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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레인 Apr 27. 2023

자책감 사후대처법(부정적 감정 다루기)

[강의 노트] 행동 감정 이완법_15강

지난 강의에서는 자책감을 느끼지 않는 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할 존재로서 주체적인 나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아무리 이론적으로 무장하고, 큰 깨달음이 왔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새겨진 자책의 패턴이 금방 사라지진 않을 것입니다. 


며칠 괜찮다가도 다시 또 툭툭 튀어나오는 내가 나에게 하는 부정적인 이야기들은 반복된 연습과 훈련을 통해 서서히 옅어질 거에요. 그러니 다시 또 자책감이 들 때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책하는 나를 다시 또 자책하지 말고

정화의 기회로 삼으세요.   


모든 감정은 정당합니다.


외면하고 억눌러 온 자신을 충분히 느껴달라고

감정은 그렇게 다시 또 나에게 왔습니다.


"왜 이리 기분이 나쁘지?"

"너무 싫다. 우울해. 짜증나."

저항하지 말고 그저 허용해보세요.


여기서는 자책을 포함한, 불안감, 공허함 등의 감정이 어쩔 수 없이 찾아왔을 때 대처방안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 방법이 익숙해지면 자책의 횟수 자체가 줄어드는 선순환이 생깁니다.


자책감이 들게 만드는 상황 자체가 줄어들거나, 혹은 같은 상황이어도 자책을 하지 않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거에요. 충분히 느껴준 감정은 다시 예전처럼 자신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불안하거나

공허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면

서둘러 도망칠 곳을 찾곤 했다.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뭔가를 먹거나


아무 생각 없이 다른 것에 집중하며

부정적 마음을 무시했다.


조금 더 발전한 후에는

적극적으로 긍정 마인드를

장착하려 노력했다.


기분 좋은 장면을 상상하거나..

책을 보거나..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으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운동을 했다.


'고통은 나를 성숙시킨다'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적극적으로 '감사하기'도 해보았다.


문제는 이러한 노력이

단기적 치료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상처가 나면

약을 발라 낫게 할 수는 있었지만

여전히 나는 상처가 잦았다.


돌부리가 여기저기 널려 있으니

툭하면 걸려 넘어졌고,

여린 살은 쉽게 멍들고

그때마다 아팠다.


지긋지긋한 자기혐오의 굴레를

벗어날 방법은 없는 걸까?


- 그 날의 일기

 
 


우는 아이를 달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울지 마! 울면 못써! 혼난다!! (다그침)

이거 봐봐 TV에서 재밌는 거 나오네 (회피)


가 아닙니다.


우리 00가 로봇을 못 갖고 놀아서 속상하구나

더 놀고 싶은데, 자라고 하니 서운했겠다.


공감의 표현과 함께 아이의 감정을 느껴주면 어느새 아기는 눈물을 그치고 마음을 풉니다. 마음이 열리고 나면 그 다음 설득은 쉬워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 자괴감이 몰려옵니다.


'이렇게 또 하루를 망치다니 난 쓰레기야.'

'모르겠다. 영화나 보자.'


무엇이 빠졌는지 알겠나요?

네, 감정의 수용입니다.


아픈 상처는 때론 회피로, 때론 정신승리로 임시 처방이 가능하지만, 내면을 단단하게 하는 근본적 치료 없이는 언제고 상처받기 쉬운 상태에 노출되기 마련입니다.


좌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시 하기'가 좋은 방법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좌절을 충분히 느껴주는 수용 과정이 포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불편할 것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온전히 느끼려고 해도 몸과 마음이 잠자코 있지 못할 거에요. 핸드폰으로, 음악으로, 음식으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잠시 바라봅니다. 충동적으로 즉시 행동하지 말고 잠시만 관찰해보세요. ‘나는 무엇을 피하고 싶은 걸까?’’어떤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도망가려는 걸까?’ 조용히 자신에게 말을 걸어보세요.


회피하지 않고 느껴주면 서서히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불안감이 지나간 자리에, 편안함이 채워집니다.


이 방법이 좋은 이유는 충분히 느끼고 알아주었을 때 동일한 감정을 느껴야 할 상황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회피하면 다시 돌아옵니다. 저항하면 반복됩니다. 느껴주고 풀어주어야 사라집니다.


감정을 수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음 강의에서 좀더 자세히 다루고,  여기서는 ‘관찰자’가 되는 방법에 대해 소개하려고 합니다.


1) 지켜보는 새 되기


인도의 경전 <우파니샤드>에는 한 그루의 나무에 앉아있는 두 마리의 새가 나옵니다.

                                                  


한 마리는 열매를 계속 쪼아먹고 있고, 또 다른 한 마리는 그저 보고 있습니다. 두 마리의 새는 모두 '나'를 상징합니다.


내 안에는 세상을 경험하느라 바쁜 에고(ego, 작은 나)가 있고, 이를 조용히 지켜보는 참자아(초월적 자아, 큰 나)’가 있습니다.


에고는 항상 부족하다고 하고,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고 부추깁니다. 세상의 슬픔에 젖고 자신의 무능력을 슬퍼합니다. 조급해하고 자책하는 것은 세상의 잣대에 맞추려고 애쓰는 에고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나는 에고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참자아를 나로서 인식하고 본래의 나와 가까워지는 길이 고통과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입니다. 참자아의 위치에서는 에고를 품어줄 수 있습니다. 지켜보는 새가 되는 것, 관찰자의 시선은 감정에 저항하지 않고 보내주기에 유용한 방법입니다.


내가 나를 지켜본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면 나의 이름을 넣어 상황을 설명해보세요.


'oo이가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이네'

'oo이가 지금 조급한 마음이 드는구나.'

'oo이가 일이 잘 안 풀리니 좌절감을 느끼는구나.'

다른 사람을 보듯 말이죠.




자책감이 들거나, 불안하거나, 조급할 때면 두 마리의 새를 떠올렸습니다. 관찰자가 되는 시간을 늘리면서 삶은 훨씬 더 편안해졌습니다.


김상운 님의 [왓칭, Watcing]에는 '관찰자 효과' 가 우리를 어떻게 더 나은 삶으로 안내하는지 과학적 근거와 다양한 사례가 나옵니다.

 


비극적인 시나리오에 과도하게 몰입하지 말고, 한 발자국 떨어져 영화를 보듯 삶을 감상해보세요.


하루 이틀 망쳐도 괜찮습니다. 하기 싫어도 괜찮습니다. 무기력에서 빨리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감정 게임에 빠져 '안된다. 싫다.'라며 저항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품어주세요.


본래의 당신은 행위 하는 자아와, 지켜보는 자아 그 전부를 품고 있음을 기억하세요.



모든 감정은 정당하다. 감정을 다루는 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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