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이는 일에 열심을 부리십시오.
되도록 신속하게,
개인의식으로부터 물러나십시오.
'나'를 죽게 하십시오.
- 조엘 골드스미스, [인피니트 웨이] p169
이상하게도
정신이 먼저 무아(無我)를 납득하고,
무경계의 느낌이 지나고 나면...
'나'라는 생각이
더욱더 강렬히 발버둥 친다.
"저의 이름은
우도운입니다.
임금(우)에 이를(도), 흐를(운).
물처럼 편안하게 살라는 뜻으로
엄마 아빠가 지어주셨습니다!"
웅성웅성 미소가 번지던 교실이
순식간에 얼음이 된다.
그럴 만도 하지.
재물을 누리고
이름을 날리고
세상을 빛내라는
의미들 사이에서
난데없이 편안히 살라니.
어버이날 행사로 따라간 둘째 아이 유치원,
자기 이름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다행히 얼음은 곧바로 녹았지만
얇은 막 속에서 동떨어짐을 느꼈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와는 다르구나.'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친정 엄마와 통화를 한다.
"네가 참 잘해서 엄마도 그런데 가면 항상 뿌듯했는데..."
"응 엄마, 그러고 보면 난 손들고 발표하는 걸 참 좋아했던 것 같아."
"그래그래. 선생님들도 긴장된 자리에선 항상 우리 딸을 젤 먼저 시키셨지."
...
통화가 끝난 후,
이제 친정 엄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나 혼자 걸음은 집으로 향하고 있지만
마음은 여러 명을 상대하듯 분주해진다.
'그것 봐.'
'그게 너잖아.'
'그게 너야.'
과거에 갔다가 미래로 갔다가
현재에 머물지 못하고
또다시 자리를 뜬 생각이
이곳저곳으로 움직이며
또 다른 생각을 데려와
재촉한다.
돋보이고 싶은 마음
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넌 정말 내려놓을 수 있니?
아니, 정말 그걸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가 얼마나 발표를 잘했는지,
얼마나 당당하고 돋보였는지
기억 안 나?
그래. 맞아.
이제 나는 꽤 많이 성장했는 걸.
제법 겸손해졌고
사랑의 마음도 커졌어.
독서도 중독이야.
준비를 가장한 또 다른 회피지.
밖으로 나와!
너를 보여줘.
거기까지_
부풀려 띄우던 에고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다.
빵빵한 바람이 빠지며 그 틈을 타고
곧바로 부정적 생각이 침투한다.
그런데 왜 안 보여줘?
저 사람들은 저렇게 다 하는데,
너는 왜 숨어만 있어?
그렇게 평온하게 앉아,
유유자적 가만히 있으면 될 거라 생각해?
이게 하루하루 글을 쓴다고 될 일이야?
뭐라도 전략을 짜봐.
그렇게 아무렇게나 하지 말고 우선순위를 정해야지.
사실 넌 부족한 것 투성이야.
그나저나 오늘은 처리해야 할 집안일도 많고
너 연휴 후로 영어도 손 놓고 있지 않아?
한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도서관에 책도 반납해야 하는 날이야. 알지?
어제와 비슷한 똑같은 하루가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된다.
감사와 축복으로 편안했던 일상이
난데없이 의무감과 찜찜함으로 가득 찬
총체적 난국이 돼버린다.
아뿔싸.
생각이 만든 스토리 하나로.
.
.
.
그만.
믿지 못할 너, 생각이야말로
그만!
가까스로 중지를 선언하고
눈을 감고,
호흡을 느끼며...
지금으로 온다.
잠시 후에 들리는
조용한 내면의 목소리.
돋보이기를 내려놓으라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 보라는.
...
그럴 수 있을 거라 믿었고
그렇다고 믿었는데...
눈물이 난다.
포기할 수 있을까요?
내가요?
잘 나가던 어린 시절을 지나
보기엔 그럴듯했던 20대와 30대
애쓰며 열심히 살았지만
진정으로 충분히 채워진 적이 있었냐고,
구멍 뚫린 인정 욕구에는 늘 갈증이 있었고
에고는 늘 그렇듯 번쩍 들어 올렸다가도
놀리듯 다시 땅으로 떨어뜨리지 않았느냐고.
그래,
포기도 아니고
희생도 아냐.
그저 환상을!
분리가 만든 두려움을_
놓아주는 것뿐이야.
첫째 아이의 이름은 도현
이를(도)에 소리(현)
소리에 이르다.
권력의 저편,
낮은 곳에서 주인을 예비하는 자리.
'빈들에서 외치는 소리'라 했던 세례자 요한을 떠올리며 뿌듯해하던 이름.
이상하지 않아.
너의 경험이,
너의 의식이...
'내 안의 나'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면
동떨어진 것 같다고,
다르다고,
불안해하지 마.
나는 소리요. 물이며,
조용히 물들어 퍼지는
자연이고, 사랑이야.
사랑해.
흔들리는 너를
죽어야 할 너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