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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레인 Apr 28. 2023

화가 나는 이유와 대처법(편안한 일상을 위해)

[강의 노트] 행동 감정 이완법_16강

15강까지 주로 목표에 대한 이완(행동 이완, 그냥 하기)을 다뤘다면, 16강부터는 일상생활 이완법(감정 이완, 감정 다스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행동 감정 이완법]은 <이유없는 편안함>의 노랑검정님과 콜라보로 진행하고 있는데요.




저는 노랑검정님이 쓰신 '편안함의 범위를 넓힌다'는 표현을 좋아합니다. ‘모두를 유혹하는 편안함이라는 향수’라는 문구에 동의하고요.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편안함이 풍기는 매력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충분히 편안하신가요?

어떻게 하면 편안함의 범위를 넓힐 수 있을까요?


두려움을 다루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편안함을 넓히기 위해서는 불편함을 마주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고정관념을 부수는 작업을 하기 위해 <감정을 허용하는 글쓰기>를 했던 것, 기억하나요? 그때에는 현재 상황에 대한 속마음을 세세하게 기록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이번에는 일상 속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을 적어보려 합니다. 평소에 나를 주저하게 하거나 긴장하게 하거나 예민하게 만드는 부분이요.


유난히 화가 치솟는 순간이 있습니다. 볼 때마다 못마땅한 모습도 있죠. '저 인간의 저런 모습은 도저히 못 봐주겠다!' 하는 부분을 적어도 좋고요. ‘나의 이런 모습은 정말 바꾸고 싶다.’ 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부모님, 시부모님, 부장님과의 관계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부분도 좋고요. 자식을 돌보며, 혹은 친구와 만났을 때 스스로 용납하기 싫은 부분을 써도 좋습니다.


아마 한두 개쯤은 있을 것입니다.


'와이프가 잔소리하는 게 너무 싫다. 팀장이 아무 일이나 떠넘길 때마다 발끈하게 된다.' 다 좋아요.


물론 평온한 상태에서 떠올릴 때는 '그래, 그런 게 있지~' 하는 정도일 거예요. 하지만 막상 현실에 닥치면 달라지죠. 속으로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부정적 생각이 더해지면 극단적으로 자살 충동(혹은 살해 충동)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네, 바로 그 부분입니다. 그 상황에서는 화풀이를 어디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정돈되지 않아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그 일을 써보세요.


상대방 혹은 특정 상황에 대한 나의 생각과 느낌을 풀어내듯이, 아주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적어보세요. 스트레스받는다. 불편하다. 짜증 난다. 나 어떡하지… 무서워, 두려워, 화가 나, 서러워… 다 좋습니다. 일상의 불편함에 대한 생생한 글쓰기는 화가 나는 상황, 짜증이 폭발하는 상황에서 쓰는 게 가장 효과적입니다. 우선 먼저 이렇게 작업을 해보시고, 실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도 꼭 적용해 보세요.


참고(예)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메시지를 뭐라고 보낼까?

아, 진짜. 왜 이리 눈치를 보는 거야?!

나도 내가 싫다.


사람들을 만나고 오면

한동안 멍에 빠지는 것 같다

에너지가 다 소진된 채로

나도 모르게 곱씹고 돌아보다가

아까 한 이야기가 바보 같고

다시 돌아가 지워버리고 싶은...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상태.


적당히 친한,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 역시 좋은 사람이 되려고 기를 썼다.

틈나는 대로 맞장구를 치고

머리로 계산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다.

가면을 쓴 것 같아 불편하다.


스무 살부터였던 것 같다.

그녀들을 만나고 나면

솔직히 피곤함이 몰려온다.


한껏 겉도는 대화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왠지 더 못생겨 보이는..


별로 말을 많이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생기를 잃은 입술의 내가

오징어처럼 멍하니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


가슴 한구석이 허전하다.


진실하지 않은 관계가 불편해서

서서히 거리를 두고 있다.


차라리 숲에 들어가서 혼자 살면 좋겠다.

사람들 앞에서 가면을 쓰는 것도 싫고,

인간관계는 피곤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위의 (예)에서 사실과 생각/느낌을 구분해 볼까요? 객관적 사실을 제외한 나머지 주관적인 부분에 밑줄을 쳐보세요.


객관적인 부분은 사람을 만났고, 겉도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 피곤하고, 불편하고, 짜증 나고, 모두 다 나의 생각과 느낌이죠. 주관적인 부분에 빠져 깊이 파고드는 것이 고통을 만듭니다.


당신을 화나게 했던 상황이나 불만스러운 일을 떠올려보세요. 상황은 객관적입니다. 상황과 화 사이에는 ‘판단’이 들어가 있습니다. 나를 넘어뜨린 돌은 잘못이 없습니다. 그저 돌은 거기 있었을 뿐입니다. 돌부리에 걸린 나는 그 돌을 거기에 둔 누군가, 혹은 주의하지 못하고 넘어진 나, 혹은 재수 없는 나의 운에 대해 원망하느라 고통을 가중시킵니다. 다쳤으면 약을 바르고, 흙이 묻었으면 털면 되는데 세상과 누군가와 혹은 나 자신을 원망하느라 계속해서 싸우고만 있습니다.


맘에 안 드는 행동을 하는 저 사람은 그저 자기의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싫다. 밉다. 왜 저래. 저 사람을 왜 만난 건가...' 판단과 저항은 나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킬 뿐 상황을 개선시키지 못합니다.


비가 내린다면 당신은 그 일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우산을 갖고 가든지 택시를 타겠지요. 비와 싸운다거나 비를 이기려고 하는 일은 무익합니다. 현재 당신은 비와 싸우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것만이 힘이라고 믿으면서 자기가 이겼다고 믿는 것 같은데, 실제로 당신의 승리는 누 구보다고 당신 자신에게 가장 해를 주고 있습니다.

