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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레인 Feb 08. 2024

나를 보는 눈동자들

#1. 인영

'이제 내 이름을 부르시겠지?'


열두 살 인영의 가슴이 작게 콩닥거렸다.


이윽고 인영은 조회대에 섰고

상을 받고 내려오는 계단에서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를 느꼈다.


스무 살 동아리 행사에서도 그랬다.

인영이 노래를 부르자 시선이 쏟아졌다.

그녀를 향한 몇몇의 눈에는 빛이 나고 있었다.


'그래, 이 느낌!'


나에게로 집중된 눈동자가 좋았다.

조용히 두근대는 그 순간이 좋아서

계속해서 갈망하고 또 갈망했다.




"야,

나는 인영이 네가 진짜 앵커우먼이 될 줄 알았다니까? 뉴스 볼 때 정말 유심히 봤잖아. 혹시 네가 나오나 보려고."


"맞아 그랬지. 내 꿈이 앵커우먼이었지?"


대답 뒤로 이어지는 감정들을

밥과 함께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멀리서 온 친구를 보내고 집에 돌아온 인영은

밤이 되자 다시

아무렇지 않게 낮의 이야길 꺼낸다.


"여보, 오늘 고향 친구가 놀러 온다고 했잖아. 같이 점심을 먹는데 나보고 앵커가 될 줄 알았다는 거 있지?"


"엥? 당신이? 처음 는 소리네. 당신 목소리 별론데..."


"아니, 예전에 내가 책 읽거나 발표하면 딱 집중이 됐었다고. 지금은 이렇지만... 아직도 친척들이 엄마 만나면 물어보신다잖아. 인영인 요즘 뭐 하냐고. 그러고 보면 나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 졸업 후에도 선생님들이 동생에게 물어봤대. 네 언니 잘하고 있지? 인영이가 참 똑똑했는데..."

...

말을 하다 멈췄다.

남편은 별 반응이 없다.


초라한 변명이다.


그래서 뭐,

지금의 나는 왜...


평범한 나는 인정할 수 없다.

반짝거리고 특별한 게 나니까.


아니,

정말 그런가?


그렇다면 왜 당당하게 대답하지 못하지?


"지금은 뭐 해?"


사실은 아픈 질문이다.

구구절절 설명하고 변명하는 자신이 싫다.





멋지게 성공해서

그 눈동자를 모두에게서 받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세상에 나를 증명할 수 있을까?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모두가 인정하는 시험에 통과하면 되겠지?

아니면 최고의 전문가가 되거나.

흠... 또 뭐가 있을까?


다른 관심은 없었다.

시간이 없다.


오직 성공.

성공에만 목말랐다.


성공? 성공이 뭔데!?

잘은 모르겠지만 돈도 잘 벌고, 인정도 받고,

뭐 그런 거 아냐?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해!

의지를 발휘해 보라고!

성공하기 전까지는

사랑받을 가치도 없으니까.


아이코...

가엾은 내 영혼.


그땐 그랬다.


남들의 시선, 칭송, 감탄.


나중에야 알았다.

딱지에 대한 집착이

고통의 이유였음을.


왜 증명하려고 했을까?

아무것도 아님이 두려웠기 때문에.


그럴듯한 딱지로

아무것도 아닌 나를 덮으려 했다.


내면의 결핍이 많을수록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열중한다.

온전한 나로서는 지탱하기 힘들어서,

외부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다.


'나 여기 있어요.'

'여기 좀 봐줄래요?'

'저는 이런 차를 타요.'

'저는 이런 가방을 든다고요.'

'저는 이런 일을 해요.'


이 정도면 제 가치가 증명되겠죠?


사람들의 시선에 좌지우지 연연하는

애처로운 삶.



깊은 우월감은

깊은 열등감의 표현이라,


특별한 나는 자신을 한껏 띄웠다가도

맘에 안 들 때면 가차 없이 궁지에 몰아넣었다.


알 수 없는 공허함과

매일의 조급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면의 결핍이 여전하다면,

세상 부를 아무리 많이 가져도

공허한 안을 채울 수 없다.

풍족한 외부와 가난한 내면의 괴리만 깊어질 뿐.


내면의 풍요가 먼저라는 걸

이론으로는 받아들였어도,

가슴 밑바닥까진 깨닫는 데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잠재된 고정관념이

머리와 가슴에 깊숙이 박혀있어서

아무리 달래고 설득해도

그래도 제발.... 이라며 징징거렸으니까.


"당신은 참,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대수롭지 않게 던진 남편의 말에

울컥 눈물이 솟는 자신을 보고 알았다.


미래만 보며 채찍질하느라,

지금의 나는 많이 외로웠다는 것.


사랑해서 잘하기를 바란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사랑은 바람이 없는 거였다.


인영은 그동안 혹사시켜 온 자신과 화해를 시작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습관처럼 하셨던 '돈이 없다'는 아빠의 말씀에


'내가 벌어서 우리 엄마 아빠 행복하게 해 드려야지!'

'반드시 자수성가해서 우리 가족 잘 살게 할 거야.'

고 다짐했던 인영과 달리,


동생은 '돈은 아빠가 벌면 되지.'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단다.


신념은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모르게 돈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고

내가 돈을 벌어야 우리 가족이 행복해진다는 믿음을 쌓아왔다.


성공해야 사랑받을 가치가 있고

온전해진다는 믿음으로 인해

무조건적인 성공에 집착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성공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보기에 근사한 것.

꿈의 크기나 보여주기식 성과로

가치를 증명받는 것이 아니다.


가치는,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한 믿음으로

가치 있는 존재로서 행동하는 것이다.


그 행동은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것,

남편에게 미소를 주는 것,

좋은 글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자연을 보고 감사할 줄 아는 것.


그런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사랑스러우면

허전하지 않다.


다른 이의 눈을 통해

애정을 갈구할 필요가 없다.

너는 결국 잠재력을 발산하지 못한 채 그럭저럭 평범하게 살다가 끝내 빛을 보지 못하고 죽을 거야.

가장 아픈 문장을 스스로 적어보았다.


차마 볼 없어 외면했상황마저

안을 수 있을 만큼

인영은 단단해져 있었다.


지금 그녀는

자신과 자신의 삶을 충분히 사랑했다.


가만히 보니 아름답다.

지금 이 순간이 아름답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구나.


고통을 통해 자유를 배웠어.

나는 평범함에서 찾았어.

나약한 자신감.

인정하기 싫고 보이기 싫던 열등한 내 모습

가장 두려워하던 그곳에서 사랑을 찾았어.


겸손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

가난하고 초라한 나를 사랑하게 된 이유.

이제 감추지 않아.


욕망을 흘려보낸 후엔

늘 깊은 감사가 흘렀지.


사랑을 알게 해 준 모두에게

적절히 펼쳐진 삶의 상황에 감사해.


세상은 정말이지 나를 도우려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라고

이렇게 항상 언제나 축복하고 있었어.


"엄마 어때?

지금이랑 다르지?! 엄마 예뻐?"


신혼여행 사진을 보던 남편이

일곱 살 아들에게 장난스러운 질문을 한다.


"응 예뻐.

근데 지금 엄마가 제일 예뻐!!"


사진에서 고개를 돌린 아들이

쪼르르 달려와 인영에게 안긴다.


빨래를 개던 인영의 눈이

품 안에서 올려다보는 눈동자와 마주쳤다.


조용히 두근거린다.


아득히 사랑한_

바로 그 눈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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