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탔습니다. 솔직히 대단합니다.
한강 소설가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고통에 대한 추체험을 경험하게 하는 데에 장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감각적 자극을 느끼게 하는 데에는 최고의 경지입니다.
그러한 표현법들은 꼭 배우고 싶습니다. 제가 여러 소설들을 필사를 시도했지만, 끝까지 필사를 해본 소설은 한강의 채식주의자(책 전체가 아니라 연작 중 찻번째 소설 '채식주의자')가 유일한 것 같습니다. 처음에 멋모르고 필사를 시도할 때, 한국의 소설가 중 제일 유명한 소설가를 고른 것이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마음 먹었을 때만큼 열정적이긴 어렵죠...
그러나 한강 소설가도 분명히 뛰어나지 못한 부분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의 구조적 맥락과 그 안에서 인간이 느끼는 고뇌를 표현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다고 느낍니다. 채식주의자의 영혜의 고통이 어떠한 구조적인 맥락 속에 있는지에 대한 사유는 부족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사실 사회과학 베이스가 있는 저로써는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죠.
그러한 의미에서 X세대 한국 작가 중 최애는 여전히 김금희 작가입니다. (밀레니얼 소설가 중 최애는 저 자신이라는 건 비밀!)오늘 김금희 작가님이 한강 소설가의 노벨상 수상 관련 포스팅을 인스타에 올렸길래 댓글을 달았습니다. " 그래도 X세대 소설가 중 제 최애작가는 여전히 김금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한강 소설가님이 고통에 대한 추체험에 관해서 대가라면, 김금희 작가님은 고통의 구조적 맥락과 그 안에서 인간이 느끼는 고뇌를 표현하는 데에 최고의 반열에 오른 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그래도 김금희 작가님은 이번 한강 작가의 수상이 침체된 한국문학 시장에 활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한국 문학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러나 저는 이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한국문학의 가장 큰 단점은 경쟁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입니다. 웹소설, 라이트노벨 등등 대중성만을 노리고 만드는 서사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한국 문학은 이들을 경쟁자로 생각하는 데에 상당히 인색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는 한국 문학 시장 자체를 굉장히 찾는 사람만 찾는 시장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이전에도 이랬습니다. SF소설은 장르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묻어버리고 그들과는 경쟁한다거나, 모티브를 따올 상대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그 수요가 충족되지 못해서 프랑스 땅에서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한국에서 가장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버렸었습니다. 김초엽 작가가 과학 잡지에 실은 소설들로 책을 엮어내고 그것이 흥행하자 그제서야 자신들의 범주 안에 SF를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막혀있고 경쟁할 상대의 범위를 늘리는 것에는 인색한 한국 문학계입니다.
그 결과 한국문학은 독자를 잃어버렸습니다. 문학가들은 변명합니다. 사람들이 글을 읽지 않는 시대가 되어서 그렇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90년대에 비해서 전체 독자들 중 세계문학 독자 비중보다 한국 문학 독자 비중이 훨씬 더 빠르게 줄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한국문학계에서 성찰해야 하는 뼈 아픈 대목입니다.
기생충의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수상이 한국영화계를 번창시키지 못한 것만큼이나,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이 한국 문학계를 번창시키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현행의 문학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 그저 점점 독자를 잃고 사장되어가는 시장으로 계속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P.S. 모두들 한강 작가의 대표작으로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를 꼽지만, 저는 한강 작가의 대표작으로 희랍어 시간을 꼽고 싶습니다. 고통에 대한 추체험이라는 한강 작가의 특장점이 주제의식과 더불어 가장 잘 발현된 것 같다고 느낍니다.
희랍어 시간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와 실어증에 걸린 여성이 서로 소통하기 위한 노력을 담습니다. 언어와 인간 사회라는 주제와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고통을 세밀히 다루어낸다고 느끼게 됩니다.
* 이 글은 얼룩소(alook.so)에도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