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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현재학 Jun 21. 2024

가장 필요한 수가 조정은 진찰료 수가 조정

필수의료가 죽어간다는 것에 대한 해법을 사람들에게 말할 때는 보통 수가를 조정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한국 의료 정책에서 관행적으로 반복되어온 정책이다. 특정 영역에 대한 보상이 적으니 수가를 조정해서 해결해야 한다. 의료담화문에서도 대통령은 이러한 관행적 해법을 강조한다.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안, 필수의료 투자계획,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 의료전달체계 개선 과제 등 국민과 의사 모두를 위한 구체적 개혁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계속 반복해온 의료 수가 조정 정책은 제로섬 게임의 경향이 있다.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각 학회나 진료과는 자신들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하여 대선 캠프에 관여하거나 사회 이슈를 적극적으로 던진다. 그러면 그에 따라 특정한 과의 특정한 시술의 수가가 아주 잘 인상된다. 지난 정부에는 그것이 치매와 특정한 종류의 영상검사였다. 이번 정부에는 필수의료로 지정된 과들의 어떤 시술들이 인상될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의료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돈은 한정되어 있다. 어떤 특정한 과들의 시술의 수가로 지출되는 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의사의 인건비에 해당하는 진찰료는 오를 수 없다.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진찰료의 상승분은 적다. 의사가 의사로써 환자를 만나 진찰을 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저비용으로 굳어지고, 진찰만으로 많은 일을 하는 과는 점점 더 외면 받는다.

진찰료 수가는 인플레에 비하여 굉장히 적게 오른다. 1980년에는 초진 진찰료 한 번으로 짜장면 5그릇을 먹을 수 있었다면(초진 진찰료 1850원/짜장면 350원), 올해 초진 진찰료는 17,000원으로 저렴한 가게를 찾으면 짜장면 두 그릇을 겨우 먹을 수 있는 정도다. 1980년대에는 짜장면이 졸업식날 먹는 메뉴일 정도로 고급 메뉴였음을 감안하면, 진찰료 수가가 물가에 대비해 얼마나 낮게 책정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는 돈을 많이 들여서 기계를 많이 살 수 있는 병원이 유리하고, 그리고 그러한 기계를 많이 요구할 수 있는 과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과가 된다. 그리고 인력으로 많은 걸 해결하는 필수과의 경우는 계속 경쟁력이 낮아진다. 그리고 기계를 적게 사들인 지방병원은 조금씩 위기가 온다.

진찰료 수가가 낮으니 의료에도 쉬링크플레이션이 생겨버렸다. 초코파이 가격은 그대로 유지해야 하니, 물가상승에 대한 대응으로 초코파이를 작게 만들어버리듯이, 의료 영역에서도 쉬링크플레이션이 일어났다. 당연하다는 듯이 환자를 진찰하는 비용이 유지되어버리니, 환자 진찰에 쓰는 시간을 줄여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검사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도록 환자에게 종합병원 뺑뺑이를 시키는 것이다.

이를 막는 방법은 의사가 검사보다 개인의 능력을 통한 진찰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환자에게 친절한 설명을 하는 것을 통해 보상 받을 수 있는 구조로 의료 시스템을 정비하는 일이다. 따라서 지급이 불필요한 수가들을 건보료에서 빼버린 후, 진찰료 수가 상승을 꾀해야 한다. 그리고 의사가 의사로써 환자와 대면하며 병에 대해 병의 원인과 관리에 대한 설명을 하는 데 시간을 많이 쓰면 많이 쓸수록 보상을 더 많이 받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진찰료를 시간 별로 차등 지급하는 것이다. 그간 반복해왔던 정책 관행을 그대로 유지해서는 구조적 해법을 모색할 수 없다.




* 본 글은 얼룩소(alook.so)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인 에어북으로 공모하려 했다가, 현재 에어북 공모를 운영중이지 않은 관계로 브런치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브런치스토리와 얼룩소 사이트에 동시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 얼룩소 원글 링크: https://alook.so/posts/WLtJD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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