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레인 Apr 16. 2024

우리'로부터' 나오는 것보다
우리를 '통해' 흐르는 것

무엇이 진실인가?

내가 그걸 아는가?

무엇으로 판단하는가?


진실은 스스로 행동하고

스스로 작용한다.


진실을 현실에 적용하려는 인간적인 생각

불합리 부조리 내 눈앞에 보이는 그것들은

저항의 대상이 아니며 끌어안을 대상이다. 

순응이 아니다. 

사랑의 시선으로 보라는 뜻이다. 

용서하고 연민하고 사랑하는 것이 신이다. 

신이 작용할 뿐이다.


진실은 스스로 작동한다.

'작은 나'는 받아들이고

흐르게 할 수 있을 뿐이다.


억지로 어떻게 해보려 할수록 돌아갈 뿐.

결국 신의 뜻은 이루어지기에.


'작은 나'는 자꾸 주도권을 행사하려 한다.

거저주는 선물에는 시큰둥하고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것,

그럼으로써 '나'를 돋보이게 할 무언가를 원한다.


이미 가치로운 존재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방법을 찾아 헤맨다. 


수많은 현자들에 의해 알려져 온

오래된  진실


'당신이 이미 그것입니다.'


곁에 있으나 모를 뿐이다.

인간들은 신을 원하지 않는다.

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고

자기를 드러내려 한다.


신의 도구가 되려 하지 않고

신을 도구로 활용하려 한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작은 나'를 증명하는 방식이다.


진실한 욕망은 '큰 나'의 뜻이다.

진짜 내 것이라면,

매달리지 않아도 나에게로 온다.


'내가 그 소망이다.'

'내가 그 사랑이다.'


그동안의 방식으론 도달할 수 없었다. 


밖에서는 찾을 수 없으니

안에서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울 것이다.


파랑새를 찾으려던 방황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와 고요히

그 자리에서 기다리던 파랑새를 만난다.


무엇이 되기로 하였는가?

'큰 나'의 자리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선택했으므로 족하다. 

판단과 노력을 조심해야 한다.


무엇이 진실인가?

상황과 조건을 이렇게 저렇게 규정한들

작은 내가 무엇을 알겠는가?


그렇게 되기로 확인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참된 능력이다.



인간들은 이미 주어진 은총에는 관심이 없다.

'작은 나'를 드러내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러나 


작은 내가 뒤늦게 발견한

가장 지혜로운 방식은


이완, 수용, 내려놓음...


어떻게 표현하든

바로 그것이다.


우리의 개인주의와 자율성은 더 이상 우리로부터 나오는 것보다는 우리를 통해서 흐르는 영웅주의를 믿지도 못하고 누리지도 못하게 만든다.

- Hubert Dreyfus and Sean Kelly,  All Things Shining
그는 행위의 주체도, 행위 그 자체도 아니며
행위와 그 결과를 연결 짓는 그 어떤 것도 아니다.
행위에 관한 것은 오직 프라크리티의 소산이다.

모든 행위는 프라크리티의 물질적인 성질에 따라서 저절로 일어난다. 따라서 자기는 행위자가 아님을 아는 사람이 참으로 아는 사람이다. 

- 바가바드 기타


이전 22화 편안함을 선물할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