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이 뭐라고 생각해요?
글쎄요. 잘 먹고 잘 사는 거?
성공하면 좋겠죠.
돈 많이 벌어서 구속 없이 자유롭게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사는 거?
저는요.
자신의 실상을 구현하는 일 같아요.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참 자기의 모습을 표현하는 거요.
크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 아닌가요?
당장 생존이라고요.
저기 사람들 뛰어가는 거 안 보여요?
아뇨. 오히려 현실적이에요.
모두들 어딘가를 향해 달리고 있지만
눈앞의 목표만을 쳐다보느라
정작 묶여 있는 자신의 발은 못 보잖아요.
마치 쳇바퀴 다음 칸에 달린 과자를 쫓아
같은 자리를 뱅뱅 도는 햄스터 같아요.
하하. 여전히 이상적으로 들리네요.
아름다운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죠.
발을 묶인 코끼리, 한계에 갇힌 벼룩 얘기를
누가 모르나요?
알아도 할 수 없는 게 인생이라고요. 그게 삶이에요.
철없는 소리 그만하고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게 어때요?
자본주의에서 승리할 자신이 없으니까
듣기 좋은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자본주의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누가 정했나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거죠?
지금 저는 먹고 살기의 숭고함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에요.
맹목적인 집착에 대해 말하려는 거에요.
무엇이 잘한 거고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능력과 무능력을 가르는 기준이 뭐죠?
무엇이 가치 있고 무엇이 비천한 지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
자신도 모르게 쌓아 온 고정관념들과
남의 태도를 보며 다져 온 신념들을
진지하게 의심해 본 적 있나요?
그렇게 나와 타인을 심판하며
20년 가까이 욕망에 끌려다니며 살았어요.
행복하다.. 행복하다.. 주문을 걸었죠.
주입하고 주입당한 좁은 세상에서
내가 아닌 나로 살면서,
알 수 없는 부족하다는 느낌에 시달리며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욕망에 갈기갈기 찢기는 줄도 모르고
가면을 쓴 줄도 모르고
불안한 줄도 모르고
긴장한 줄도 모르고
...
그러다가 알았어요.
바닥을 쳐보고 알았어요.
한계에 갇힌 척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는 게 더 힘들다는 걸요.
너무나 오래 길들여져 두려울 뿐이에요.
묶여사는 것보다 저 푸른 초원_
알 수 없는 자유함이 더 자연스러운 길이에요.
현실을 피해 도망친다거나
세상을 떠나 도인이 된다는 게 아니에요.
현실을 잘 살기 위한 몸부림이에요.
구속이 본래 없다는 생각 안 해봤나요?
경제적 자유란 말이 유행이었죠.
구속 안의 자유일 뿐이에요.
'경제적'이란 조건이 붙지 않아도
지금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어요.
생각을 놔주면 되는 일이에요.
하지만 웬일인지 우리는 자유를 두려워하죠.
작은 코끼리는 이제 자랐어요.
더 나은 코끼리가 되기 위해 조건을 갖추기보단
본래의 코끼리가 되기 위해
비좁은 틀을 부수고 나와야 할 때라고요.
본래의 나에게 힘이 있다는 걸 알면 돼요.
불완전한 채로 완전하며
지금 이대로 충분해요.
행복해지기 위해
돈이든 외모든 조건을 달지 마세요.
그냥 여기서부터 시작하세요.
마이너스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온전함에서 플러스 알파로 나아가는 거예요.
맞아요.
용기가 필요한 일이죠.
이 길을 걸은 사람들은 나를 버리라거나
작은 내가 죽어야 한다고 표현하기도 했어요.
큰 나가 드러나려면 작은 나는 주도권을 놔줘야 하거든요.
작은 나는 저항할 거예요.
이래도 해볼 거냐며
놓으면 넌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이전보다 더 고통을 줄지도 몰라요.
깊은 평온을 느낀 그날 이후로도
수많은 날을 울며 지냈어요.
하지만 알게 됐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며
내가 나를 돌보고 격려하는 이 길이
작은 나를 품고 나의 전부를 사랑하는 길이란 걸요.
갑자기 되지 않아요. 서서히 스며들어요.
하지만 오래 걸려도 해볼 필요가 있어요.
사실 알기 시작하면 그럴 수밖에 없죠.
성공해도 허무한 건 이제 모두 알아요.
그러면 사람들은 더 성공하면 된다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 노력에 박수를 쳐요.
그만하세요.
난 아닌 것 같아요.
내면이 채워지지 않으면
공허함은 결코 끝나지 않을 거예요.
별 볼일 없는 하루를 보낸 후 다음 날은 답답함과 함께 속이 쓰렸다. 월요일 아침이면 습관처럼 그 기분을 느꼈다. 1kg만 늘어도 세상은 우울했고, 늦잠을 잔 날이면 다시 이불로 들어가 하루를 리셋하고 싶었다.
먼 듯해도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무기력과 욕망 사이를 오가며 갈증을 느끼던 그녀가 이제는 없다.
아픔이 극단으로 치닫던 날
무작정 걷던 고요한 숲에서
가장 순수한 나를 만났다.
처음 느낀 평온과 행복이 너무 좋아서
그 후로 평일이면 매일같이 숲산책을 했다.
산책이 명상이 되고
명상이 기도가 되고
비우고 지우고
비우고 지우기를 반복하여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문득 돌아보니
죽어라 하던 나는 사라지고
그냥 하는 나만 있었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니다.
특별한데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과
충분한데 불충분하다 믿는 관념
부족하다 완벽해져라
자책하고 다그치는 조급함과
끊임없이 요구하는 새로운 방법에 대한 집착
잘해보려 애쓰는 그 마음 너머에_
드러나길 기다리는 본래의 내가 있다.
감정도 욕망도
누르고 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하고 다스려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이야길 해보겠다고요?
네.
* 매주 화/목 [평온한 움직임] 연재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