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일이라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고민의 결과를 적용해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
단순히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새로운 시도'
육아 초보 시절 나에게
두 아이의 목욕은 곧 전쟁이었다.
씻기는 데만 해도 이미 체력은 방전된 상태인데
물기를 닦고 나와 맨몸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붙잡고, 로션을 바르고, 내복을 찾고, 위아래를 입히고나면 순식간에 내가 인간 좀비로 변해버린 기분.
"얘들아, 제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할 수 있는 일은그저 '뛰어다니지 마' '여기서 기다려' 하며 아이들을 다그치는 것, 목소리를 더 높이던가, 더 달래 보던가,'체력을 더 길러야겠다' 생각하는 정도였다.
순순히 말을 들으면 아이들이 아니지.
체력이 한순간에 길러지는 것도 아니고,
그저 버티면서 해방될 날을 기다릴 수밖에...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반쯤 좀비가 되어가고 있는 내게
옆에서 보던 남편이 한 마디 한다.
"목욕을 시키기 전에 미리 속옷부터 내복까지 다 펴놓고 로션까지 세팅해 놓는 게 어때?"
"맨날 한꺼번에 하지 말고 한 명씩 씻겨봐. 어떤 방식이힘이 덜 들지 해봐야 알지"
(거기, 뭐라 뭐라 하지 말고 좀 도와주시죠... )
그러고 나서 다음 날,
남편이 말한방법을 적용한 후 나는
신세계를 보았다,
'이 럴 수 가'
세상 편한 거!!!
목욕 전 미리 속옷과 내복 로션 세팅.
형아 먼저 하고 동생.
순서만 바꾸었을 뿐인데,
힘은 훨씬 덜 들었고,
마무리까지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동안 나, 뭐 한 거지?)
늘 하던 방식이 답은 아니다. 잘 알려진 방법이나 남들이 다 하는 방법이라고 정답이 될 수 없다.
'새로운 시도'는
기존의 방식에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된다.
"이 방법이 나에게 잘 맞는 방법일까?"
"어떻게 하면 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까?"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지만 보통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 이유는,
지금도 충분히'가능은' 하기 때문이다.
익숙한 패턴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법을 적용하는 건
사실 귀찮은일이다.
하던 대로 살아도 큰 문제는 없으니
낯선 두려움보다 익숙한 한계를 택한다.
고생스럽더라도 그게 편하니까.
요즘 유행하는 성공법
~법은 누군가 만든 규칙이다. 맹목적으로 따르던 법칙에 신념이 더해지면 방법은 더 고착화된다. 하루의 대부분을 SNS에 파 붙여 관심사를 기반으로 추천받아 비슷비슷한 가치를 계속해서 주입받다 보면 신념은 더욱 단단해지고, 그 세계는 거의 전부가 되어버린다. 어느새 그는 자신만의 패러다임에 갇혀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확고한 신념 안에서
부족한 건 나의 노력일 뿐이다.
법칙에는 문제가 없다.
결과가 나오지 않은 건
순전히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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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럴까?
단순히 노력의 양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당신 말고도 상당수가 그 법칙을 실천하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결과를 보고 있는지 한 발 물러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계속해서 한계에 부딪힌다거나 비슷한 문제에 봉착하는 건 다른 방법을 써보라는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