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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레인 Feb 13. 2024

대학에 가니 잘 사는 애들 천지더라

#2. 지민

"지민! 넌 뭐 살 거 없어? J랑 백화점 가기로 했는데"


방금 강의를 하나 듣고 온 룸메이트 M이 책상 위에 전공책을 던져며 묻는다.

 

"아, 난 별로. 지금 해야 할 것도 있고... 둘이 다녀오셩~"


'갈 거면 빨리 가지...'  M이 이것저것 고르고 치장하는 30분 동안 지민은 한 손을 턱에 괴고 스크롤을 굴려가며 관심도 없는 인터넷 뉴스를 읽었다.


"다녀올게~"


화사한 얼굴이 웃음과 함께 사라지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닫힌 문을 응시하던 지민은 무언가 생각난 듯 몸을 일으켜 출출할 먹으려고 사둔 라면 한 개를 꺼냈다.

 

생라면을 씹었다.

핸드폰을 열어 한 손은 인스타의 사진을 넘기고

다른 한 손은 밀기루를 입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퍽퍽함을 삼키면서

사진을 넘겼다.


맛도 똑바로 느끼지 못하고

사진도 똑바로 느끼지 못하고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공허함을 마주하기 겁나서

멈출 수가 없었다.


그만


그만

 

그만!!!!


들고 있던 핸드폰을 침대 쪽으로 집어던졌다.


앉아있을 자신도 없어서

뒤집어진 핸드폰 옆으로 누워버렸다.


숨을 쉬고 있었다.


들어오고

나오고


숨이

들어오고

나오고


나는 무엇이 허기져 이러고 있을까?




대학에 입학할 때 M과 지민 그리고 옆방의 J는 금세 친해져 기숙사 삼총사가 되었다.


삼총사가 처음 백화점에 간 날, 아무렇지 않게 값비싼 매장을 드나드는 J와 M을 보며 처음으로 지민은 혼자서 멀리 떨어진 자신을 느꼈다. 쇼윈도를 통해 즐거워 보이는 그녀들 뒤로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것조차 어색한 못난이가 쭈뼛쭈뼛 서 있었다.


그 후로 서서히


해외여행도, 명품도, 비싼 음식도

지민이 한 번도 경험 못한 것들이

친구들에겐 자연스럽다는 걸 느끼면서


시골출신에 소박한 부모님을 둔 소녀는

스스로를 가두고 방어하기 시작했다.


비슷하거나 못해 보이는 친구들이 편했다. 나보다 잘나 보이는 친구들에겐 겉도는 이야기만 했다. 그냥 다 나와는 안 맞는 깍쟁이들 같았다.


'주눅이 나를 누가 알아챌까 두려워.'

'이 가난하고 초라한 현실에서 어서 빨리 벗어나야 해.'


비밀 다이어리에 멋져 보이는 여자의 사진을 붙였다.

성공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겉으로 보기엔 성실한 모범생이었지만

지민의 마음은 늘 불안으로 휘청거렸다.

잘 살다가도 하루를 망치면 심각한 자괴감이 몰려왔고

죄책감은 며칠을 가기도 했다.


스무 살_

핑크 빛 노란빛으로 가장 밝고 찬란해야 할 그때.

지민의 세상은 울적한 회색빛이거나

갈망의 버건디로 채워지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있으니 창문으로 파란 하늘과 함께 흘러가는 구름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5월,

한창 좋을 때 아닌가?


밀가루가 속을 뒹굴고 있었고, 부어있을 같은 얼굴에 거울을 보기도 싫었지만 간신히 떨치고 일어났다. 창밖의 구름이 외면하려 해도 계속해서 그녀를 불렀다.


혼자 쓰는 방이라면 그냥 두고 나가겠지만 없는 사이 룸메가 들어올 수 있으니... 라면 부스러기와 어질러진 침대를 정리한다. 그러면서 지민은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룸메가 있어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녀마저 없다면 정말로 망가져버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

'와, 날씨 진짜 좋다!'


방금 전까지의 짙은 회색이 순간 다 표백되어 버린 듯.

밖으로 나오자 가슴이 탁 트였다.


서서히 걸으며

다시 본연의 얼룩이 번지려 할 때

괜히 외롭다는 기분이 들었고,


마침 저쪽에서 지민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야, 김지민 너 어디 가냐?"


같은 동아리의 K선배였다.


K선배는 시골 출신이라 그런지 괜히 편했다. 아르바이트도 개나 하는 보면 형편도 지민과 비슷한 것 같은데 언제 봐도 그에겐 구김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요. 시험준비 하다가 답답해서 산책 좀 하고 있어요."


"역시 모범생, 또 공부냐? 이렇게 날씨 좋을 땐 나와서 빛도 쏘이고 해야지.  방구석에서 '올라가야 올라가야 해' 하지만 말고 이렇게 나와서 직접 계단을 올라가기도 하고 해야 공부도 능률이 오르지 않나?"


"그러게요. 사실 오늘 엄청 우울해요. 공부도 하나도 안 되고요."


'올라가야지. 올라가야지.'에서 뭔가 들킨 기분이 된 지민은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를 쏟아냈다.


"대학에 오기 전엔 몰랐어요. 왜 이렇게 잘 사는 애들도 많고 잘하는 애들도 많은 거예요? 잘난 사람 천지예요. 사회에 나가면 더 심할 텐데 뒤처지지 않으려면 저는 그냥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죠. 제가 뭐 딱히 노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요. 가끔씩 너무 답답하고 불안해요. 남들은 다 제 갈길 잘만 가는데 난 뭐 이리 심각하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나 싶기도 하고요. 이런 날이면 제 자신이 정말 한심하게 느껴져요."


