아니라 기꺼이.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할 거야.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억해. 하나는 하나여야 완전하지. 너 혼자 반쪽으로는 완성될 수 없어.


이제야 우리는 정말

각자가 아니라 그저 하나로서 성숙해 가는 것일까?


관계 안에서의 자유,

은영의 삶이 점점 더 편안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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