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친구가 필요해
처음 도쿄에 도착한 후 한 4달간은 정신이 없었다.
첫째, 당연히 새로운 도시에서의 삶의 적응이 필요했다.
둘째, 새로운 도시로 이사를 함과 동시에 나는 이직을 했다. 새직장 문화 적응이 필요했고 새롭게 주어진 업무도 익혀야 했다.
셋째, 다른 나라에서 살기 위한 최소한의 것들에 대해 준비가 필요했다. 운이 좋게 회사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혼자 해쳐가야 하는 것이 많았다.
은행 계좌를 열어야 했고, 핸드폰을 개통해야 했다. 언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은행에서 계좌를 열고 일본 통신사를 가입하는 것들은 생각보다 더 큰 도전이었다. 도쿄로 올 때 집을 구해서 온 것이 아니었다. 집을 렌트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은행계좌와 일본 핸드폰 번호였기에 두 가지를 먼저 처리하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일이 해결된 이후 살 집을 구해야 했다. 회사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집을 얻는 데 성공했지만 집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거라고는 당장 입을 옷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수저부터, 아니 화장지부터 컵 그리고 침대까지 모든 것을 구매해야 했다. 아무리 작은 공간일지라도 아무것도 없는 집에 살아갈 물건들을 채워가는 일은 보통 힘들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최소한의 도시에서 살아갈 기본의 상태를 만들어갔다. 여행자가 아닌 생활자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나날들이 쉴 틈 없이 지나가다 보니 4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월세이긴 하나 내 집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내 공간이 생겼고, 내 공간의 모든 물건들을 내가 직접 고르고 모두 내 것으로 채웠다. 환율 수수료를 생각할 필요 없는 일본 계좌가 생겼고, 와이파이를 찾을 필요 없는 일본에서 쓸 수 있는 핸드폰이 생겼다. 어색하기만 한 직장 동료들과는 점점 가까워져 일 끝나고 맥주 한잔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며 업무는 조금씩 파악해 가게 되었다. 그런 시간들이 흐르다 보니 어느새 4개월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생활자로 모양을 갖추고 내가 처음 든 생각은,
친구가 필요해!
였다.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낯선 도시로 왔다. 생김새가 비슷하고 한국과 멀지 않은 곳이라 생각해 크게 두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문뜩 나는 이곳에서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에 살 적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동호회며 새로운 모임을 가입해 보려다 이내 귀찮음이 발동하여 시도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이제 막 알게 된 회사 동료 말고는 정말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무 상태에서는 귀찮음은 생각지도 못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조금 낯선 환경을 어색해하는 면이 있고 살갗게 먼저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거는 타입이 아니라 한국에 살 적에 마음만 있었지 새로운 집단에 끼어들어 누군가를 새로 만나본적이 없었다. 모든 친구는 학교 친구, 회사 친구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엮인 사이였다.
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변하지 않으면 여기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
어쩜 생각해 보면 한국 살 적에도 완전히 오롯이 혼자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친구들은 하나 둘 결혼을 해 정착을 해갔고, 아이가 생겨 약속 잡기가 쉽지가 않았다. 늘 친구들을 보려면 친구가 사는 집 근처로 가야 했다. 1-2시간 시간을 내어 나를 만나러 나온 친구는 2시간 정도가 지나면 집으로 서둘러 돌아가야 했다. 나는 친구를 보기 위해 그 친구 집 근처까지 찾아왔건만, 겨우 2시간쯤 지나 다시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며 가버리는 친구가 원망스러웠었다. 밤새 수다 떨며 미래를 이야기하던, 하하 호호 아무것도 아닌 것에 웃고 떠들던 내 친구는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했다. 새롭게 생긴 카페며 레스토랑을 찾으면 즉흥적으로 가자고 이야기해도 웬만하면 오케이 하던 친구는 이제 내 곁에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친구와 2시간 수다를 떨기 위해서 나는 기꺼이 친구 동네를 가야 했고, 그 2시간의 수다를 위해서 일주일 전부터 미리 약속을 잡아야만 했다. 그렇게 내가 알던 20대 때 친구는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때 서운함이 밀려왔었던 적이 있더랬다. 유치하지만 이제 내 친구는 없구나 생각했던 적이 있더랬다.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 친구는 2시간 얻은 자유시간을 내게 온전히 쏟아부었던 것이었다. 왜 그때는 친구의 그 마음을 모르고 나만 서운한 생각이 들었던 걸까. 나만 억울하고 친구가 원망스러웠다. 겨우 얻은 그 꿀 같은 2시간을 나와 함께 보냈던 그 마음은 헤아리지 못한 채. 어쨌든 그때 그 성숙하지 않은 그 시절도, 그렇게 세상에 혼자만 떨어진 것 같은, 결국 내편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적도 굳이 찾아서 새로운 모임을 가입하지 않은 나였다.
