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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마음에 감사해.​

by 지레인

역경에 대해 추억하며 울먹이는 K에게

성철은 그의 마음이 약한 것이라 했다.


누구나 어려움은 있는 것 아니냐며

유독 힘들게 살았음을 호소하는 건

한편으론 피해의식 같다고도 했다.


외모, 정체성, 자아, 진로, 인간관계... 왜 살아야 하는지, 나는 누구인지... 한 때 고민해보지 않은 이가 누구겠냐며 아직도 거기에 빠져 허우적대는 건 너무 유아틱 하지 않냐고...


성철은 강했다.


짜증도 나고 우울하기도 하고 기분이야 좋았다 나빴다 했지만 감정에 빠져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았으며, 특유의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판단력으로 무슨 일이 생겨도 헤쳐나갈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었다.


겉보기와 상관없이 남들에겐 괜찮아 보여도 속으론 얼마나 아프고 타들어가는지, 멀쩡하게 살다가도 왜 가끔씩 멀쩡하기 힘든 날이 있는지, 이성적으로 별로 화가 날 일이 아닌데 왜 자꾸 안에서 분노가 치솟고, 지나가듯 툭 던진 가까운 이의 말과 행동에 혼자서 멍이 들어 미움과 원망을 퍼붓다가... 결국 그 증오가 자기와 자기 삶으로 향하는지...




역경에 대해 추억하며 울먹이는 K에게

인영은 함께 울며 함께 감사하자고 했다.


그 약하고 아픈 마음이

나를 버려 항복하게 했다고.


끈질기게 버티려던 내가 부서지고,


깨어진 틈으로 빛이 들어와,

빈 공간에서 사랑을 경험했다고.


그 틈으로 진정한 나를 만났으니,

우리의 모자람은 우리의 자랑이라고.


모르겠다는 성철에게

인영이 미소를 지었다.


우리 사귀기 시작할 때 당신이 나에게 그랬지.

당신이 들어갈 틈을 달라고.


그때의 나는 스스로 강하고

혼자서도 내 삶이 충분히 재밌고 좋아서

곁의 누군가가 필요치 않았어.


인색하게 닫힌 마음을 안에서 걸어 잠그고,

사랑을 주고받는 마음들이 불편해서,

베풀고 잘해주는 사람이 부담스럽기만 했지.


아무리 좋은 사랑도

문을 열지 않으면 받을 수 없어.


당신이 말했던 틈.

모자라서 채워야 할 말랑말랑한 공간.


당신이 이해 못 하는 나약함도 비슷해.


할 만큼 했지만 안 돼요.

이제 더는 못하겠어요.

자포자기 두 손 두 발 다 들고 포기를 선언했을 때


오만이 겸손으로 바뀌어

내면에 공간이 생기지 않았다면


타는 목마름이 없어

물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숨겨진 능력을

영영 몰랐을 거고,

허용할 수도 없었을 거야.



약한 마음에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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