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처럼 안 되는 거부감, 인간관계
#12. 지민
인간관계가 어려운 이유는
타인을 통해
나의 불편한 모습을 보기 때문이구나.
어쩌면 우리는 관계 속에서 나를 경험하며
좋고 나쁨도 없는 참모습에 가까워지기 위해,
이렇게 서로 부대끼며
살고 있는지도 몰라.
그러면서 지민은
앞으로는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것을 외면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것이야말로 나를 돌아볼 기회이며
본래의 편안함으로 가는 지름길일 테니.
"자아실현
이라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들어요?"
"글쎄, 촌스럽지 않나? 요즘 우리 또래 누가 자아실현이란 단어를 써."
"흐흐. 그런가?"
사실은 모두가 원하지만
너무 이상적이라서 소외된,
비현실적이며 쓸모없다는 이유로
구석에 처박힌 단어.
자아실현이
'자아의 본질'을 완전하게 실현하는 일이라면
이제 지민에게 자아실현은
어떤 직업을 갖거나
어떤 위치에 오르거나
무엇이 새로 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볼 자신이 없어서
안이 아닌 밖을 보며
내가 아닌 다른 이의 꿈을 좇았던 거야.
다시 찾은 지민의 꿈은
본래의 내가 되는 것!
어쩌면 예전의 그 어떤 꿈보다
더 어려운 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제 허무하지 않다는 것.
저 멀리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꿈이라는 것.
지민은 빛바랜 이상의 먼지를 털어
다시 만지작 거리고 싶어졌다.
좋았어.
이제 더 편안해질 일만 남았겠지?
그런데 웬걸?
난리가 났다.
불편한 모습이 더욱더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좀 알 것 같아.
이렇게 살면 되겠네!'
라고 할 때면 언제나
현실은 어김없이
더욱 어려운 과제를 들고 나타났다.
'그래? 어디 한번 해 봐,
이게 네 실체야.'
라고 하는 듯.
서서히 어느 날부터
뭔가 대단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남을 돕겠다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이 생겼다.
또 그것에 열광하고 따르는 사람들,
자기 계발이든 영성이든 심리학이든
방법에 치우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불편했다.
반면 봉사나 기부를 통한 도움은 숭고하게 느끼고,
본질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숨은 고수 같은 사람이 멋져 보였다.
싫은 대상을 보는 것도 별로였지만,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자신을 보는 게 괴로웠다.
구분 짓고 불편해하는 자신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편함은 거부감으로까지 번졌다.
블로그를 열어도, 단톡방을 봐도 보기 싫은 모습이 보였다. 심지어 상담센터에 오는 사람들마저 자기 잣대로 평가하며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잘 될 거예요.'라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잘 될 리가...'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고통스러웠다.
상담사로서의 자격이 없는 듯하다.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만 않았을 뿐
내가 안 하면 누구라도
'위선자'라며 손가락질을 할 것 같았다.
'직면하겠다고 했지만 피하고 싶어'
매일 하던 블로그를 멈췄다. 보기 싫은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다른 SNS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회사에 다녀와서는 퍽퍽한 저녁을 때우고
한 자리에서 멍하니 영화만 봤다.
다시 예전처럼
실수를 하고, 어지럽히고,
어쩔 줄 모르는 자신이 등장했다.
돌아가지 않을 것 같던 모습과
지운 줄 알았던 감정이 이렇게나 쉽게 되살아나다니.
'그래, 나는 아직도 한참 부족하구나!'
영감이 가득한 듯, 온 세상을 다 사랑할 듯
그렇게 눈물 흘리고 감사하고 기뻐했어도
돌아서서 한 순간에 이렇게 나약해질 수 있는 '사람'이구나.
간신히 멈추었던 날,
준석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내일 퇴근하고 뭐해요? 저녁 같이 먹어요."
"내일이면 수요일인데, 웬일이야? 무슨 일 있어?