<아들러 심리학 입문> 중


진실은 무엇일까요?


알아차림은 나에게 집중된 생각과 느낌에서 벗어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입니다.


<감정이 일어나는 메커니즘>


생각을 하지 않을 수는 없어요. 생각은 항상 나의 주의를 맴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두면 생각은 흘러갑니다. 문제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자신을 지나치는 특정 생각을 끌어당기기로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들어온 생각은 우리의 육체 안에서 하나의 감정으로 변형됩니다. 감정에 따라 행동의 방향도 달라지죠.


A와 B가 동시에 모임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A: 뭐지? 내 헤어스타일이 이상한가? -> 역시 머리 모양이 별로야. 창피하다. -> 소심해져서 어울리기 힘듦
B: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지? -> 재미있는 소식이 있나? 궁금하다. -> 호기심을 갖고 질문하고 어울림.


같은 상황이었지만 A에게는 기분 나쁜 모임이 되었고, B에게는 즐거운 경험이 되었습니다. A가 평소 갖고 있던 머리 스타일에 대한 관념이 부정적 반응을 일으킨 것입니다.(같은 상황, 다른 경험)


끌어들인 생각에 대한 '반응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나의 삶에 대해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음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타인에게 쉽게 상처를 받는 이유는 자기중심적인 사고 때문입니다. 


매사에 '자기가 모든 일에 중심에 있다는 사고'는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꿈속, 각자의 마음속에서 살아갑니다. 비록 다른 사람의 비판이나 칭찬이 나에 대한 것이 분명하더라도 그것을 나의 진실과 연결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각자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감정적 거리 두기가 습관이 되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감정의 파도는 잔잔해집니다. 질투심, 억울함, 피해의식 모두 그렇습니다.


다른 이가 뭐라 하든, 어떻게 생각하든 분석하려 하지 마세요. 타인을 보지 말고 나를 보세요. 다시 나로 돌아와 오로지 자기 자신만 신뢰하고 자신의 일만 책임지면 됩니다.


상대의 말은 단지 내가 지닌 상처를 건드렸을 뿐입니다. 상대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비판과 지적을 했을 때, '내가 정말 사람들 눈에 그렇게 보이나?' 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빠져들곤 하지만, 사실 우리에겐 동의하지 않을 선택권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나 자신과 관련해서 받아들이지 마세요. 사실 세상은 우리에게 그렇게 관심이 없습니다.


어떤 상황이 당신과 관련된 것처럼 보일 때조차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대놓고 모욕할지라도 그것은 실제로 당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 의견은 모두 그들의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가짜 이야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단지 자신의 감정과 믿음, 의견을 말하고 있을 뿐. 그 사람은 당신에게 독을 뿜으려고 하고 있고 당신이 그의 말을 당신과 관련시켜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그 독을 받아들인 게 되어 버린다.

또한 누가 나에게 찬사를 하든 칭찬을 하든 그것도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꼭 받아들여져야 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그들의 칭찬을 나와 관련시켜 받아들이지 않는다. 누군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든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이지 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사람이 세상을 보는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거기에 나와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나를 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해서 그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낸 그 사람의 이야기, 그 이야기 속에서 결국 자신을 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돈 미겔 루이스, <네 가지 약속>_천년 간 전해온 톨텍 인디언의 위대한 가르침 중


부정적 감정은 '저항'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우리는 살면서 무의식적으로 저항 거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은 닭이 싫어서 근처에도 못 가요. 유독 쥐를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이는 사실은 닭이 있고, 쥐가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무섭고 싫은 존재이지만, 누군가에는 아무렇지 않을 수 있어요. 귀엽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죠. 개인의 성향에 따라 특정 생각을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닭과 쥐의 예시처럼 이유를 파악하기 힘든 저항감도 있고요, 과거의 경험이나 트라우마에 의해 저항감을 쌓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건 이래야 해.' '저건 저렇게 되어야지.' 하는 무의식적 고정관념과 신념들도 저항감을 만들어냅니다. 기대에 어긋난 처신과 상황은 용납하기 힘든 것이 됩니다. 그것이 ‘화’를 만듭니다. 이것은 자신에게도 해당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이런 상황을 만들다니 나는 쓰레기야.'

'어떻게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아뇨,


이런 상황을 만들어도 되고,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래서 받아들임은 쉽지 않습니다. 용납하기 힘든 것을 수용하라고 하니까요. 하지만 이것을 연습한다면 삶이 훨씬 자유롭고 편해집니다. 저항이 줄면 부정적 감정이 생길 일도 줄어듭니다.


상황과 사람은 그대로인데,

내가 저항하지 않으므로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습니다.

더 이상 고민거리가 아닌 것이죠.


그러다 보면 신기하게도 그렇게 변하라고 해도 변하지 않던 사람까지도 자연스럽게 달라진 것을 발견합니다. 나의 내면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현실은 내면의 거울)


화가 나는 이유는 ‘저렇게 하는 것은 나쁘다(싫다)’는 고정관념과 ‘이렇게 해야 한다.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정관념과 기대가 많을수록 화가 날 일은 많아집니다. 싫어하고 저항할수록 그러한 상황은 더 자주 내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여러분이 불편함을 적었던 내용을 볼까요?


적었던 것들은 여러분이 저항을 느끼는 요소 = 무의식적 고정관념들입니다.


색연필을 가지고 와서 객관적인 사실과 주관적인 생각 혹은 느낌을 구분해 보세요.


유독 나에게만 싫은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

내가 안경을 끼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상황을 바꾸려 하지 말고 저항감을 알아차려보세요. 부정적 감정이 휘몰아칠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완하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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