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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현재학 Jun 21. 2024

의료제도 구조적 모순: 종합병원 뺑뺑이와 3분 진료


응급실 뺑뺑이 정말 의대 증원으로 해결될까?


대통령 윤석열 씨는 담화문에 의대 증원이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은 응급실 뺑뺑이이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개혁은 국민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촌각을 다투는 환자들이 응급실을 찾아 뺑뺑이를 돌다가 길에서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은 의사 수의 문제인가? 서울과 경기도 중에서 의사가 많은 곳은 어디일까? 당연히 서울이다. 서울은 그 유명한 대학병원들이 모두 자리잡은 곳이기 때문이다. 서울은 경기도보다 의사 수가 2배가 더 많다. 그렇다면 서울과 경기도 중에서 중증 외상 환자가 발생했을 때 사망 확률은 어디가 높을까? 응급실 뺑뺑이 때문에 의사증원이 필수적이라는 정부의 입장에 따르면 당연히 경기도일 것이다.


그러나 중증 외상 환자 발생 시에 사망률이 더 높은 곳은 서울이다. 왜냐하면 암환자들, 임종 직전의 환자들이 전부 서울의 대형병원에 와있기 때문에 응급실에 정말로 응급한 환자가 들어갈 자리가 잘 남아있질 않다. 그러므로 오히려 경기도에서 응급한 환자가 살아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이것은 의사 수의 문제라기보다 서울 대형 병원이 자신들의 역량보다 많은 환자를 받은 탓이다. 응급실 뺑뺑이 현상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 없이 자기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언급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다.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환자가 너무 자주 의사를 만나는 것 아닐까?


의료계가 부딪힌 진짜 문제는 그렇다면 환자 수의 문제가 아닐까? 대통령 윤석열 씨의 담화문에도 이런 인식이 나타난다. “의사 1명이 너무 많은 환자를 진찰해서, ‘3분 진료’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의사 1명이 너무 많은 환자를 만나는 것만 의료 제도의 구조적 문제인가? 의사와 환자가 만나는 일은 의료의 공급과 수요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렇다면 공급이 적어서 의사 1명이 너무 많은 환자를 만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수요가 너무 많아서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OECD 국가별 건강 퍼포먼스를 보면 데이터는 예상 수명, 예방가능사망률 등 객관적인 수치는 평균 이상인 반면에,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한 주관적 평가는 평균 이하인 것을 볼 수 있다. 즉, 지금 의사 수가 적어서, 의료 공급이 불안정한 정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해당 자료에서 의료의 질 부분도 우리 나라는 괜찮게 유지해오는 중이다. 의료의 질 부분 중 사람 생명에 위협이 되는 지표들, 예를 들어 심근경색, 뇌졸중 발생 후 30일 사망률은 평균 이상의 수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불필요한 입원이 얼마나 많은지, 필수적이지 않은 항생제 처방은 얼마나 많은지 등이 평균 이상의 지표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 의료는 의사가 너무 적어서 문제라기 보다는 환자가 종합병원을 너무 많이 이용해서 문제인 것이다. 이것은 경증이든 중증이든 바로 종합병원으로 직행하는 한국의 의료 제도와도 관련이 깊다.



종합병원에서 모든 환자들이 뺑뺑이를 돌아야 하는 현재의 의료 시스템


한국의 의료 제도는 환자가 자신의 몸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종합병원을 이용할 수 있게 되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에 이상이 있다 싶으면 종합병원에서 종합검진부터 시작하고 보는 경우가 많다.


종합병원은 개별 과들로 이루어져 있다. 종합병원에 대다수의 독자들은 가보았을 것이다. 일단 의사를 만나기도 전에, 무조건 검사실부터 찾아가야 한다. 검사실에서 검사를 하다가 예상하지 못한 질병을 발견하면 그 결과를 그것을 전담하는 과로 넘긴다. 그러면 환자는 한 병원에서 두 명의 의사를 만나야 한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환자가 병원에 가야 할 때 가게 될 패턴은 정해지게 된다.


1) 종합병원에 들어간다.

2) 검사실1앞에서 기다린다.

3) 검사1을 받는다.

4) 검사실2 앞에서 기다린다.

5) 검사2를 받는다.

6) 진료과 1 앞에서 기다린다.

7) 의사1을 만난다.

8) 진료과 2 앞에서 기다린다.

9) 의사2를 만난다.

10) 수납을 한다.

11) 종합병원을 빠져나온다.


하루에 이렇게 많은 절차를 거쳐 종합병원을 오가야 한다. 그러나 과연 고혈압과 같은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 꼭 종합병원에서 전문의가 모니터링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이렇게 한국처럼 환자가 종합병원만 계속 찾아가는 환경을  유지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까?


서울아산병원 노년 내과 교수 정희원 박사에게 유튜브로 한 환자의 사례를 들어본 적 있다. 분절되어있는 종합병원 의사들의 진료 행위로 인하여, 환자는 의사 7명을 통해 34알의 약을 복용해야 했다. 환자가 쏟아지는 종합병원에서 환자의 말을 빨리 듣고 그것에 알맞은 약을 처방해주어 더 많은 환자를 진찰하는 의사가 유능한 의사 소리를 듣는 종합병원에서 7명의 의사는 그가 얼마나 많은 약을 먹는지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희원 박사는 의무기록지를 다 살펴보고, 약의 3분의 1을 덜어내는 일을 해보았다. 중복되어 있기에 불필요한 경우도 있었고, 함께 먹으면 안 좋은 약들도 있었다. 1달 후에 다시 찾아온 환자는 훨씬 컨디션이 좋아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환자가 종합병원을 뺑뺑이 하는 구조적 모순은 고쳐야 하지 않을까?


사람의 몸은 완벽하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어쩔 수 없이 몸에 병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병을 종합병원의 특수한 과들에서 하나하나 완치를 위한 진료를 하고 있다. 그렇기에 65세 이상 한국인의 평균 복용 약물 개수는 4.1개이다. 노인이 되면 모두가 종합병원을 뺑뺑이 돌아야 하고, 3분씩밖에 의사를 만나지 못한다. 고쳐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이것부터 핵심이 아닐까?



* 본 글은 얼룩소(alook.so)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인 에어북으로 공모하려 했다가, 현재 에어북 공모를 운영중이지 않은 관계로 브런치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브런치스토리와 얼룩소 사이트에 동시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 얼룩소 원글 링크: https://alook.so/posts/WLtJD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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