Comfort zone 이 사라진 나는 그렇게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에 돌입했다. 인터넷으로 인터내셔널 모임을 할 수 있는 어플을 알았고, 그 어플에서는 정기적으로 큰 장소를 빌려 행사를 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용기 내어 무려 혼자서 그런 이벤트를 참가하기 시작했다. 소모임의 이벤트도 있었고 정말 한 100명 이상이 모이는 이벤트도 있었다. 우연히 말을 시작하게 된 사람들과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그 이후 따로 만나 밥을 먹기도 했고 술을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해서 만난 사람들과는 꾸준하게 인연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한 번은 모임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가 본인 친구 집에서 홈파티를 한다고 초대했다. 혼자 모르는 사람의 집을 가려니 덜컥 겁부터 났다. 정말 나는 내가 영위하고 있는 내 안전구역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났던 적 있는 사람이 초대한 홈파티를 가는데도 겁부터 나다니. 내 이런 생각을 깨야 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또 한편 혼자서 거길 쭈볏쭈볏 갈 생각을 하니 겁부터 났다. 친구에게 주소를 물어보고 가까우며 가야지 했는데, 정말 정말 우연히도 홈파티가 열리는 장소는 우리 집 바로 옆 건물이었다. 거짓말인가 싶을 정도로 바로 옆 건물이어서 당황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날 홈파티에 가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며 좋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만난 인연들은 여전히 연락 중이다.
맞다. 물론 회사 동료 중에서도 좋은 친구가 된 동료들이 많다. 나와 같이 일본어를 모른 채 일본으로 넘어온 동료들과는 끈끈하게 관계가 만들어졌다. 가끔씩 모여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인연들이 내게 오고 갔다. 그런데 정말 운명의 장난처럼 함께 전우애를 나누던 친한 동료들은 모두 한국으로 돌아갔다. 일본 와서 새로 사귀었던 몇몇 친구들과는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주변 친구들이 모두 결혼해 이젠 내게 아무도 없어라고 느꼈던 그때 그 시절처럼, 신기루처럼 다시 인연들이 사라져 버렸다.
괜스레 감성에 젖게 되는 어느 날 밤 친구 그리고 인연에 대해서 혼자 생각에 잠겼다. 오래된 인연은 함께 해 온 역사가 있는 만큼 소중하다. 내 모든 삶의 여정을 그리고 친구의 모든 삶의 여정을, 모두 알기에 서로에게만큼은 가식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다. 또 우연히 좋은 친구가 되어 함께 어느 한 시절 좋은 추억을 함께 공유한 친구가 있다. 회사에서 알게 된 회사 동료와 협력사 직원과 엄청 고생하며 함께한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그때 중국으로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프로젝트 함께 하던 그 시기에는 매일 만나던 사이였다. 지금은 1년에 한 번 안부 문자만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고 가끔 중국에서 먹었던 양꼬치와 맥주 이야기를 때때론 하곤 하며 추억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영원할 것 같은 한때가 지났지만 그 순간은 서로에게 힘들지만 재밌었던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그래서 한 시절 추억을 공유하는 그 인연은 그 인연대로 소중하다. 가끔 그 시절 추억할 때 함께 그리워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기에.
인생에서 여러 단계가 오고 갔다. 학창 시절이 지났고, 직장 생활을 하고 있으며, 백수 시기도 있었다. 직장을 여러 번 옮기도 했다. 여행을 하기도 했으며 출장을 가보기도 했고 어학연수를 하며 전혀 나라는 존재를 모르는 도시에서 살아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오고 갔다 인연도 무수하게 많다. 그 시기마다 내게 고맙게 찾아 주었던 인연들과 공유한 추억들도 모두 다르다.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해간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관계도 변했다. 대부분의 관계가 어쩜 소홀해지려고 해서 소홀해진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가 지금 서 있는 상황이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기도 하고 또 그에 맞게 생각지 못한 인연과 마주하게 되기 때문에. 그렇게 인연은 오고 간다. 영원할 것 같은 관계도 끝이 있을 수 있다. 결국 친구가 필요한 내게 필요한 건 혼자여도 괜찮은 내가 되기 위한 연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여도 괜찮은 내가 되기.
혼자여도 괜찮은 내가 되어야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길게 유지되는 인연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또 혼자여도 괜찮은 나여야 좋은 인연이 내게 오고 집착하지 않는 관계가 되지 않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늘도 여전히 해외살이 숙명인 친구 찾기 위해 방황하지만 혼자여도 나와 내가 만나는 시간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