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레인 Mar 21. 2024

신념의 재구성, 감옥을 걸어 나오다.(1)

#13. 네 사람(인영, 성철, 준석, 지민)

억울하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착하다고,

나니까 참는다고 생각했죠.


생각은 신념이 되어

어느새 나 자신이 되어 버렸어요.


나는 피해자

저 사람은 가해자


참, 신기한 게요.


신념이 깊어질수록

믿음을 뒷받침하는 상황이 많이 나타나요.


보이는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본다는 말이... 정말 맞아요.


울고 불고 미워하고 싸워봐야

밖에서는 고칠 수 없더라고요.


속이 까맣게 타버려서

바닥을 쳐보고 나서야

진지하게 '안'을 보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알게 되었어요.


억울한 게 아니라

억울하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잘못이 아니라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생각과 내가 분리되기 시작한 거예요.


- 넷이 함께한 저녁에, 인영



"고민이라니까 하는 얘긴데...

기분 나쁘게 들으면 안 된다?!"


여름이 되고 둘 사이가 더욱 가까워지자

성철의 본 성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성철은 아끼는 사람일수록 더욱

이것저것 조언을 하곤 한다.


"준석이 너 내가 우리 와이프랑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한 것 기억나?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거' 말이야.


어디 가든 훌륭하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언제나 자기가 칭찬받는 일에 관심이 많지."


"하하. 맞아요. 과장님, 제 얘기네요.

상처가 됩니다! 찔리는 거겠죠. 크."


"그렇다니까? 와이프 말로는 자기는 그런 생각 때문에 오래 힘들었다고 하더라고. 내가 보기엔 지금도 완전히 벗어난 것 같진 않지만 말이야. 흐흐.


그래서 말인데,

언제 우리 집에 저녁 먹으러 올래?"


"앗, 정말로요? 

가도 되나요?

사모님이 싫어하시는 거 아니에요?"

 

"아냐, 안 그래도 내가 네 이야기했더니 와이프가 한 번 데려 오라고 하더라고. 우리 와이프 특징이야. 뭘 그리 할 얘기가 많은 지 예전의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글도 쓰고 있다니까?


지금이야 웃으며 말하지만, 지우가 아주 어릴 때...

우리 부부도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울 때가 있었거든.


그때부터 와이프가 마음공부니 뭐니 하면서 엄청 파더라고.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러고 나서 사이도 많이 좋아지긴 했지.


암튼 벌써 꽤 오래전 일인데,

그쪽으로 계속 책 보고 글 쓰고 하는 거 보면,

그냥 취미인 같아! 크크.

안보이는 것에 왜그리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어.

보이는 것에만 관심 있는 나랑은 정반대지."


"아하, 제 여자친구랑도 비슷하네요.

여자친구도 자꾸 내면이야길 하더라고요."


"흐흐. 그렇구먼. 너희 커플은 괜찮냐? 그래도 너는 현실적이라서 그런지 말이 통하는데 말이야.


와이프랑 둘이 이야기하면 가끔은 뭐, 외계인이랑 대화하는 기분이라... 암튼 이 기회에 같이 얘기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 와이프를 좀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 같기도 하고."


"어, 과장님~ 그럼 저 그날 여자친구 데려가도 되나요? 여자친구도 워낙 생각 많고 고민도 많은 이라 같이 뵈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이지. 같이 와."

'세상에,

우리 와이프가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니...


평소엔 무뚝뚝한 아내가 신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성철은 어쩐지 서운한 기분마저 들었다.


흥분한 건 지민도 마찬가지.

두 여자는 한참 전부터 알았던 사이처럼

속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뛰라니까 달린 거죠. 그래야 하는 줄 알고요.

옆에서 죽어라 뛰니 영문도 모른 채 이기려 들었어요.

규칙도 모르고, 게임 주최자도 모르는데

그냥 잘해야 하고, 해내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거죠.


숨이 차서 멈췄더니,

그제야 보이는 거 있죠?


규정이 없었어요.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규정을 가할 필요가 없었어요.


김지민!

세상에 너의 가치를 증명할 것.

너의 비전을 달성할 것.

행복해질 것.

성공할 것.


그때부터 혼란스러워진 거예요.


행복의 기준이 뭐지?

이 정도도 성공으로 봐줄 수 있나?

어떻게 하면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까?

이 책에는 이렇게 나왔네.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하네.

저걸 보니 저렇게 하면 되겠네.

아... 난 너무 부족해.

이 일로는 한계가 있어.

그렇게요.


아,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정했을까요?


성공하라고

행복해지라고

왜 정해버렸냐고요.


정하지 않았어도 되잖아요.


만약 규정이 없었더라면

수많은 이론과 질문이 안 나와도 됐다고요.


그냥 자유로워도 되는데...

적어도 자신에게는 그래도 되는데...

쓸데없는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뭐 이렇게 진지하지?' 하는 준석의 표정에는 아랑곳없이 앞자리 인영이 한 술 더 떠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받는다.


"정말 그래요.


이것이 없으면 안 되고,

이렇게 살아야 하고,

이런 모습이 되어야 하고


...


신념은 어디서부터 왔을까요?

그것은 과연 옳은 신념일까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에스키모인들은 두려움을 모른데요.

어떤 부족에게는 슬픔이란 단어가 없대요.


억울하기까지 한 거 있죠?


늪처럼 집어삼키고

갈기갈기 찢어놓고

헤매게 하던 감정이


사실은 내 머릿속 이야기라는 것이요.


어떤 사건에 따라

그에 걸맞은 어떤 보편적인 감정이 있는 아니라


각자의 생각과 감정이

상황에 영향을 준다는 ,

신기하지 않나요?


인간의 삶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어요.


당연하다 믿어버린 규정의 감옥에서

벗어날 생각조차 못 한 채 버둥거린 거죠.


어디서 봤는데요.

진정한 자기 발견을 막는 것은

무의식적 고정관념. 거짓된 신념, 이상... 그리고

낡은 사고방식과 습관 같은 것들이래요.


스스로 괜찮다면야 상관없겠지만

어떤 신념 때문에 내가 힘들다면

그 신념이 과연 진짜인지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맞아요. 제가 봤던 책에서도 자주 다뤘던 주제예요. 자신의 심리적 고통을 만든 비합리적인 신념을 알아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요."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준석에게

인영의 질문이 넘어왔다.



"준석 군은 그런 거 없나요?"

일상에서 기분을
몹시 안 좋게 하는 상황이라던가,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어떤 신념 같은 거요.



** [신념의 재구성, 감옥을 걸어 나오다]는 2편으로 나누어 연재됩니다.**



이전 13화 이론처럼 안 되는 거부감, 인간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