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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레인 Sep 16. 2023

무능한 자신을 보기 힘들어.

chapter 2. 나(자신과의 대화)

episode3.

김감정(소설가)



후.... 답답해.


김강정의 가슴 쪽에

2톤짜리 철근이 박힌 것 같다.


월요일 아침 5시 50분

미라클 모닝과 새벽 루틴을 지키려

5시 30분부터 책상에 앉았지만...


눈뜨고 지금까지 20분째

멍하니 남들이 써놓은 글만 읽고 있다.


속에는 어제 먹은 치킨이

소화가 덜된 채로 뒹굴고 있다.

몸전체가 두드려 맞은 것처럼 퉁퉁부은 느낌이다.


주말 동안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그러고 보니

월요일 새벽은 매번 이런 식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려움

어딘가에 짓눌린듯한 갑갑함

할 건 많은데 하지 못하는

한심하고 무능한 자신을 보는 게 괴롭다.


'휴... 이럴 바엔 잠이나 더 자자.'


다시 침대로 간 김감정은

이불을 덮어쓰며 생각한다.


'이대로 영영 안 깨면 좋겠다. 전부 다 리셋하고 싶어.'






엄마~~



7시 10분쯤 아이가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기분은 역시 별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살아야지.

나를 찾는 가족이 있잖아.


부랴부랴 남편을 회사에 보내고

늦지 않게 아이들을 챙기면서

자연스레 침울의 늪에서 한 발 나온 김감정은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 산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좋아하는 숲 길을 걸을 생각을 하니 문득 신이 난다.


"잘 다녀와, 파이팅!!"


둘째까지 내려주고 이제 혼자가 된 김감정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녀는 소설가다. 작년까지 만에도 새벽이면 술술 에피소드 하나씩을 뚝딱 써 내려가곤 했는데 새 작업을 시작한 요즘은 루틴이 깨져 일어나기조차 힘들다. 다섯 번 중에 세 번은 실패지만, 새벽 기상을 포기할 순 없다. 예전에 느꼈던 야생의 살아있음! 새벽이 선물한 온전한 내가 되는 기분을 알기에.


한 달 전에 출판사와 약속을 했다. 이번 주까지 전해주기로 한 원고는 절반도 채 완성하지 못했다.


오늘도 넘기면 진짜 끝장이야. 최소한 쓰다만 내용이라도 마무리해야지. 내일은 남편도 휴가라 일할 시간이 없고, 수요일은 가람이랑 도서관에 가기로 한 날이고, 목요일엔 시어머니 생신 선물도 알아봐야 하고... 이런저런 생각에 가슴이 또 답답하다. 남편의 휴가도 원망스럽고, 아이와의 약속도 후회되고, 생신이고 뭐고 별로 잘 챙기지도 못하는데 챙겨야 하는 현실도 짜증스럽다.


"시간이 없어. 시간이 없어. 시간이 없다고...."



집에 들어온 김감정은 손을 씻고 곧장 책상으로 향한다.


깨끗하던 공간 여기저기 물건들이 놓인다.

들고나갔던 가방이 책상 옆에 던져지고

산책하려 챙겼던 모자도 그 옆에,

입고 있던 카디건은 의자에 대충 걸렸다.


'흠...'


비장한 각오로 노트북을 열었지만 정작 쓰다만 글 앞에서 멍해졌다. 제법 괜찮은 시작과 달리 마무리 못한 뒷부분은 이것저것 메모했던 내용만 잔뜩 붙어있다. 어디서부터 손을 쓸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커피를 한 잔 타고 돌아와 다시,

의자를 당겨 앉는다.


역시,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휴...'


순간 김감정은 얼마 전 <나중에 볼 영상>으로 저장해 둔 동기부여 영상을 떠올렸고, 거의 그와 동시에 핸드폰을 들어 유튜브를 열었다.


'오, 이건 지금 내가 쓰는 주제와 관련된 내용이잖아.'


김감정은 저장해 둔 영상으로 가기까지 영상 두어 개를 더 보았다. 인상적인 부분을 캡처해서 사진첩에 저장, 또 저장... 도움 되는 내용이라며 위안을 했지만 사실은 정리 거리만 더 늘었을 뿐이다.


째깍째깍...

어느새 황금 같은 오전이 끝나간다.


어차피 집중도 안되는데 밥이나 먹자.

시간이 없으니 점심은 대충 때우기로 한다.


분명 배가 고프지도 않았는데,

계속해서 음식이 들어간다.

먹어도 허기가 진다.

멈출 수가 없어...

산책을 하러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파트 지하 헬스장에 갈 수도 없어.


시간이 없으니까!!!!



***

불안이다.


이미 질린 SNS를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고

배가 부른데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먹고 있으며

열었던 서랍을 닫지 않고

꺼내 놓은 물건을 다시 넣지 않는다.


검색해야 할 것을 보다 말고 다른 것을 찾고

해야 할 일을 눈앞에 두고 자리에 앉았다 일어났다

방을 나갔다 들어왔다 한다.