저녁 7시쯤 어때? 내가 갈게."
준석은 주말에만 보던 여자친구가
불쑥 만나자는 게 조금 걱정이 되었다.
잘 지내는 척,
괜찮은 척
상담센터에 취업한 후론 한 번도 터놓고 말하지 못했다.
지민은 가장 가까운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었다.
"자아실현
이라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들어요?"
"글쎄, 촌스럽지 않나? 요즘 우리 또래 누가 자아실현이란 단어를 써."
"흐흐. 그런가?
있잖아요. 선배~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요. 자아실현, 자기완성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러니까 고시공부 그만두면서 생각했던 것들 말이죠. 이젠 보이는 것과 비교와 경쟁 같은 것들에서 벗어나 나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뭐랄까... 다시 혼란스러워요.
처음 상담센터에 들어갔을 때와 다르게
상담사로서도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하하. 자격 없는 건 맞지. 넌 아직 경험부족에 자격증이나 학위도 더 따야 하잖아. 그래서 인턴으로 들어간 거고."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런 건 부차적 문제고요. 저는 이 일을 할 자질이 안 되는 것 같다고요. 기본적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해요."
"흠... 그런가? 내가 아는 사람 중 제일 착한 사람이 김지민인데.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친절하고... 너 그렇잖아."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깊이 보니 아니에요.
드러나지 않았을 뿐
생각으로, 혼잣말로, 어쩌면 행위로도
지은 죄가 너무 많아서 고개를 들 수가 없어요."
의외의 발언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준석이 입을 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알고 보면 생각으로 혼잣말로 어쩌면 행위로도... 자세히 보면 위선이 득실거리고 부끄러운 일 투성이지.
그런데 말이야.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
누구나 어두운 면도 있고 부정적인 면도 있지 않나?
신이 아니고서야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지난번 기숙사에서 나에게 해줬던 말 있잖아.
내 잘못이 아니라고.
그렇게 완벽해 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그대로의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크크. 지금 생각해도 그때 내가 그 말은 참 잘한 거 같아요. 오빠가 몇 번이나 이야기하는 걸 보면요."
"그렇지, 그날이 김지민이란 사람이
나에게 훅 들어온 날이지."
앞에 앉은 그이와 함께 웃으며
문득 지민은,
'그렇기에 인간이 사랑스럽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해서 완전한 것이 아니라
어둡고 부정적이며 불완전한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감싸 안으며
완전해지는 것!
나와 닮은 타인도
나와 다른 타인도
불완전한 존재로서
애쓰며 고통받으며
그럼에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렇게 서로 기대고 채우며
동그랗게 완성해 나가는 삶의 여정.
이런 내가 누구를 판단하고 규정할까?
그저 나와 같은 내 이웃
살아가는 모두를 사랑할 수밖에.
집으로 돌아온 지민은
오랜만에 블로그를 열고 싶어졌다.
메인 화면에는
작년 오늘과 재작년 오늘
자신이 쓴 글이 소개돼 있었다.
무심코 클릭하여 읽다가 깜짝 놀랐다.
며칠 째 거부감을 느낀 타인의 모습이
소름 돋도록 불과 얼마 전 자신이었다.
한참 멀었다며 안타깝다던 생각들이
일 년 전 이 년 전 자신의 생각이었다.
그래, 외면해 둔 내가 건드려진 거야.
그래서 가슴이 답답하고
괴로웠던 거야.
충분히 안아주지 못했구나.
내 안의 사랑이 부족해서
사랑을 채우고 알려주려고
날 닮은 당신들이 보였구나.
언제나 그랬다.
진실은 이론보다 아프다.
하지만 도덕적인 완벽함이나
보이는 철저함보다
번듯하지 않더라도
안과 밖의 균형을 이룬 삶이
자기완성에 더욱 가까운 길이란 걸.
지민은 그렇게 살기로 했다.
아파도 부딪히며
삶으로부터 살기로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