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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레인 Jul 14. 2022

그래도... 글을 쓰는 이유

결정적 순간에 나를 잡아끄는 저항감을 극복하는 일


이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이런 걸 누가 본다고.
이건 일기장에나 쓸 내용 아닌가?



머릿속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브레이크를 건다.


회사일을 할 때는

이런 류의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으니

괜찮았지만


정작 내가 좋아하는 창조를 할 때는

이것이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했다.


뭔가를 세상에 내놓으려고 하면

어김없이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이들이 보든 말든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내 이야기를 드러낼 자신이 없었다.


혹여나 별 것 아닌 아웃풋으로

남들의 시간을 뺏을까 봐도 두려웠다.


아무렇지 않게 툭툭 이야기를 던지거나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신기하기도, 부럽기도 했다.






이렇게 된 하나의 원인은

거만한 에고(ego) 때문이었다.


뭔가 특별해야 한다는 착각

잘하는 모습만 보이고 싶다는 허영.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의 가벼운 글에는

여유 있게 미소 지으면서

유독 나는 아무렇지 않게

글을 쓰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한때는


다른 사람에겐 너그럽고

스스로에게는 냉정한 내가

잘하고 있는 거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다른 사람은 괜찮다면서

나는 안된다고 하는 건

어찌 보면 굉장히 재수 없는 모습이었다.

(나만 특별하단 착각)


남들은 나에게 별 관심이 없는데

혼자 나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하고 있는 것도

자기중심적 사고가 불러온 착각이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좀처럼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에 기인했다.


남의 눈치를 보고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다는 것은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기 싫고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 안의 사랑이 부족하니

나의 창조물로써

내 존재를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다.


그래,
특별하고 싶은 욕구나
결과에 대한 기대는 내려놓을 수 있어.

하지만 순수하게 좋아서 표현하는 일에도
나를 위해 생각하는 게 이토록 어색한 건 왜일까?
난 세상에 외칠 용기가 없어.

- 어느 날의 일기





오늘 아침 산책을 했다.

비 온 후의  신선한 공기를 맡으며


아빠를 떠올렸다.


아빠는

노래를 참 잘하셨다.


반쯤 눈을 감으시고

그 걸쭉한 목소리로

온 감정을 실어...


...


어릴 적 친척분의

결혼식장에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고모의 무릎에 앉아있었고


아빠는 흔들리는 버스 앞에 서서

마이크를 쥐고 노래를 부르셨다.


사람들은 아빠에게

'남진'이라고 소리쳤고

고모는 내 귀에 속삭였다.


"네 아빠 노래 잘하지?"


...


아빠는 일반인들이 TV에 나와

노래 부르는 프로그램을 좋아하셨다.


직접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아빠의 꿈은

가수였다고 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


아빠의 차에서 나온

꼬깃꼬깃한

노래 가사 쪽지를 보고


남은 우리는

웃으면서 울었다.


일본 가수가 부른

'울고 넘는 박달재'를

감명 깊게 들으신 아빠는


일본어 가사를 한글로 받아 적어

수시로 보고 따라부르셨나보다.




아빠가 글자를 쓰시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는데,.


아빠의 글씨체는

너무 잘 알 것 같다.







누구보다 순수하셨던,


어딘지 모르게

기를 펴지 못하고

평생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사셨던.


우리 아빠.


나는 아빠와 참 많이 닮았다.



산책을 하며

곁에 와계신 아빠께 말씀드렸다.



이제는 아빠 대신 내가

노래를 부르겠노라고.



결정적 순간에 나를 끌어내리는 저항감

그 강력한 두려움을 끌어안는 일.


어쩌면 이건 오래도록 풀기 힘들었던

나에게 주어진 숙제였다.


오늘 아침 나는

기꺼이 숙제를 풀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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