사실 감감정에게 불안은 익숙했다.

스무 살 이후부터 줄곧 만난 수 같은 친구.



넌 참, 너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대수롭지 않게 꺼낸 친구의 말에

울컥 눈물이 솟는 자신을 보고 알았다.


미래만 보며 채찍질하느라,

지금의 나는 많이 외로웠다는 것.


저 멀리 이상에 비해 현실의 자신은 초라했고 항상 뭔가를 하고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눈치를 살피려 가면을 썼다. 항상 힘이 들어간 채 긴장 속에 있었지만 정작 자신은 긴장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김감정은 격려받지 못했고 격려하는 법을 몰랐지만 마음을 살피며 스스로를 격려하기 시작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는 시간을 통해 확실히 그녀는 본래의 빛을 찾아갔다. 그게 좋아 더욱더 심리학과 마음공부에 빠져들었다. 불편하던 삶이 훨씬 더 편안해졌고 이제 감정을 다스리는 자신감도 생기는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일이 맡겨질 때면 다시 심각해졌고 습관처럼 다시 불안이, 덮치듯 그녀를 찾아왔던 것이다.



***

가까스로 서성임을 멈췄다,


그래, 나 지금 불안해.


불안할 땐 호흡에 집중하라고 했지.

심장소리를 들어보라 했지.


김감정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절박한 심정으로 숨을 쉬었다.


들숨~~

날숨~~


심장소리는 안 들리니,

숨이라도 한번 더...


후~~

하~~


모든 감정은 정당하며 이유가 있다.

부정적 감정은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몸부림이다.


김감정은 작정하고 불안을 느껴주기로 했다.


곧바로 긍정적이 되려는 노력은

참고 쌓인 감정으로 오히려 부작용을 불러왔다.


불안은 싫다고 가라고 밀어낼수록

오래 머물렀으며

인정해야 쌓이지 않고 흘러갔다.


그래, 나 불안해.

무엇이 그렇게 불안한지 모르겠지만 불안해.


이름을 붙이니 훨씬 더 가볍다.

일어나 걷고 싶어졌다.

뒤늦은 산책을 나섰다.


'진즉 나올 걸, 괜히 버텼네.'


시원한 공기를 맡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두려움'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김감정은 두려움에게 인사를 건넸고,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갔다.


안녕? 두려움아.


왜, 가슴이 답답할까?

무엇이 또 세상을 어둡게 만들었을까?


잘 못할까 봐 두려워
못해낼까 봐 두려워
시간이 없는 것 같아서 두려워


자세히 봐,

벌어진 일은 아무것도 없어.


'잘 못할까 봐. 시간이 없는 것 같아서...'

다 너의 생각일 뿐이잖아.

막연한 걱정일 뿐이라고.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말이야.


잘 못해도 괜찮아.



뭐 어때?

그럼 진짜 큰 일어나는 거야?

지구가 멸망하는 거야?

너 지금 세상 망할 것처럼 걱정하고 있다고.

잘 생각해 봐.

그게 그렇게 겁나는 일인지.


잘 못해도 괜찮아-

시간이 부족해도 괜찮아-

시간을 낭비해도 괜찮아~

돈을 더 못 벌어도 괜찮아-

유능함을 증명하지 못해도 괜찮아-

무능해도 괜찮아~

지금 이대로의 너도 충분히 괜찮아.


그러게...

잘 생각해보니

그렇게 못살게 굴만큼 문제가 있나?


이윽고 김감정은 시간을 낭비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시간을 낭비하는 행동을 만들었음을 알아차렸다. 분홍코끼리를 생각하지 말하야지 하면 분홍코끼리가 생각나는 것처럼, 유튜브 보지 말아야지, 맹목적으로 먹지 말아야지, 시간낭비하지 말아야지... 하는 순간 그 행동이 생각났다. 그후엔 둘 중 하나 안하느라 애쓰던가, 하고나서 자괴감에 빠지던가.


그래, 시간 낭비해도 괜찮아.

말조차 쉽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렇게 몇번 중얼거리고나니

신기하게도 시간 낭비로 했던 행동들이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김감정은 스스로 안된다고 했던 규정들에 의심을 해보았다.  


왜 불안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


불안하니까 더 열심히 할 수도 있는데,

그저 잘해보고 싶은 마음인 건데...

나는 왜 그 마음을 그토록 싫어하고

강하게 저항하며 물리치려고만 했던 거지?


그때 마음 속에서 또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현재의 불편한 마음에 집중해.

과거나 미래로 숨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정조준하라고.


과거가 어쨌든 미래에 뭘 해야 하든

모든 허상을 잊고

온전히 지금,

너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거야.


과거가 현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가 과거와 미래를 움직이고 있어!




 

산책 후 집으로 돌아와 다시 노트북을 열었을 때

또다시 약간의 저항감이 올라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감정은

그냥 앉아 쓰던 글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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