"사실은요. 아까 M이 백화점 가자는 거 거절했어요. 거기 가면 주눅 드는 제가 싫어요. 어디 가든 가격부터 보며 덜덜 떨지 않고 눈치 안보며 살고 싶어요. 하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어두워졌던 얼굴을 다시 펴며

K가 입을 열었다.


'한심하다. 답답하다.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그 생각이 너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생각 안 해봤어?

네가 너를 그렇게 규정하고 있으면 그렇게 되는 거야.


나는 돈 없어도 친구들 따라 백화점에 잘만 가는데?

당장 못 사도, 가서 구경도 하는 것도 재밌거든.


그러니까 내 말은 지금 네가 생각을 바꾸면

상황은 그대로라도 얼마든지 괜찮을 수 있단 얘기야.


잘 생각해 봐. 어딜 가든 나보다 앞서는 이는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어. 자세히 보면 출발지도 다르고 목적지도 다른데, 각자의 길을 달리다가 우연히 교차한 길에서 스치듯 마주친 사람과 눈에 보이는 부분만 갖고 비교하고 경쟁하며 우울해지지.


기준은 자기 자신이야. 각자의 인생 지도에서 지금 서 있는 위치와 방향만 점검하면 될 뿐인데 세상이 쥐어 준 지도를 손에 들고 말도 안 되게 높은 기준을 들여다보느라 정작 손에 들었던 내 지도를 놓쳐버렸어.


사람들이 왜 그렇게 방법에 집착하는지 알아? 쉽게 쉽게 빨리빨리 하고 싶거든. 정해진 기준에 도달하려면 남들을 따라가면 될 테니까, 그 방법이 뭔지 그 전략이 뭔지 계속 궁금해해. 자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좋다는 걸 쫒고 늘 새로운 뭔가를 찾는 거지.


조급함에 약해진 사람이 많아.


이미 정보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쏟아지고 있고, 잠깐 하는 사이 불안을 자극하는 유혹에 끌려가지.


조급한 마음은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게 만들고 그런 선택을 하다 보면 결국 멀리 돌아갈 수밖에 없어.


저의 '생각'일 뿐이라고요?

부끄럽다. 주눅 든다. 어렵다는 것도요?


응, 너 시골 살아봐서 알잖아.

처음 서울 와서 지하철 탈 때도 덜덜 떨며 얼마나 헤맸냐?

근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타고 다니잖아.


뭐 거창한 게 아니야.

완전 딴 세상도 아니고,

그저 익숙하지 않은 것뿐이야.


백화점 가는 거?

같이 가기 힘들면 혼자서라도 해 봐.

불편하겠지. 그래도 또 해보고 또 해보고

익숙해지고 편해지고,

별 거 없어.


부자와 가난의 차이가 별 거냐?

재산이 몇 조든 몇 십억이든

매일 쓰는 돈은 한정되어 있고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통장이든

다 어디에 들어가 있는 건데,


내 통장에 얼마가 들어있든

스스로 만족할 줄 알고

당당하면 되는 거지. 안 그래?


뭘 그렇게 쫄아?


잠시 말을 멈춘 K선배는 사뭇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요즘 20-30대 자살률이 얼마나 높은 줄 알아?


부풀린 과시, 가혹한 기준. 비교와 경쟁 속에서

친구든 가족이든

서로 너무 많은 상처를 주고받고 있다는 생각,

안 해봤어?


너는 그러지 않았으면 해.


고통스러우면서 편안한 그 어둠에 숨지 말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더라도

네 안의 진실을 따라가 봐.



K선배와 헤어진 후

천천히 걷는 지민의 머릿속에

처음 대학에 와서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이 떠올랐다.


낯설었지만 설레던 그때,


무슨 가방을 들었는지, 어디에서 사는지... 보고 묻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걸 왜 보고, 왜 묻는지 이유를 몰라서 그대로 당당했고 몇몇의 친구들은 그런 지민을 좋아했다.


시골출신 소박한 부모님이 전혀 부끄럽지 않던 그때,

순수한 지민의 눈에는 순수한 세상만 보였고

친구들은 감추고 경쟁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간을 지나 이제 알아버렸지만

현실을 부정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진실은 말하고 있었다.

부끄러워도 그게 나라고.

부딪혀 실패하고 망가지고 그러면서 나아가면 된다고.


보기 싫고,

벗어나기 급급해서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 K선배 말이 맞다.

생각한 만큼 별 거는 아니다.


진실을 마주하기란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이지만

들여다보니 두려움은 웅크린 아이 같았다.


망상에 가까운 긍정을 하기란 쉽다.

책임을 회피하고 자신을 속이기도 쉽다.

하지만, 

정말로 괜찮은 게 아니라

괜찮아 보이려는 가면은 위험하다.





한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기숙사로 들어온 지민은

혼자지만 허전하지 않은 자신을 느꼈다.


샤워를 하고 노트북을 열었을 때

아까 보던 뉴스 밑에

한 코미디언의 인터뷰 기사 제목이 눈에 띄었다.


"제가 어떻게 보면 보면 콤플렉스 덩어리죠!"


뛰어난 외모도 좋은 목소리도 아니지만

누가 뭐라든 그녀는 자신에게 당당했다.


기사를 프린트했다.


다이어리를 펼쳐

여리여리하고 멋져 보이는 여성의 사진을 넘긴 후

방금 프린트한 코미디언의 사진을 붙이고

또박또박 적었다.


"제가 어떻게 보면 콤플렉스 덩어리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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