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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 시론 - 대한민국의 주권자는 누구인가?

2024년 4월 21일 얼룩소에 올린 글

by 심준경

이번 선거에서 가장 정치권에 대한 정나미가 떨어지게 만든 것은 본선이 아니라, 공천 과정 중에 튀어나온 온갖 막말 파동이었다. 자신의 지지층에게 멋있어 보이기 위해, 아니면 자신의 지지층에게 똑똑해 보이기 위해 했던 말은 그저 뒤돌아서 상식적인 입장에서 보면 막말이었을 뿐이다.

이번 막말들 중에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망국의 제1 책임은 누가 뭐래도 군주인 고종"이라며 "이완용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군주의 책임을 신하에게 떠넘기는 것"이라고 주장한 대전 서구 갑의 국민의힘 후보 조수연 씨의 발언이었다. 4.3사건을 김일성 지령에 의한 폭동이라고 말한 것, 그리고 5.18 유공자 중에 가짜가 섞여있으니 공개하라는 발언 등, 그의 머리를 거쳐 나온 더 극단적인 망언들이 많았다. 그러나 저 망국의 책임은 군주에게 가장 크다는 어찌 보면 저, 온당한 이야기가 나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우리는 가끔씩 정치인이 무능해서 나라가 망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다 빠져나갈 수 있다. 그들은 돈과 권력이 우리보다 많으니 망해도 나라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끼리 모여서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겠지. 당시 대통령 OOO이나 국회의장 OOO이 무능했던 건 맞으나, 그들이 대표가 된 대에는 주권자인 시민들의 선택이 있었다, 그러니 망국의 제1 책임은 누가 뭐래도 시민들에게 있다. 그렇게 말할 것 같았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민주주의를 이룩하였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민주주의는 민들 중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일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 그리고 가치 때문에 이룩한 것이지, 민주주의 형식적 절차를 차곡차곡 지키기 위해서 이룩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에서 정한 형식들은 과연 시민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가? 시민들을 보호하려고 있는가? 아니다. 정치권이 원하는 것은 국민이고, 국민을 반으로 갈라 반쪽 짜리 국민들의 표를 모아 행정 권력을 장악하는 게 목표의 전부인 사람들 같다. 그러기 위해 다른 편을 악마화하는라, 시민들의 삶은 지켜지고 있지 못하다. 시민들의 삶을 조롱하고 우롱하는 이들이 유튜브 방송을 통해 인기를 얻고, 그리고 그들이 공천을 받으려고 하고 있다. 난 애초에 권력자들끼리 막말을 주고 받는 것은 그다지 관심도 없다.

양문석 씨의 사태를 보자.

양 후보는 지난 2007년과 2008년 언론에 기고한 칼럼에서 노 전 대통령을 ‘매국노’ ‘불량품’ 등으로 표현했다. “노무현씨에 대해 참으로 역겨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했고, 지지자들은 “기억상실증 환자”라고 했다. 하지만 이후 정치 현장에 직접 들어와 보니 상황이 달랐다는 얘기다. 양 후보는 “(정치권에 들어온 뒤) 수많은 반성과 사죄의 시간을 가져왔다”고 했다.

- 조선일보, 2024.3.17, "양문석 ‘노무현 비하’ 사과...원조 친노 윤건영 “분노 참기 어렵다”"


권력자들끼리 막말을 주고 받는 일은 큰 상관 없다. 어차피 정치는 말로 승부를 보는 싸움이다. 그러나 시민인 지지자들을 더러 "기억상실증 환자"라고 막말을 쏟아낸 건 참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언론은 모두 노무현 씨에게 막말을 했다는 것만 강조했을 뿐, 지지자들을 향한 막말에는 정작 무관심했다. 양문석 씨는 노무현 씨 묘소에 무릎 꿇고 참배를 했지만, 지지자들에게는 무릎 꿇어 사과의 말을 올린것을 본 적이 없다.

김준혁 씨(박사라는 호칭으로 부르기를 거부하겠다. 아무리 내 모교가 준 학위더라도 나는 이 작자를 박사로 인정할 수 없다.)는 역사학자를 자처했으면서도, 사료에 입각하지 않은 막말을 했다. 김활란 씨와 모윤숙 씨를 욕되게 하려는 의도로 당시 이화여대에 재학하던 시민들의 삶을 무도하게 조롱했다. 김활란 씨와 모윤숙 씨를 욕되게 하려는 의도로, 당시 이화여대 재학생들이 성상납했다는, 사료에는 기록이 전혀 없는 내용을 언급하며 유튜브 방송에서 시시껄렁하게 웃고 자빠져있었다.

도태우 씨는 5.18이 북한의 개입으로 이루어졌다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죽어간 시민들을 우롱했다.

나는 이런 논란을 들으며 대한민국의 주권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주권자는 행정권력 장악을 위해 동원되는 절반의 국민들에게 신성불가침한 존재여야 하는 대권 후보인가? 그들이 주군인가?

정치권이 시민을 주권자로 모시기보다 대권 후보를 주군으로 모시는 데 더 바쁜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던 것은 정봉주 씨의 공천이 취소되었을 때였다. 정봉주 씨는 목발지뢰로 중상을 당한 군인들이 있는 시국에서 목발 지뢰 경품 발언으로 군인들을 희화화했다. 의무를 다하다 중상을 입은 시민의 고통을 희화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공천을 받는 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가 공천에서 취소된 것은 그가 사과했다는 거짓말을 해서였다.

그가 공천에서 취소된 것은 사과했다는 거짓말을 시민들에게 했기 때문인가? 시민들에게 거짓말한 것이 공천 취소의 배경이라면, 시민들의 아픔을 조롱한 것 또한 공천이 배제되었어야 할 사유이다. 그저 자신의 주군인 민주당 진영의 대표에게 사과했다는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후보 공천 자격을 박탈한 것이 아닐까?

이제는 진보적인 국민과 보수적인 국민을 정치권에 소환하고자 할 때, 이에 응할 필요를 못 느낀다.

정치권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시민의 삶을 보호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는 시민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좌파와 우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삶이 중요한 시민파 시민사회의 탄생이 절실하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주권자는 이 나라 시민사회의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시민을 위한 시를 썼던 김수영 시인이 생각난다. 김수영 시인의 시를 오마쥬해서 내가 만든 시 하나, 그리고 김수영 시인의 시 하나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치겠다.

"정치 유튜버 쓰레기들"
한국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반대로 말하는 것이 한국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라고 유시민이란
지식장사치가 우겨 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정치유튜버 쓰레기들"
한국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라고 윤석열이란
관료가 우겨 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김수영 시인의 "김일성 만세"라는 시를 오마쥬한 시이다. 글의 마무리는 유명한 김수영 시인의 시, 풀로 대신하겠다. 각자가 이 시를 어떻게 느끼실지 궁금하기도 하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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